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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재소설 - 먼하늘 가까운 바다

한일 공동소설 - 먼하늘가까운바다 <6>

등록 2005-10-13 15:33수정 2005-10-13 15:33

먼하늘가까운바다 <6>
먼하늘가까운바다 <6>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는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공지영

차가 신라호텔에 도착했다. 해는 기울고 있었다. 잠깐 그가 머뭇거리더니 방에 올라갔다가 내려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기자들과 약속한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문이 열리자 그가 잠깐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완강하게 눈길을 내리깔았다.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뭐가? 라고 누군가 물으면 할말은 없었다. 무엇이 아닌지, 나도 알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는 말하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온몸으로 말하고 싶었다. 아니야, 아니야, 라고.

그가 방으로 올라가고 이연희 과장과 나는 로비 라운지에 앉았다. 진한 슬로진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이연희 과장을 따라 커피를 시켰다. 이연희 과장이 모든 것을 눈치챈 것은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연희 과장은 기자들 오나 좀 나가보고 올께요,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실은 사람들은 우리 생각보다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왠지 모를 수치심과 불안으로 떨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에는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이 하얗게 줄지어 서 있었다. 석양 때문인지 그 나무들에게 이상스런 노란 빛이 어리고 있었다. 남산의 전형적인 겨울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도 방으로 올라가 이 풍경을 보고 있을까, 어쩌면 새로이 사귀는 연인에게 전화를 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여자가 늘 많았다. 칸나라는 여자도 있었다. 내가 거기 서 있는데도 당당하게 준고 앞에서 사랑한다고 말하던 여자…. 칸나라는, 그 새빨갛게 느껴지는 그 이름이 싫어, 나는 퉁명스레 말하곤 했다. 준고는 이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고 있을까, 그 호숫가에 벚꽃잎이 떨어지는 저녁에 그 여자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천천히 걸어갈까…. 그리고 그 옛날 내게 했듯이 가끔 멈추어 서서 부드러운 눈길로 얼굴을 바라보며, 네 빛나는 눈이 참 예뻐, 하고 말할까….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는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칸나라는 여자는 물론이고,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공원을 걷다가 그가 일으켜 세워주던, 넘어진 열 살짜리 꼬마 아이까지…. 그게 누구든 그가 나 이외의 모든 여자들에게는 찡그린 표정만 보여주었으면 했었을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든 없든, 그랬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어릴 때 피아노 뚜껑을 덮어버려서 흉터가 나 있는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대고 싶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야, 집착일 뿐이라구, 친구 지희라면 내게 말했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었다. 어서 집으로 가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어제 산 연둣빛 트레이닝 복을 입고 호숫가를 뛰고 싶었다. 이 추운 겨울날 아무도 없는 호숫가를 뛰고 있으면 생각은 차창 밖의 풍경처럼 내게 다가왔다가 혼자서 뒤로 사라져갔다.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준고를 사랑할래, 더 뛸래,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쉽게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묻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노가시라 공원 주변을 달려가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준고는 가끔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달리는 거지?

준고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 벌써 삼십 분이 지났던가, 그는 조금은 살이 올라 있었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마른 체형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쯤 성취한 자 특유의 자신감으로 어깨를 쭉 편 듯이 느껴졌다. 언제나 나를 지나, 마치 투명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듯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던 눈동자는 한 곳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후회하고 있니?


민준은 가끔 그렇게 물었다. 미안해, 하고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안 돼, 노력했는데 안 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말이야, 두꺼비집이 닫히는 것처럼, 물기 묻은 전원에 스위치가 자동으로 차단되는 것처럼, 사랑 같은 거, 호감 같은 거, 느끼려는 순간 철컥 하고 스위치가 내려져.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아…. 감정이 암전된 것만 같아….

―그런 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민준은 그렇게 말했었다. 준고는 내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내 곁에, 공원 입구 꼬치구이 집에서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게 다가왔던 것처럼 그렇게…. 어느덧 이연희 과장의 곁으로 낯익은 기자들의 얼굴이 보였다.


“괜찮으시다면 그 모델이 되신 분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쓰지 히토나리

먼하늘가까운바다 <6>
먼하늘가까운바다 <6>
나는 지금 신라호텔 커피숍에서 신문사 취재를 받고 있다. 옆에는 최홍이 앉아 내 일본어를 한국어로, 기자의 한국어를 일본어로 통역하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기자의 질문이 잠시 끊어진 틈을 타, 사사에 히카리가 나란 걸 알고 이 일을 맡았는지 물어보았다. 홍이는 손에 든 노트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설마 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낮은 목소리로 소리를 죽여 말했지만 강한 부정에 거절의 의사가 배어 있다.

“내일출판사 창업자가 우리 할아버지예요. 통역할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서 내가 대신 나왔을 뿐이에요.”

일본어를 다소 할 수 있는 이연희 과장이 홍이를 돌아봐, 당황한 나는 유리벽 너머에 펼쳐진 남산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빛의 정령들이 아득한 은하로 돌아가고 있다. 조용히 세상의 빛과 색채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남산은 이미 어두워져 어슴푸레 능선이 윤곽을 두르고 있을 뿐, 세상 모든 것이 군청색 어둠에 빨려 들어가려 한다.

한국에 오신 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는 한국어가 있으신지 하고 기자가 물었다. 옆에 있는 홍이를 의식하며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안녕히 계세요’와 ‘안녕히 가세요’. 일본어의 사요나라에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만. 이 두 인사말의 뜻을 처음 가르쳐준 사람이 제 소설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 모델입니다.”

메모를 하고 있던 홍이 손이 멈추었다. 홍이가 나를 힐끗 본다. 그 가면 밑에 숨겨진 진짜 표정을 알고 싶다.

한국어로는 배웅하는 쪽 사람은 안녕히 가세요, 가는 쪽은 안녕히 계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프랑스의 오르봐, 영어의 굿바이, 일본어의 사요나라와는 조금 다르다. 남아 있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이 각각 다른 작별인사를 하는 건 이 넓은 세상에서도 한국어뿐이 아닐까. 홍이의 설명을 듣고 상대를 배려하는 그 말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감동했었다.

기자가 이어 질문을 했지만, 홍이는 통역을 하지 않았다. 이연희 씨가 홍이의 팔을 재빨리 찔렀다.

“괜찮으시다면 그 모델이 되신 분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홍이는 단어를 고르듯이 통역을 했다. 나는 홍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단 우리들의 마지막은 소설에 쓴 것처럼 해피엔딩은 아니었습니다.”

기자가 이어 질문을 했다.

“그분은 아직 일본에 계십니까?”

“아니요, 지금은 한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겁니다.”

“이번 방한기간에 만나실 생각인지요?”

“제가 필명으로 소설을 써 와서, 상대는 아마 모를 겁니다.”

기자가 이어 뭔가 질문을 했다. 홍이는 다시 아무 말이 없다. 이번엔 긴 침묵이 흘렀다. 참다못한 이연희 씨가 지금도, 그 사람을 좋아합니까, 기자가 물어요, 하고 서툰 일본어로 설명한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음색이 떠들썩한 사람들 소리를 헤치고 내 귓가를 울린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홍이가 얼굴을 들어 연주자를 돌아보았다.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제8번 C단조, <비창>이다. 나는 매일 아침 반드시 이 곡을 듣는 습관이 있었다. <비창>만 듣는 나를 홍이는 이상해했다.

어느 날인가, 우리는 어머니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러 도심에 있는 콘서트홀을 찾았다. 어머니 연주회에 나는 일부러 티켓을 구입해 2등석 한쪽에 앉았다. <비창>이 연주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어머니가 음감교육을 시키기 위해 어린 내게 늘 들려주던 곡이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거의 없는 내게 이 곡은 어머니와의 유일한 추억이라 할 수 있다. 극적이며 덧없고 아름다운 이 멜로디에 어째서 <비창(悲愴)>이란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모른다. <비창>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 전에 나는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온갖 이미지로 감수성을 키웠다. 어머니가 바라는 음악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 곡이 유년시절 내게 미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날, 어머니는 마치 객석에 내가 있는 것을 아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게 그 곡을 연주했다.

<비창>이 연주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홍이를 데리고 무대 뒤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관계자들로 북적대는 무대 뒤로 홍이의 손을 끌고 갔다. 대기실 앞에 있던 직원이 아주 친한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말했다. 바로 앞에 어머니 대기실이 있고, 사람들이 꽃다발을 가지고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홍이와 어머니를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저 만나보게 하고 싶었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홍이는, 넌 부모님한테 나를 소개시켰잖아. 한국에선 부모님께 보이는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거야, 하고 말했다. 난 그저 어머니에게 이렇게 멋진 애인을 만났다고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홍이는 그것을 좀 더 깊게 해석했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홍이가 직원에게, 이 사람은 아오키 나오미씨 아들이에요 하고 말했다. 아들이란 말에 내 쪽이 더 놀랐다. 한 번도 자신을 아오키 나오미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한테는 가난한 첼리스트 아버지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거리에 붙어 있는 어머니의 포스터를 봐도 그것을 내 어머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피아노를 미워했고, 어린 시절 일부러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어머니가 나를 걱정하는지, 아니면 피아노를 칠 수 없게 된 것을 슬퍼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피아노 뚜껑을 여린 손가락 위에 덮어버렸던 것이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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