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하늘가까운바다 <9>
시계를 언뜻 보았더니 7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7년보다 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지영 그와 나는 이렇게 단둘이만 차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차가 없었으니까. 그때 우리는 가난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서로 스치듯 장난을 치거나 전철에서 내가 그의 팔짱을 끼고 꼭 붙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둘만이 있는 것은 그의 방에서말고는 처음이었다.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모든 길들이 내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서 사람 하나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야, 나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준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실루엣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크게 숨을 내쉬고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딱히 갈 곳도 없었고, 그와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카페로 갈 수도 없었다.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자주 배반하던 내 몸은 그와 나를 남산 중턱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 차가 생긴 이후 나는 자주 거기에 올라갔었다. 어떤 날은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지 않고 빛나는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필자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서울타워 위로 넘실거리는 오렌지쥬스빛 노을을 바라보곤 했었다. 해발 200미터인 이 산에서는 계절마다 가지가지 꽃향기가 다르게 풍겨왔다. 서울의 밤 풍경은 검은 벨벳 상자에 놓인 보석들처럼 맑았고, 한강의 다리들로 오가는 차들의 불빛들조차 유리꽃처럼 반짝였다. 멀리서 보니까 그랬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대개는 모든 사물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걸까? “아직도 달리니?” 그가 많이 생각한 어투로 물었다. 그가 입을 여는 기척에 너무도 긴장해 있었는데 엉뚱한 질문이었다. 하마터면 갑자기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너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엉뚱한 소리 하는 거, 타이밍 못 맞춰서 내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거… 그러자 비로소 내가 아오키 준고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내 마음속 호리병에 갇힌 베니라는 여자는 오랫동안 묻고 싶어했다. 만일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노가시라 공원의 그 나무다리는 잘 있니? 꼬치집 아저씨도? 카페 안나 그 부부도? …아침이면 호숫가에서 시끄럽게 울던 까마귀들이랑… 프로방스 빵집 마리코도? 말씨가 부드럽던 너의 아버지… 기치조지 역 북쪽의 메밀국수도 여전히 맛있니? 내가 없어도 다들… 여전한 거니? 그 후로 몇 번 일본에 갔었고, 도쿄에도 갔지만 차마 그 기치조지 역 근처에는 갈 수가 없었거든… 왜냐하면…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우리들이 앉아 있는 좁은 차 속으로 푸딩처럼 엉겨 붙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늘 차를 세우던 바로 그 장소에 차를 세웠다. 이곳에 누군가와 함께 온 적은 없었다. 민준이 드라이브를 하자고 할 때도 나는 짐짓 이곳을 모른 척 지나 서울타워에 올라갔었다. 왠지 이 장소는 나 이외의 어떤 사람하고도 오지 않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준고와 함께 여기에 멈춘다. 왜일까? 먼 곳의 불빛들이 손짓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하다가 바람이 불면 신기하게도 작은 파도가 일 듯 파르르 떨리곤 했다. 먼 들판에 들꽃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창 밖은 겨울, 영하 10도. 입을 열지 않아도 건조하고 찬 대기 속으로 입김이 주전자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처럼 하얗게 밀려나올 것이다. 준고는 내가 묘사했던 그 서울의 겨울을 보고 싶어했었다. 키가 큰 가로등 빛 아래서 나무들의 수피(樹皮)가 국수가닥처럼 하얗게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진땀이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시계를 언뜻 보았더니 7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자동차 시계에서 7이라는 숫자도 반짝이고 있었다. 7년보다 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할 말이 있으면 해.” 내가 물었다. 준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멀리 검은 한강의 물 사이로 반짝이는 오색 줄을 여러 겹 흔들고 있는 듯 자동차들의 불빛들이 보였다. 다리 위의 가로등들은 주황색 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하늘은 그 위로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밤에는 어떤 별들이 떠서 말갛게 눈을 뜨고 이 도시를 바라볼까? “너한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언젠가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었어.” 준고는 무슨 말이든지 하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눈가로 몰려왔다. 피들이 얼굴 앞쪽으로 몰려서는 것처럼 아주 무거운 기분이었다.
나는 홍이를 그리는 밤이면 홀로 조용히 그 시를 암송했다 쓰지 히토나리 어두운 남산 저편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 분지에 무수한 광원(光源)이 서로 빛을 발하고 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창백하게 타들어가듯 빛나고 있다. 그 투명한 빛은 평생 조국을 그리던 시인 윤동주의 한 편의 시와 같다. 하지만 그런 내 느낌을 홍이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아직도 달리냐고 묻고 만다. 먼 별의 깜박임처럼 아련한 대답으로 나는 아직도 홍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책꽂이에서 유품처럼 한 권의 시집을 발견했다. 그건 홍이가 어느 날 나를 위해 사온 윤동주의 일본어판 시집이었다. ―번역이 훌륭하니까 분명히 한국어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 거야. 관심은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쫓겨, 결국 홍이와 교제를 하던 중에는 그 책을 읽지 못했다. 홍이가 사라진 어둡고 적막한 방에서 쓸쓸하고 가슴 저민 밤들을 보내던 나는 책장 구석에 낯선 시집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홍이는 윤동주에 대해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홍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시인의 슬픈 반생을 듣고 어쩐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좀 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다음에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책장에 꽂아 두었다. 마치 넓은 사막의 모래 속에 묻어 두듯이. 시집을 손에 든 나는 엎드려 별 생각 없이 책장을 펼쳤다.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거기서 홍이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듯이. 책장을 열자 잉크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대충 넘기던 페이지의 첫 말이 그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투명한 언어의 빗줄기. 내 일본어적 의식 속에 윤동주가 엮어낸 하나하나의 한국어가 용액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만난 적도 없고 전혀 다른 시대를 산 그의 말이, 그에게는 외국인인 내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어 왔다. 내 육체로 들어온 말의 작은 입자는 내 안에 있는 시간과 인생과 사고를 동시에 관통해 갔다. 어느새 나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하고 책과 마주하고 있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이 행을 읽은 순간 혼에 부딪치는 듯한 너무도 큰 감동에 저절로 등줄기를 바로하고 눈을 깜빡거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창 밖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대학 도서관으로 가 그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 시가 써졌을 시대와 그가 놓였던 상황과 분위기와 냄새, 죽음을 상상하며 깊이 숨을 죽였다. 시인과 독자인 나 사이에 놓인 문제가 홍이와 나 사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나는 윤동주의 시에 홍이의 마음을 비쳐 보았다. 어째서 그때 나는 이 시집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후회 투성이인 동물이다. 사자나 기린이나 낙타가 후회를 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후회를 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얼마나 괴롭고 덧없는 존재인가. 1939년경에 써졌다는 <나무>란 시에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일깨워 준 대목이 있었다. 나는 홍이를 그리는 밤이면 홀로 조용히 그 시를 암송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해지면 바람이 멈춘다. 바람이 일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것들이 그대로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움직이고, 형태를 만들며 존재하게 하는 것이란 걸 가르쳐 주었다. 내가 태연히 있으면 세상도 고요히 있으려 한다고 시인은 내게 깨우쳐 주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 그를 죽인 시대의 후예인 내 마음에 시인의 생생히 살아있는 사고(思考)의 비가 조용히 내렸다. 홍이가 모는 자동차가 서울타워 부근에서 멈췄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는 홍이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 오려고 차를 몬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치 산정에 오른 걸 후회라도 하는 듯이 차를 세웠다. 할 수 없이 거기에 차를 세운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이끌려 갔고 또 거기서 멈추었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별이 쏟아지는 밤, 얼어붙은 우주공간 바로 밑에 우리를 태운 우주선은 어쩔 수 없이 정박한 것이다. 은하계에서 멀리 떨어져 두 사람은 캡슐 안에서 단 둘이 되었다. 멀리서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말을 잃고 그곳에 있다. 나는 기적적인 재회가 가져다 줄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이 재회를 무의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먼저 침묵을 깬 건 홍이었다. 목소리는 조금 떨렸고 시선은 서울의 야경보다 더 먼 곳에 있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 홍이의 두 번째 말은 첫 번째보다 더 냉정했다. 칠 년 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홍이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거기엔 끊어진 회선이 방치된 채로 있고, 나는 접속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끊어진 회선의 단면을 바라본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7년보다 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공지영 그와 나는 이렇게 단둘이만 차에 있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차가 없었으니까. 그때 우리는 가난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 서로 스치듯 장난을 치거나 전철에서 내가 그의 팔짱을 끼고 꼭 붙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 둘만이 있는 것은 그의 방에서말고는 처음이었다. 겨드랑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갑자기 모든 길들이 내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서 사람 하나를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야, 나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준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실루엣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크게 숨을 내쉬고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딱히 갈 곳도 없었고, 그와 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카페로 갈 수도 없었다. 오래도록 내 마음을 자주 배반하던 내 몸은 그와 나를 남산 중턱으로 데려가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 차가 생긴 이후 나는 자주 거기에 올라갔었다. 어떤 날은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가지 않고 빛나는 서울의 불빛들을 바라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필자를 만나고 돌아오다가 서울타워 위로 넘실거리는 오렌지쥬스빛 노을을 바라보곤 했었다. 해발 200미터인 이 산에서는 계절마다 가지가지 꽃향기가 다르게 풍겨왔다. 서울의 밤 풍경은 검은 벨벳 상자에 놓인 보석들처럼 맑았고, 한강의 다리들로 오가는 차들의 불빛들조차 유리꽃처럼 반짝였다. 멀리서 보니까 그랬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대개는 모든 사물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걸까? “아직도 달리니?” 그가 많이 생각한 어투로 물었다. 그가 입을 여는 기척에 너무도 긴장해 있었는데 엉뚱한 질문이었다. 하마터면 갑자기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너는,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엉뚱한 소리 하는 거, 타이밍 못 맞춰서 내 기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거… 그러자 비로소 내가 아오키 준고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내 마음속 호리병에 갇힌 베니라는 여자는 오랫동안 묻고 싶어했다. 만일 다시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노가시라 공원의 그 나무다리는 잘 있니? 꼬치집 아저씨도? 카페 안나 그 부부도? …아침이면 호숫가에서 시끄럽게 울던 까마귀들이랑… 프로방스 빵집 마리코도? 말씨가 부드럽던 너의 아버지… 기치조지 역 북쪽의 메밀국수도 여전히 맛있니? 내가 없어도 다들… 여전한 거니? 그 후로 몇 번 일본에 갔었고, 도쿄에도 갔지만 차마 그 기치조지 역 근처에는 갈 수가 없었거든… 왜냐하면…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다시 침묵이 우리들이 앉아 있는 좁은 차 속으로 푸딩처럼 엉겨 붙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늘 차를 세우던 바로 그 장소에 차를 세웠다. 이곳에 누군가와 함께 온 적은 없었다. 민준이 드라이브를 하자고 할 때도 나는 짐짓 이곳을 모른 척 지나 서울타워에 올라갔었다. 왠지 이 장소는 나 이외의 어떤 사람하고도 오지 않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준고와 함께 여기에 멈춘다. 왜일까? 먼 곳의 불빛들이 손짓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하다가 바람이 불면 신기하게도 작은 파도가 일 듯 파르르 떨리곤 했다. 먼 들판에 들꽃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창 밖은 겨울, 영하 10도. 입을 열지 않아도 건조하고 찬 대기 속으로 입김이 주전자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처럼 하얗게 밀려나올 것이다. 준고는 내가 묘사했던 그 서울의 겨울을 보고 싶어했었다. 키가 큰 가로등 빛 아래서 나무들의 수피(樹皮)가 국수가닥처럼 하얗게 드러나 보였다. 나는 이마에 손을 짚었다. 진땀이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시계를 언뜻 보았더니 7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자동차 시계에서 7이라는 숫자도 반짝이고 있었다. 7년보다 긴 하루가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할 말이 있으면 해.” 내가 물었다. 준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멀리 검은 한강의 물 사이로 반짝이는 오색 줄을 여러 겹 흔들고 있는 듯 자동차들의 불빛들이 보였다. 다리 위의 가로등들은 주황색 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하늘은 그 위로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다. 오늘 밤에는 어떤 별들이 떠서 말갛게 눈을 뜨고 이 도시를 바라볼까? “너한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언젠가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었어.” 준고는 무슨 말이든지 하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눈가로 몰려왔다. 피들이 얼굴 앞쪽으로 몰려서는 것처럼 아주 무거운 기분이었다.
나는 홍이를 그리는 밤이면 홀로 조용히 그 시를 암송했다 쓰지 히토나리 어두운 남산 저편으로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 분지에 무수한 광원(光源)이 서로 빛을 발하고 있다. 보석을 뿌려놓은 듯 어둠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창백하게 타들어가듯 빛나고 있다. 그 투명한 빛은 평생 조국을 그리던 시인 윤동주의 한 편의 시와 같다. 하지만 그런 내 느낌을 홍이에게 전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아직도 달리냐고 묻고 만다. 먼 별의 깜박임처럼 아련한 대답으로 나는 아직도 홍이가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책꽂이에서 유품처럼 한 권의 시집을 발견했다. 그건 홍이가 어느 날 나를 위해 사온 윤동주의 일본어판 시집이었다. ―번역이 훌륭하니까 분명히 한국어로 읽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을 거야. 관심은 있었지만,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쫓겨, 결국 홍이와 교제를 하던 중에는 그 책을 읽지 못했다. 홍이가 사라진 어둡고 적막한 방에서 쓸쓸하고 가슴 저민 밤들을 보내던 나는 책장 구석에 낯선 시집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홍이는 윤동주에 대해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홍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시인의 슬픈 반생을 듣고 어쩐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좀 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긴 다음에 천천히 읽어야겠다고 책장에 꽂아 두었다. 마치 넓은 사막의 모래 속에 묻어 두듯이. 시집을 손에 든 나는 엎드려 별 생각 없이 책장을 펼쳤다.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거기서 홍이의 흔적을 찾기라도 하듯이. 책장을 열자 잉크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대충 넘기던 페이지의 첫 말이 그대로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투명한 언어의 빗줄기. 내 일본어적 의식 속에 윤동주가 엮어낸 하나하나의 한국어가 용액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만난 적도 없고 전혀 다른 시대를 산 그의 말이, 그에게는 외국인인 내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어 왔다. 내 육체로 들어온 말의 작은 입자는 내 안에 있는 시간과 인생과 사고를 동시에 관통해 갔다. 어느새 나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하고 책과 마주하고 있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써지는 것은/부끄러운 일이다.” 이 행을 읽은 순간 혼에 부딪치는 듯한 너무도 큰 감동에 저절로 등줄기를 바로하고 눈을 깜빡거리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잊어버리고 창 밖의 숲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대학 도서관으로 가 그에 관한 조사를 시작했다. 이 시가 써졌을 시대와 그가 놓였던 상황과 분위기와 냄새, 죽음을 상상하며 깊이 숨을 죽였다. 시인과 독자인 나 사이에 놓인 문제가 홍이와 나 사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나는 윤동주의 시에 홍이의 마음을 비쳐 보았다. 어째서 그때 나는 이 시집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후회 투성이인 동물이다. 사자나 기린이나 낙타가 후회를 한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후회를 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얼마나 괴롭고 덧없는 존재인가. 1939년경에 써졌다는 <나무>란 시에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일깨워 준 대목이 있었다. 나는 홍이를 그리는 밤이면 홀로 조용히 그 시를 암송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해지면 바람이 멈춘다. 바람이 일어 나무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것들이 그대로 존재함으로써 세상이 움직이고, 형태를 만들며 존재하게 하는 것이란 걸 가르쳐 주었다. 내가 태연히 있으면 세상도 고요히 있으려 한다고 시인은 내게 깨우쳐 주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 그를 죽인 시대의 후예인 내 마음에 시인의 생생히 살아있는 사고(思考)의 비가 조용히 내렸다. 홍이가 모는 자동차가 서울타워 부근에서 멈췄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는 홍이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곳에 오려고 차를 몬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치 산정에 오른 걸 후회라도 하는 듯이 차를 세웠다. 할 수 없이 거기에 차를 세운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이끌려 갔고 또 거기서 멈추었다고 해도 무관할 것이다. 별이 쏟아지는 밤, 얼어붙은 우주공간 바로 밑에 우리를 태운 우주선은 어쩔 수 없이 정박한 것이다. 은하계에서 멀리 떨어져 두 사람은 캡슐 안에서 단 둘이 되었다. 멀리서 별이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말을 잃고 그곳에 있다. 나는 기적적인 재회가 가져다 줄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이 재회를 무의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다. “왜 아무 말이 없어?” 먼저 침묵을 깬 건 홍이었다. 목소리는 조금 떨렸고 시선은 서울의 야경보다 더 먼 곳에 있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 홍이의 두 번째 말은 첫 번째보다 더 냉정했다. 칠 년 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홍이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거기엔 끊어진 회선이 방치된 채로 있고, 나는 접속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끊어진 회선의 단면을 바라본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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