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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재소설 - 먼하늘 가까운 바다

한일 공동소설 - 먼하늘가까운바다 <16>

등록 2005-10-13 16:20수정 2005-10-13 16:20

먼하늘가까운바다 <16>
먼하늘가까운바다 <16>
“최홍 씨는 참 어두워,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 같아”
“선생님에게는 독한 추억이 있나요?”

공지영

식사를 마친 엄마는 개수대의 그릇을 꺼내 씻기 시작했다. 엄마의 기분이 별로라는 걸 어젯밤부터 느끼기는 했었지만 계절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그릇들을 다 꺼내어 다시 씻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엄마의 기분이…, 그러니까 별로인 것 같았다. 나는 그러는 엄마가 조금 안쓰럽기도 해서 하는 수 없이 청소기를 꺼내들고 거실을 청소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육체를 움직이는 것도 좋은 일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 리포트 써야 돼, 마저 마쳐야 한다구, 청소기의 소음을 들은 록이가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는 구석구석을 청소기로 밀었다. 아무래도 록이와는 달리 나는 맏딸이다. 이상하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내가 싫다고 말했던 엄마의 어떤 부분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엄마는 늘 말하곤 했다.

―하지 말고 그냥 둬라. 시집가면 맨날 할 텐데.

그러면 나는 입술을 뾰로퉁 내밀고 말하곤 했다.

―난 안 해! 하녀가 있는 남자에게 시집갈 거야.

그러면 록이가 대개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끼어들곤 했었다.

―하녀가 있는 남자가 뭐 하러 장가는 가겠어?


아니다. 나는 안다. 사랑에 빠지면 사람은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만 같다. 집안일을 싫어하는 나였지만 나는 준고의 집을 누구도 손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땀내가 배어 있는 그 속옷을 누구에게도 빨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과는 달리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던 도쿄의 날씨, 나는 아직 덜 마른 그의 티셔츠와 바지 그리고 준고의 속옷까지 정성스레 다림질을 하고 향긋한 세제의 냄새가 풍기는 그 속옷 하나하나에 입을 맞추었다. 어느 날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기다가 조그맣게 내 입술 자국을 내어놓기도 했다. 그걸 본 준고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면서… 대청소를 하면서 또 그의 생각이 떠오르다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져서 나는 서둘러 거실을 정돈하고 진한 녹차를 끓였다. 말간 겨울 햇살이 누런빛의 정원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녹차의 연한 초록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한때 저 정원이 지치도록 짙푸른 초록으로 덮여 있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겨울에 태어나 겨울에 죽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어떻게 한때 저곳에 붉고 노랗고 하얀 꽃들이 피어났었다는 것을 믿게 할 수 있을까 말이다. 시들어버린 걸 두고 한때 저건 지치도록 푸른 빛깔들이었어, 하고 말할 수 있을까. 나조차도 가끔은 그게 믿어지지 않았다.

―베니, 네 얼굴은 늘 이상한 생기로 가득 차 있어…. 일이 힘들어지면 나는 늘 네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을 기억해.

그건 준고가 한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이가 든 필자 선생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었다.

―최홍 씨는 참 어두워.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 같아.

그때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선생님에게는 독한 추억이 있나요?

나는 조금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시비 걸 듯이 대꾸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몸을 씻어도 아무리 딴 생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취기 같은 거…. 그런 독한 기억이 있느냐고요?

나는 조금 슬픈 기분이 되어 녹찻잔을 탁자에 놓고 부엌으로 갔다. 말갛게 씻긴 그릇들을 마른 행주로 닦고 있는 엄마의 허리를 뒤에서 가만히 껴안았다.

“얘가 안 하던 짓을 하니.”

엄마는 싫지는 않은지 조금 웃었다. 나는 엄마의 등에 얼굴을 대었다. 등은 조그맣고 따뜻했다. 엄마의 이 조그만 몸에서 키가 훌쩍 큰 우리 자매가 나왔다는 것도 실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아기였을 적의 엄마 얼굴을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얼마나 부분적인 것인지.

“엄마는 아빠를 아직도 사랑해?”

내가 물었다. 내가 뺨을 대고 있는 엄마의 등이 잠시 굳어졌다.

“…사랑은, 하지. 그런데 좋아하지는 않아.”

나는 엄마의 등에 계속 얼굴을 댄 채로 엄마가 틀어놓은 개수대의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랑은 하는데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엄마, 나 민준일 좋아하고 있어. 참 보기 드물게 훌륭한 남자라는 것도 알고 있어. 엄마 맘에 들고 아빠 맘에 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 맘에 든다는 것도 알고 있어.”

엄마가 행주질을 멈추고 허리를 감고 있는 내 손을 떼어놓은 다음 나를 돌아보았다. 왠지 나는 엄마를 똑바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말할 수도 없었다. 훌륭한 남자라고 해서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가 왔니? 하고 엄마가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니라면 나는 말했을 것이었다. 하느님이 미워, 엄마.


아버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나도 홍이가 만든 미역국을 먹어 보았다

쓰지 히토나리

어느 날, 홍이와 쇼핑을 나가려는데 아버지한테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치조지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니시오기쿠보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버지가 거실 피아노 옆에 쓰러져 있었다. 허리를 삐끗했다는 걸 알고, 우리는 일단 한숨을 놓았다.

―피아노를 옮기려다 이렇게 됐다.

―뭐야, 못 움직인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만해서 다행이에요.

―바보 같으니. 다행이긴 뭐가.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한심하게 됐다.

상체가 틀린 채 주저앉아 있는 아버지를 나와 홍이가 반듯이 뉘었다.

아버지가 홍이를 보더니 어라, 하고 말했다. 홍이는 아버지를 내려다보며 안녕하세요, 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자네, 이 바보 녀석 애인?

아버지는 옛날부터 나를 ‘바보 녀석’이라 부른다. 아버지로서는 친근함의 표시지만, 처음 만난 친구나 주변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 반응이 재미있어 아버지가 히죽히죽 웃으니 주위에는 더욱 이상한 사람으로 비친다. 때문에 아버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가 꺼려진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유도 어쩌면 아버지의 이런 성격과 맞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보 같은 여자라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네 엄만 나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게야. 그것뿐이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거다. 우린 둘 다 표현을 하는 사람이니까. 너한테는 미안하게 됐다만, 그런 부모 밑에 태어났다 생각하고 참아 줬으면 한다.

그날, 아버지는 웬일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홍이가 만든 한국식 미역국을 깨끗이 비운 다음이다.

아버지는 홍이에게 이렇게 맛있는 국은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고마워했다.

아버지가 홍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집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온 건 처음이었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칸나를 아버지에게 소개시킨 적이 없었다. 아들이 처음 여자를 데리고 집에 온 것이다. 아버지 눈에 홍이에 대한 흥미가 차고 넘쳤다.

―한국인 친구가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홍이는 어머 그러세요, 하며 미소로 답한다.

―젊은 시절, 뉴욕에 있는 오케스트라에 있었을 때 만난 친구지. 3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편지를 준단다. 참 좋은 남자야. 자주 밥도 같이 먹었고.

아버지가 홍이를 맘에 들어 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에둘러 홍이가 어려워하지 않도록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홍이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 기뻤다. 홍이도 금방 아버지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집을 나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정말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매일 먹을 수 있음 좋겠구나.

아버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 나도 홍이가 만든 미역국을 먹어 보았다. 전혀 맛이 없었다. 레스토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내 쪽이 홍이보다 훨씬 음식솜씨가 좋았다. 발림 말이라도 칭찬하기 어려운 홍이 음식솜씨에, 평소엔 좀처럼 하지도 않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가 내겐 특별했다.

―아버님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한국음식 많이 만들어 드릴게요.

아버지가 어쩐지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며 내게 손을 뻗었다. 홍이와 둘이서 부축을 해 안아 일으킨다. 아이쿠, 아야 하면서도 아버지는 일어났다.

―야, 섰다. 이건 홍이가 만들어 준 국 덕분이다.

피아노 가장자리를 손으로 짚어가며 아버지가 한 바퀴를 돌아 보였다. 무리하지 마세요, 하며 홍이가 아버지 뒤를 따라 돈다. 그건 이미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좀 더 기운을 차렸는지 첼로를 꺼내 홍이를 위해 첼로 연주를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첼로조곡 6번, 작품번호 BWV1012, 사라방드다. 마음을 담은, 관객을 배려하는 아버지다운 성실한 연주였다.

아버지는 하루도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오케스트라를 그만둔 다음에도 언제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니까, 하며 매일 첼로와 마주했다. 늙은 첼리스트에게는 아무런 의뢰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시간만 있으면 연습을 했다.

아버지의 첼로는 기본에 충실한 ‘훌륭한 견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연주로, 어머니의 인격이 배어 나오는 개성적인 피아노와는 정반대로, 빛을 발하는 일 없이 지루한 느낌이다. 충실함만이 그의 모토로, 일부러 주의를 끄는 연주만큼 사람을 싫증나게 하는 연주도 없다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건 어머니에 대한 은근한 비판으로도 들렸지만 진의를 확인한 적은 없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목조로 된 이층짜리 단독주택이었지만, 훔쳐갈 만한 것이라곤 없는 탓에 어렸을 때부터 집에 문을 걸어 잠근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열쇠도 보기 드물다. 첼로를 보관해 둔 곳에만 자물쇠를 걸어 뒀을 뿐이다.

고등학교까지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이층에 있는 작은 방 두 개, 지금은 창고처럼 되어버린 그 중 하나가 내 방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혼자 사는 게 꿈이었지만, 당시 아르바이트가 많았던 건 내 학비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파트 월세에 가끔은 아버지께 얼마간의 용돈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옛날에는 여기에 아내와 아들이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모두 나가 버렸어.

홍이가 날 쳐다보았다. 나는 그저 어깨를 들썩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경 쓸 일이 없으니, 혼자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아버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홍이에게 말했다.

/ 그림 이보름 번역 김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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