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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재소설 - 먼하늘 가까운 바다

한일 공동소설 - 먼하늘가까운바다 <41>

등록 2005-10-13 17:14수정 2005-10-13 17:20

먼하늘가까운바다 <41>
먼하늘가까운바다 <41>

때로 진실은 이렇게 난데없는 곳에서 암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공지영

포장마차에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부녀가 들어서자 내 얼굴을 아는 주인 아주머니는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민준이 아닌 것이 약간 의아한 것 같았다.

“아빠라고 말 안 할 거야. 멋있는 중년의 애인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있는 아버지에게 팔짱을 끼며 귓속말을 하자 아버지가 살며시 웃었다. 지난번 부도의 위기를 겪은 이후 건강이 약해진 아버지는 집에서 좀처럼 술을 하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소주라면. 그런데 아버지는 소주와 대합탕을 시켜놓고 내 잔에 술을 따랐다. 출판사의 회식 자리라면 몰라도 이런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우리 부녀는 투명한 소주가 담긴 작은 잔을 하나씩 들고 가볍게 부딪쳤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밝게 웃어주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교토의 그 사람….”


내가 두 잔쯤 마셨을 때, 반 잔도 비우지 않았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런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사에키 시즈코 씨?”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상처 위에 소독약을 붓는 것처럼 쓰라린 표정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직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아버지가 나는 문득 가여워졌다. 우리 아빠, 라고…. 우리, 라는 단어를 넣어서 아버지를 불러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그런 내 눈길을 느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아버지의 눈에는 이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딸을 한 사람의 여자로 인정해야 하는 이 세상 모든 아비들의 회한과 용기 같은 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내 마음속으로도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한 사람의 여자가 되어 아버지를 떠나야 한다는 이 세상 모든 딸들의 슬픔과 기쁨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많이 잘못했다…. 네 엄마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할아버지가 반대하신 거였잖아.”

내가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어 다 안다는 듯한 어투로 대꾸했다. 아버지는 술잔을 그러쥔 채로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여자를 거절한 것은 나였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일본을 싫어했고 그래서 반대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 진실은 이렇게 난데없는 곳에서 암초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할아버지 핑계를 댔지. 거짓말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만, 그 여자에게 한국의 사정을 설명해주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어….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10년이 채 안 지난 그때, 아직도 식민지였던 분노가 남아 있는 나라로 그녀의 손을 이끌고 올 수가 없었다.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그 여자가 한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걸 보는 게 견딜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렇다고 맏아들로서 일본에 가서 살 자신도 없었고….”

“이해할 수가 없어, 아빠. 사랑했다면… 그게 진짜였다면… 아빠는 그렇게 함으로써, 아빠는 두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잖아.”

나는 나쁜 딸처럼 말했다. 그렇지만 꼭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아니었다. 나는 이제 내가 아버지를 딸로서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대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겁했던 거지….”

아버지는 남은 술을 마저 마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가 앉은 포장마차 밖으로 광활한 시베리아와 거대한 만주 땅과 높다란 개마고원을 모두 지나왔을 대륙의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포장마차의 천막이 펄럭펄럭했다. 문득 흔들리고 있는 것이 그 천막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홍아….”

아버지가 낮게 말했다. 딸 앞에서 미안하다고 하는 아버지와 딸 앞에서 자신이 비겁했다고 말하는 아버지는 그럼에도 용감해 보였다. 귀밑으로 보이는 머리는 희끗거리고 엷은 주름이 진 얼굴은 건조해서 까칠해 보였지만 실은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은 슬픈 느낌을 주었다.

“우리 애인처럼 손잡아, 아빠.”

나는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며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아버지는 다시 웃었다.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선명했다. 아버지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부르셨다. 제대로 말도 못 하시는 양반이 힘겹게 말씀하셨어. 홍이 너를….”

술잔을 들다가 내가 멈칫, 했다. 등줄기를 따라 차고 굳은 것이 주룩 흘러내렸다.

“너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젊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의 상처를 물려주지 말라고.”

나도 모르게 잔에 남은 술을 다 마셔버렸다. 내 곁에 앉은 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나는 아버지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사사에 선생을 보고 있으니, 그때 생각이 나서…. 록이의 홈페이지에서 그 이야기를 읽긴 했다만….”

내가 고개를 들고 아버지의 말을 막았다.

“아니야, 아빠. 나 독립운동 하려고 그 사람하고 헤어진 거 아니야. 아빠가 혹은 엄마가 결혼하라고 내 등을 밀었더라도 우린 끝났을 거야…. 아빠, 사랑은 어쨌든 끝나는 거잖아. 헤어져도 끝나고 결혼해도 끝나고….”

나는 말을 다 이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붓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질 때면 나는 윤동주 시집을 꺼내 읽었다

쓰지 히토나리

홍이가 떠난 후, 나는 마치 혼이 빠진 허수아비 같았다. 아무런 의욕도 없었고 학교를 빠지기 일쑤였으며 중요한 아르바이트였던 문예지 일도 그만두었다. 편집장은 정식사원으로 고용할 생각이었는데, 하며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권유를 거절해야 할 정도로 홍이의 부재가 가져오는 고독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 때 유일하게 나를 달래 준 것이 윤동주의 시였다. 어느 때 윤동주는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고 내게 속삭였다. 때로는 아무런 의욕도 없는 내 모습이 가여운 듯

-괴로운 사람아 바다로 가자

하고 내 등을 떠밀어 주기도 했다.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하는 위로의 말을 건넨 적도 있었고

-이글이글 불을 피워 주오

이 방에 찬 것이 서립니다.

하고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으며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하고 인생의 목표를 넌지시 가르쳐 주기도 했다.

이 시들을 몇 번이고 소리 내 읽으면서 나는 조금씩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윤동주가 들려준 시 덕에 나는 내 말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홍이가 집을 떠나고 처음 찾아 온 가을부터였다. 나는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학교로 돌아갔으며 그리고 나머지 시간, 예전에는 홍이를 위해 썼던 시간에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원고지의 한 칸 한 칸을 채워가며 그곳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글을 씀으로써 치유되고, 글을 씀으로써 구원을 받던 날들….

윤동주가 일본에서 보냈던 그 가혹한 시간에 그를 지탱해 준 것은 모국어로 쓴 시가 아니었던가.

윤동주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나에게 어떻게 그의 말이 울릴 수 있는지, 나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인인 내가 안이하게 윤동주의 시를 이해한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 꺼려지지만, 국경을 뛰어넘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그 시어의 폭넓은 보편성이야말로 윤동주 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하겠다.

그가 비웃지 않을 작품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원고지와 마주할 때마다 내게 물었다.

서툰 문장이나마 형태가 갖추어지자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으며 고치기를 거듭했고, 원고지가 새까매지면 새 원고지에 옮겨 적어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홍이를 마음 속 등불로 밝혀두고 그 자그마한 빛에 의지해 긴 시간을 나는 써 내려갔다.

붓이 게으름을 피우거나, 혹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워질 때면 나는 윤동주 시집을 꺼내 읽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1941년에 쓰인 서시의 첫 부분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윤동주 시의 핵심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이 말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학교에서 배운 것 이상으로 공부해야 했다. 홍이와 함께 있을 때는 돌아보려 하지도 않았던 역사의 무거운 책장을 넘기는 노력을 이제 나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짧은 시의 행간에서 시대의 틈바구니에서 괴로워한 그의 젊은 날의 고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인간의 투명한 희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한 점 부끄럼 없는 길을 걸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바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순수한 감성을 지닌 젊은이에게는 가능한 일일 것이다. 거기에는 앞만 바라보는 무모함과 진실만을 바라보려는 맑은 정신과, 인간의 본질이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시의 첫 부분이 다음으로 연결될 때, 인간이 지니고 태어난 숙명과 한계를 넘어 기도와도 같은 높은 경지로 승화되는 것을 읽는 이는 알게 된다.

그곳에는 굳은 결의와 관대한 마음이 있다. 청년이 청년일 수 있었기에 빚어낼 수 있었던 결정 같은 시다. 그 아름다운 정신 안에는 의연한 신념이 깃들어 있다. 시인의 말을 더듬어 가면 그 안에 담긴 용기와 가능성과 따뜻함을 동시에 알게 된다.

나는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을 걷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그렇게 간단히 단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홍이와 헤어진 다음 해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의 첫 원고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다 쓴 원고를 책상 속에 넣어 두고, 그 속에 담은 생각과 마음을 갈고 다듬을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 그림 이보름번역 김훈아

* <먼 하늘 가까운 바다>
는 다음주부터 매주 목요일 치에 한 차례씩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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