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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재소설 - 먼하늘 가까운 바다

한일 공동소설 - 먼하늘가까운바다 <연재후기>

등록 2005-11-30 17:00수정 2006-01-23 13:22


“소설 주인공 홍이와 준고, 한·일 이란성 쌍둥이 낳은 느낌”

공지영

이년전 시작된 일을 이제사 마치는 제 마음은 어떤 연말을 보내는 것보다 많은 감회로 설레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동안 쓰지 히토나리와 주고 받은 편지들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있노라니까 동그랗기만 한 수정란 하나가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로 형체를 갖추어 이제 막 아기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저 한국와 일본 두 젊은이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홍이와 준고라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고 있는 어미의 대견함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 순간을 위해 소설가들은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나라 사이 역사극복 힘든 일이지만
우리 두 작가의 글이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한 걸음’ 됐으면…

공지영
공지영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저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가장 망설였던 것은 이 나이에 사랑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쑥스러움이었지요…. 그러나 한국으로 날아온 쓰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후에 저는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이웃나라 한국과의 우정을 그리고 싶다는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것뿐이라면 이야기는 좀 지당한 방향으로 흘러갈 뿐이겠지요 .그런데 이야기 끝에 함께 집필을 할 작가가 왜 하필 저였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파리의 한국식당-쓰지는 실은 유명한 그의 배우 출신 부인 나카야마 미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일주일에 세 번은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했습니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신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잘 봐주는 한국 유학생이 실은 제 팬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함께 작업을 하기를 그가 간절히 바란다고도 했습니다. 함께 자리를 한 모두가 웃었지요. 저는 그의 소박하고 솔직한 말에 실은 매료되었습니다. 일본인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던 껄끄러운 선입견 같은 것이 통쾌하게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라면 함께 작업을 해도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게다가 그의 성향을 알기 위해 뒤져본 그의 자료에서 저와 비슷한 수많은 생각들의 편린을 발견하고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 이년 동안 이 소설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된 2005년,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들이 우리들을 잠시 머뭇거리게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양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서로의 다른 시각이 메일로 한국과 프랑스로 날아다녔습니다. 막연히 괴로워하고 있던 제게 날아온 편지,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를 다시 공부하고 있다는 쓰지의 메일은 제게 다시 힘을 주었지만. 만일 이 글이 한겨레에 연재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계획은 수태 단계에서 이미 사라져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때 이런 때일수록 용기를 가지고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고, 격려해준 당시 문화부장 이인우 기자와 문학전문 최재봉 기자의 역할은 우리 두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특수한 역사가 아니었다 해도 자라난 배경과 언어가 다르고 제각기 자기의 소설 방식에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우리 두 사람의 작업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대사와 상황 하나하나를 서로 상충되지 않도록 점검하고 상대국의 언어가 가지는 뉘앙스를 조절하며 두 사람에게 쉼 없이 편지를 써야 했던 코디네이터 겸 번역가 김훈아 선생의 역할은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겠지요. 무엇보다 소설을 쓴 지 거의 이십년을 맞아가는 제게, 그동안 편집자들도 하지 않았던 독촉(?)을 해준 작가 쓰지의 역할은 놀랍고도 충실한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저는 부지런한 쓰지의 질책을 받을 때마다 자세를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았으니까요. 독도 문제가 불거지고 교과서 왜곡문제가 터져나왔을 때, 한국을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고 싶은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며 거주지 파리에서 만사를 제치고 날아와 저와 함께 6·10 항쟁 마라톤에 참가했던 쓰지의 열정과 성실함을 저는 아직도 감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전날 거의 밤을 새운 그가 운동화 끈을 조이고 달려가던 모습은 아직도 신선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곁에서 함께 달려가던 한국의 젊은이들의 모습도 함께 말이지요.


그러나 글을 쓰는 내내 사실 저는 일본을 취재하러 갔을 때의 어떤 광경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기치조지 역 근처 골목길을 서성이며 여기저기를 취재하고 있을 때 우리를 스쳐지나가던 일본의 꼬마녀석들…. 안녕하세요! 하고 외치던 그들.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우리가 무엇을 하러 왔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자신들이 들은 적이 있는 한국말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큰 소리로 인사해주었던 그 아이들… 말이지요. 그때 생각했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가 한 역사를 매듭짓고 청산하고 극복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구나, 하는 걸 말이지요. 결국 역사라는 것도 과거사라는 것도, 그것의 극복이라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면 어느덧 우리 모두는 함께 있을 테니까요. 우리 두 사람의 글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단숨에 변화 시키는 일은 당연히 없을 테지만 쓰지와 저는 아마도 일본과 한국의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그것으로 이미 우리 두 나라는 한 걸음만큼 가까워진 것이니까요.

글을 쓰는 동안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제게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결국, 쓰지와 제가 탄생시킨 홍이와 준고를 키워가는 것은 당신들의 몫이라는 말씀을 덧붙여도 될까요.

감사합니다.


“소설에서처럼 두 나라 후손들이 손에 손잡고 달릴 수 있기를”

쓰지 히토나리

‘한·일 우정의 해’인 올 한 해 양국에서는 다양한 문화 교류가 있었습니다. 공지영 작가와 일본 작가인 제가 공동 연재한 이번 소설은 그중에서도 기념할 만한 것으로 양국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특기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소설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듯한 예술 장치로 과연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리는 이야기를 거듭한 뒤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이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연애 소설이라는 것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 슬픈 일
윤동주 시 읽으며 연재 계속
한·일작가들 쉼없이 붓 움직여
두나라 우호관계 앞당겨야

쓰지 히토나리
쓰지 히토나리
현재 일본에서는 공전의 한류 붐이 일고 있습니다만, 그 이면에도 진정한 우호 관계가 다져지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어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인기 배우나 가수들이 계기가 되어 마련된 다리는 과거 어느 정부 간의 교류에서도 건널 수 없었던 위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는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면서도 양국에 가로놓인 역사 인식을 주인공들의 중심 배경에 두고 다음 세대에까지 남길 수 있는 튼튼한 아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메일은 소설 분량에 못잖을 만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정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달리는 한일 양국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그릴 생각이었습니다. 작품을 써 내려가기 전에 면밀한 구상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공지영씨의 연재 마지막 회는 슬픈 이별로 끝났습니다. 작품 한쪽이 손을 잡지 못하는 장면으로 끝난 것은 현재의 한일 관계를 상징하는, 오히려 시의 적절한 결말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우리는 처음에 약속한 밝은 미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합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신문 연재와 단행본의 마지막 장면에 다소 차이를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두 나라의 미래를 단행본의 마지막 장면에 풀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며칠 전에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준고와 홍이의 미래가 궁금한 독자께서는 꼭 읽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연재가 끝나기 조금 전인 11월의 19일에 아펙(APEC)이 폐막되었습니다. 일본 수상이 현재의 아시아 외교에 대해 “어떤 문제도 없다”라고 발언한 데에 저는 공허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 해 동안 시민 차원에서 우호의 해의 의미를 찾으며 노력한 사람들이 이제 그 결실을 걷어들이려는 시점에서의 발언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을 사랑하는 한 시민입니다만, 수상의 애국심에는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안일한 역사 인식으로 주변국, 특히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나라의 국민들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그 무신경함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겠죠.

일본이 주변국으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데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나는 내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자기 나라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겠죠. 역사를 왜곡하거나 과거의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결코 자기 나라를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나친 가해자 의식이 초래한 역사 왜곡이라면 이보다 불명예스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더욱 진지하게 과거를 직시해야 합니다. 진정한 부전(不戰)의 맹세는 그 바탕에서 이루어지겠죠. 야당인 민주당의 새 대표 또한 열린 생각을 갖지 못해 현재 일본은 여야 모두가 강경 노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세가 21세기 아시아에서의 일본의 입지를 호전시키는 방법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으며, 정치인의 얕은 양식에 슬퍼질 뿐입니다. 가슴을 펴고 한국과 아시아의 친구들과 일본의 한 개인이 서로 마주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일는지요.

연재 기간 동안 저는 한겨레신문사의 초청으로 시민달리기대회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를 기념해 참가한 7천여명의 독자와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함께 달렸습니다. 행사장 한쪽에는 항일 운동 당시의 생생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출발 전에는 긴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은 저와 함께 달려 주셨습니다. 그중에는 일본에 대한 응어리가 아직 남아 있는 분들도 계셨겠지만, 일본인인 저 개인에 대한 미움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인의 훌륭한 마음을 현지에서 실감했던 저로서는 고이즈미 수상의 한가한 발언이 너무나 유감스럽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끊임없는 격려로 저는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인 저에게 여러분은 따뜻한 박수와 응원을 보내 주셨습니다. 고이즈미 수상이 늘 이야기하는 미래 지향적인 우호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민간이나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적어도 정부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더욱 돈독한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닌, 우호의 해를 함께 보낸 많은 분의 생각일 줄 압니다. 이해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어째서 정치 차원에서 실현시키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획기적인 연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을 저는 대단히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진정한 우호 관계는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를 그저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 해 한 해를 새로운 우호의 시작이라고 되새기며 시민이 하나가 되어 이 일을 이끌어 가야겠죠.

저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일본인이고 싶은 마음으로 연재해 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달려온 공지영 작가와의 훌륭한 우정으로 이렇게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자신감과 재능을 타고난 작가 공지영씨와의 우정을 키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커다란 수확입니다. 나의 후손이 공지영씨의 후손과 아시아의 일원으로 손에 손을 잡고 달릴 수 있는 미래와 세상을 간절히 빕니다. 그리고 그 시기가 그리 멀지 않도록 양국의 작가는 쉼 없이 붓을 움직이고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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