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의 이국적인 풍경.
오는 9일부터 4일간 한가위 연휴가 이어진다.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집에서 3~4시간 거리에 있는 여행지를 함께 찾는 일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단 한 번의 여행> 등 여행 책 여러권을 출간한 20년 경력의 최갑수 여행작가가 ‘가벼운 여행지’를 소개한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의 이국적인 풍경. 최갑수 제공
바람의 언덕이 손짓하다…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끝에 임진각이 나온다. 분단의 상징이 된 임진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의 상징으로 전환시킨 곳이 평화누리 공원이다. ‘바람의 언덕’과 ‘음악의 언덕’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가족과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유명하다. 멀리서 보면 이스터섬의 모아이상을 연상시키는 설치작품이 우뚝 서 있는데, ‘통일 부르기’라는 이름을 단 조각품이다. ‘바람의 언덕’에는 3천여개의 바람개비가 장관을 연출한다. 임진각 옆, 철책선 앞에 사방이 통유리로 된 카페도 있다. 커다란 탁자와 벤치 두개가 전부인 실내가 미니멀하다. 철책선 너머 들판을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맛이 묘하다.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근처에 있는 카페. 최갑수 제공
강원 홍천 공작산 생태숲과 산소길을 걷기 좋은 여행지다. 최갑수 제공
싱그러운 숲 향기 만끽…강원 홍천 공작산 생태숲과 산소길
수타사 산소길은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에서 시작해 수타사와 공작산 생태숲, 출렁다리, 용담을 거쳐 공작산 생태숲 교육관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전체 길이 3.8㎞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가족들의 손을 잡고 걷기 좋은 길이다. 수타사는 708년(성덕왕 7년) 원효 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졌다.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 좋게 포장되어 있다. 층층나무, 귀룽나무, 물푸레나무, 말채나무, 졸참나무 등 공작산 숲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싱그러운 공기가 숲에는 가득하다. 깊은숨 한번 들이쉬면 이 길이 왜 산소길로 불리는지 절로 이해가 된다. 홍천은 고추장 화로구이가 유명하다. 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 삼겹살을 참나무 숯불에 구워 먹는다.
반전을 거듭하는 거리…대전 소제동
대전역에서 10여분 거리에 소제동이 있다. 옛 철도청 관사들이 모여 있던 마을이다. 골목에 들어서면 지금도 남아 있는 그 풍경에 놀란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집, 낡은 가게와 이발관, 세탁소 건물들이 햇빛 아래 졸듯 서 있다. 하지만 허름해 보이는 골목으로 한발짝 더 들어가면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난다. 서울 을지로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개성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나타난다. 작은 갤러리도 숨어 있다. 젊은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유다. 소제동 골목은 돌아보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지만, 걸음은 자꾸 느려진다. 지나간 가게 앞으로 다시 가고, 오래된 담장의 벽화 앞에서 괜히 발걸음이 맴돈다. 대전 사람들은 두루치기를 즐겨 먹는다. 돼지고기 대신 두부가 잔뜩 들어간다. 여기에 면 사리를 넣어 비벼 먹는다.
제천 비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청풍호. 곡선으로 이어지는 강줄기가 수려하다. 최갑수 제공
수려한 풍경에 반하다…제천 청풍호 케이블카
청풍면 물태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비봉산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2.3㎞ 구간을 운행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청풍호의 경치가 기가 막힌다. 남쪽으로는 월악산 영봉과 주흘산, 박달산이, 북쪽으로 적성산, 금수산이 어깨를 겯고 서 있다. 호수 주변 산자락을 들고 나는 물길이 손가락을 펼친 모양처럼 뻗어 나가 있는데, 노르웨이의 피오르 해안을 떠올리게도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청풍문화재단지가 나타난다.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일대가 수몰됐을 때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를 옮겨놓은 곳으로 청풍석조여래입상 등 다양한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제천에 ‘시골순두부’(043-643-9522)라는 두붓집이 있다. 예전에 비닐하우스에서 두부를 만들어 팔다가 지금은 유명해졌다. 산초 기름에 구운 두부와 두부찌개가 맛있다.
경북 군위에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최갑수 제공
경북 군위에 있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 최갑수 제공
나도 영화 주인공…경북 군위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의 집’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고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김태리)이 고향 미성리에서 농사를 짓고 음식을 해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혜원은 자신이 직접 기른 채소로 정성스럽게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도시에서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경북 군위 우보면에는 영화 세트장으로 사용됐던 혜원의 집이 남아 있다. 나무로 만든 마룻바닥, 혜원이 요리하던 부엌도 그대로다. 처마에는 다홍색 홍시(소품)가 운치 있게 매달려 있다. 화본역은 중앙선에 위치한 간이역으로 에스엔에스(SNS)에서 가장 ‘핫’한 역이다. 영화 세트장처럼 예쁜 모습이지만 실제로 서울 청량리~부전 간 열차가 운행한다. 부계면 시골밥상(054-382-2776)은 누른국수로 유명하다. 배추를 슴벙하게 썰어 넣고 부추도 푸짐하게 넣는다.
화순 운주사 근처에는 팥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있다. 넉넉한 인심이 여행자의 마음을 흔든다. 최갑수 제공
천불천탑이 실은 염원…전남 화순 운주사
운주사는 ‘천불천탑’으로 잘 알려진 사찰이다. 양식이나 형태가 독특한 석불과 석탑이 절 곳곳에 있다. 이 석불과 석탑은 누가, 왜 만들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운주사에 천불천탑을 세우면 국운이 열릴 것으로 생각한 도선국사가 하룻밤에 석탑 1천기와 석불 1천좌를 세우기로 했는데, 동자승이 장난삼아 닭 울음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불 2좌는 세우지 못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절 서쪽 산비탈 솔숲에 남편불과 아내불이 사이좋게 누워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운주사를 방문하고 영감을 받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황석영은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운주사를 ‘혁명의 땅’으로 묘사했다. 화순고인돌전통시장 주변에 팥칼국수를 내는 집이 여러곳 있다. 걸쭉한 팥죽에 쫄깃한 칼국수를 듬뿍 담아준다.
최갑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