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 백련사 뒤편 동백숲. 수령 300~700년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 고목 7천여 그루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다.
강진 봄꽃 여행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강진은 눈부시도록 붉은 세상으로 덧칠한다. 이른 봄부터 백련사 동백꽃들이 봄을 붉게 물들여놓더니 주작산 진달래꽃 무리가 연분홍빛 수줍은 얼굴을 내민다. 이윽고 모란이 붉은 피를 토해낼 즈음에는 이미 영랑이 그토록 기다리던 ‘찬란한 슬픔의 봄’의 시작이자 끝이다.
4월 개나리와 벚꽃들이 온나라의 들판과 거리를 다투어 단장하고 있는 사이에 전국의 산을 진달래꽃 무리가 소리없이 점령했다. 소월의 시에서도 엿보이듯 ‘이별의 한’을 상징하는 진달래는 4월에 잎이 나기 전에 깔때기 모양의 연분홍 꽃을 먼저 피운다. 지아비의 무덤을 지키던 여인의 피맺힌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색이 되었다는 전설을 지녀 두견화, 귀촉화라고도 불린다.
백련사 동백 숲길 적시고
주작산 수줍은 진달래꽃
앞다퉈 슬픈 노래 부르네
영랑 생가엔 찬란한 모란이… 요즈음 강진군 신전면의 주작산에는 진달래꽃들이 이름 그대로 붉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활짝 나는 형세를 닮은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주작산과 덕룡산을 사이에 둔 한가로운 수양리 마을로 접어들어 수양관광농원을 지나 양란재배지가 있는 작천소령(쉬양릿재)에서 산의 남서쪽 봉우리를 바라보고 산을 오르면 등산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진달래꽃 군락과 문득 마주친다. 진달래꽃 향기에 취해 산봉우리에 오르니 왼편에는 강진만의 푸른 바다와 다도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봄이면 찹쌀가루를 반죽해 진달래 꽃잎을 올려 화전을 부쳐 먹고 진달래 꽃잎을 따서 두견주를 빚어 먹었으나 지금은 점점 잊혀져가는 낭만이요 향수이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 숨어 있는 고찰 백련사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붉은 야생종 동백꽃을 볼 수 있는 드문 곳이다.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백련사는 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원묘국사 요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깊은 곳이다. 절 주변 1만여평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동백림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정약용의 〈다산제생문답증언문〉에도 언급될 만큼 옛날부터 유명했다.
백련사 입구부터 절집까지 이어지는 300미터 길이의 오솔길 양옆과 주변 숲길에 크고 작은 동백들이 빽빽이 도열해 붉은 터널을 이룬다. 특히 고승들의 부도를 모신 절 서편 동백림에는 수령 300~700년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 고목 7천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으로 다가서자 동백꽃 꿀을 좇아 어지러이 옮겨다니며 울어대던 동박새(직박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햇볕 한점 들지 않는 적막의 세상을 들어서니 발밑에 통째로 뚝뚝 떨어진 동백꽃들의 안타까운 풍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동백나무숲 왼쪽으로는 다산초당으로 가는 800미터 오솔길이 나있는데 옛날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스님을 찾아 학문과 도를 논하려고 왕래할 때 이용하던 길이다. 최근 말끔하게 단장된 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아래에는 강진만의 해안선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이 1801년 신유사옥으로 18년간 유배생활하면서 10여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곳이다. 다산초당에는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몸소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속에 작은 산처럼 꾸며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그가 강진만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던 장소에 세워진 정자 천일각이 있다. 또 다산초당 남쪽 800미터 지점에는 다산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다산유물전시관이 있다.
강진읍 남성리에는 일제 때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강진에서 생활하면서 우리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시를 남긴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특히 장독대 옆 모란밭은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현장으로 그의 생전에는 수십년 묵은 모란이 여러 그루 있었다고 한다. 영랑은 살아생전 모란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5월 중순이면 생가의 앞마당에는 붉은 모란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데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 4월 중순께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던 영랑의 염원을 볼 수 있을 성싶다.
강진/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전남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 들머리 오솔길.
주작산 수줍은 진달래꽃
앞다퉈 슬픈 노래 부르네
영랑 생가엔 찬란한 모란이… 요즈음 강진군 신전면의 주작산에는 진달래꽃들이 이름 그대로 붉은 봉황이 날개를 펴고 활짝 나는 형세를 닮은 산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주작산과 덕룡산을 사이에 둔 한가로운 수양리 마을로 접어들어 수양관광농원을 지나 양란재배지가 있는 작천소령(쉬양릿재)에서 산의 남서쪽 봉우리를 바라보고 산을 오르면 등산로를 따라 넓게 펼쳐진 진달래꽃 군락과 문득 마주친다. 진달래꽃 향기에 취해 산봉우리에 오르니 왼편에는 강진만의 푸른 바다와 다도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봄이면 찹쌀가루를 반죽해 진달래 꽃잎을 올려 화전을 부쳐 먹고 진달래 꽃잎을 따서 두견주를 빚어 먹었으나 지금은 점점 잊혀져가는 낭만이요 향수이다.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자락에 숨어 있는 고찰 백련사는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붉은 야생종 동백꽃을 볼 수 있는 드문 곳이다.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백련사는 고려 고종 19년(1232년)에 원묘국사 요세가 이곳에서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킨 유서깊은 곳이다. 절 주변 1만여평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 동백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 동백림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정약용의 〈다산제생문답증언문〉에도 언급될 만큼 옛날부터 유명했다.
주작산은 이름 그대로 붉은 봉황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 주작산 남서쪽 봉우리 주변에는 요즘 진달래꽃이 연분홍색으로 봄산을 물들이고 있다.
백련사 입구부터 절집까지 이어지는 300미터 길이의 오솔길 양옆과 주변 숲길에 크고 작은 동백들이 빽빽이 도열해 붉은 터널을 이룬다. 특히 고승들의 부도를 모신 절 서편 동백림에는 수령 300~700년 된 아름드리 동백나무 고목 7천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으로 다가서자 동백꽃 꿀을 좇아 어지러이 옮겨다니며 울어대던 동박새(직박구리)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햇볕 한점 들지 않는 적막의 세상을 들어서니 발밑에 통째로 뚝뚝 떨어진 동백꽃들의 안타까운 풍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봄볕이 무르익은 다산초당.
동백나무숲 왼쪽으로는 다산초당으로 가는 800미터 오솔길이 나있는데 옛날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백련사의 아암 혜장 스님을 찾아 학문과 도를 논하려고 왕래할 때 이용하던 길이다. 최근 말끔하게 단장된 길을 따라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아래에는 강진만의 해안선이 시원스레 내려다보인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선생이 1801년 신유사옥으로 18년간 유배생활하면서 10여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며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던 곳이다. 다산초당에는 ‘정석’(丁石)이라는 글자를 몸소 새긴 정석바위와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속에 작은 산처럼 꾸며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그가 강진만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던 장소에 세워진 정자 천일각이 있다. 또 다산초당 남쪽 800미터 지점에는 다산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다산유물전시관이 있다.
강진읍 남성리에는 일제 때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강진에서 생활하면서 우리 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시를 남긴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특히 장독대 옆 모란밭은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현장으로 그의 생전에는 수십년 묵은 모란이 여러 그루 있었다고 한다. 영랑은 살아생전 모란을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5월 중순이면 생가의 앞마당에는 붉은 모란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데 올해는 날씨가 따뜻해 4월 중순께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던 영랑의 염원을 볼 수 있을 성싶다.
주작산은 이름 그대로 붉은 봉황을 닮아 이름이 붙었다. 주작산 남서쪽 봉우리 주변에는 요즘 진달래꽃이 연분홍색으로 봄산을 물들이고 있다.
강진/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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