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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엔터 더 건전-‘영화 같은 완성도’가 게임의 본질일까

등록 2019-05-04 09:29수정 2019-05-04 11:55

[토요판] 최태섭의 어른의 게임
⑤ 게임 ‘엔터 더 건전’
로그라이크(Roguelike)는 오늘날 게임의 한 장르를 나타내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정확한 뜻은 1980년에 발매된 로그라는 게임과 특징이 비슷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로그는 점과 선으로 표현된 던전을 @로 표시된 주인공 캐릭터가 헤쳐나가는 게임이었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 로그의 핵심적인 유산은,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던전과 게임오버를 당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하드코어’한 규칙이다. 최근에는 로그라이크 방식을 차용한 인디게임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

‘엔터 더 건전’은 이 중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이다. 게임의 주인공들은 지우고 싶은 과거를 지닌 이들로, 과거를 지우는 총을 찾아 ‘총굴’(건전, Gungeon=총+소굴)로 찾아왔다. 게임에는 이런저런 설정들이 있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주인공 가운데 한명을 골라서 총굴에 돌입한 뒤에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쏘고 구르고 재장전하는 것만이 중요하다. 수백가지의 총과 아이템이 기다리고 있고, 층마다 존재하는 보스를 깨며 지하 5층까지 도달해야 한다. 캐릭터가 죽으면 게임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지만, 그나마 위안거리는 게임을 오래하면 할수록 더 많은 아이템이 해금되고, 그 아이템들을 무작위로 총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은 2D픽셀그래픽(더 정확하게는 그것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캐릭터와 배경, 몬스터 등을 표현한다. 또 과거에 발매되었던 많은 게임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에 대한 패러디와 농담이 난무한다. 아이템 ‘선글라스’를 장착하면 많은 액션영화에서처럼 폭발이 일어날 때 슬로모션이 걸린다거나, 영화 <스타워즈>에서 절대로 주인공을 명중시키지 못하는 제국군 병사의 블래스터와 닮은 무기를 만들고 실제로 명중률을 엉망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것들을 몰라도 게임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아는 이들에게는 덤처럼 웃음을 얹어준다.

이 게임은 최근 등장하는 ‘영화 같은 게임’들에 견줘 이른바 ‘전자오락’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그래픽, 사운드, 게임에 녹아 있는 다양한 요소 또한 과거의 것들이다. 이 게임뿐만이 아니라 많은 인디게임이 이런 레트로 스타일을 지향한다. 여기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고, 게임을 알리기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판로가 있으며, 게이머와 제작자들의 일부가 이제 과거를 그리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레트로 게임들은 게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게임의 핵심은 인간의 상상력이다. 게임이 오로지 글자와 흑백의 점·선·면에 의존하던 시절에도 인간은 그 빈 공간을 상상들로 채워 넣고 몰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세상과 다른 경험에 대한 상상력이야말로 게임을 만들고, 또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솔직히 이 게임은 과거의 향수에 젖은 나이 든 게이머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나는 100여시간을 플레이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이 게임의 끝판을 깰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엔딩의 여운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다시 처음부터 우연성에 몸을 맡기고, 아직 해금하지 못한 것들을 위해 총굴로 향해야 한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은 어쩔 셈이냐고? 딱 한판만 하고 얘기합시다….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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