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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여가

“코로나로 막힌 베네치아 가는 길 ‘유튜브’ 타고 함께 가요”

등록 2020-06-03 19:34수정 2020-06-04 02:09

【짬】 연세대 신과대학 김상근 교수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가 유튜브 촬영을 하는 자택 거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상근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가 유튜브 촬영을 하는 자택 거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상근(56)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는 현재 독서모임 4개를 동시에 꾸리고 있다. 회원들은 기업 최고경영자나 임원 혹은 변호사나 정치인 등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2016년 시작된 이 모임의 이름은 ‘루첼라이 정원’이다. 이탈리아 문예부흥을 이끈 도시 피렌체의 루첼라이 가문이 16세기 초 세운 학당 이름을 땄다. 지난달 공부를 시작한 6기까지 그동안 400여 명이 그와 함께 그리스·로마 고전이나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다.

그가 지난달부터 유튜브에 ‘김상근의 어여세(어떤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의 채널을 열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 인물을 알리는 영상을 매주 1차례 올리고 있다. 첫 편 ‘베네치아로 가야 하는 이유’로 시작해 단테와 카사노바, 토마스 만, 비발디 등이 이 도시와 나눈 사랑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회현역 근처 자택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김상근 교수가 지난달 시작한 유튜브 채널 영상 화면.
김상근 교수가 지난달 시작한 유튜브 채널 영상 화면.
왜 유튜브인지 궁금했다.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글로벌 시티즌’에서 셀린 디옹과 레이디 가가 등 음악인들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기자며 각자 집에서 ‘기도’란 노래를 함께 부르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받았아요. 저도 두 달 가까이 집에만 있었던 터라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답이 유튜브였어요. 바이러스로 여행할 수 없는 이들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베네치아를 유튜브로 가자고요.”

중국에 바이러스가 퍼지던 무렵인 지난 1월 말 그는 베네치아에 있었다. “베네치아를 주제로 책을 쓰려고 자료 수집차 갔었죠. 이전에도 수십번 찾은 도시죠. 2주간 머물고 귀국해 책 원고는 이미 완성했어요. 올가을 출간하려고요.” 그가 베네치아에 있을 땐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이었지만 그래도 두려웠단다. “베네치아는 골목이 너무 좁아요. 14세기 흑사병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곳이죠. 길이 좁아 전염병이 빨리 퍼져요. 이 도시에서 죽음에 대한 성찰이 유독 많았던 이유이죠. 베네치아 살루테 성당은 흑사병이 물러난 뒤 신에 감사하며 건축했죠. 베네치아 카니발에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페스트 치료 의사용 가면을 쓰고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죠. 일본 사람들이 쾌락주의로 잘못 번역한 에피큐리어니즘이 베네치아에서 자리 잡은 것도 그 때문이죠. 이 도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나 미신에 떨지 않고 현재의 삶을 긍정하려고 했어요.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리자, 행복한 삶은 잘못된 게 아니라고 봤죠.”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름처럼 ‘어떤 여행은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어떤 광고에서 우주인들이 달을 가리키며 우리가 예전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걸 봤어요. 실제 그들의 여행은 세상을 바꿨어요.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갖게 해 삶을 다시 보게 하는 여행도 그래요. 죽음을 담담히 응시하고, 열심히 노력해 행복을 추구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여행자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꿨어요. 베네치아를 너무 사랑해 거기 묻힌 미국의 미술작품 수집가 페기 구겐하임은 이렇게 말했죠. ‘베네치아에선 정상적인 삶이란 없어요. 모든 것들이, 모든 사람이 물 위에서 떠다니죠’라고요.”

그리스·로마 고전읽기 ‘루첼라이 정원’
5년째 독서모임 6기까지 400명 회원

지난달부터 ‘어여세 인문학’ 영상 강의
“실제로 어떤 여행은 세상을 바꾸지요”
플라톤아카데미 등 ‘시민인문학’ 개척
“고전 공부는 경영자에게 통찰력 선물”

30회 예정인 베네치아 동영상엔 영문 자막도 달린다. “프랑스에 사는 한국 동포가 자원해 달아주세요. 그 때문인지 구독자의 2%가 일본 사람들입니다. 유튜브는 전 지구적으로 콘텐츠를 확산할 기회의 장이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그는 연세대 신학과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신학자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마테오 리치(1552~1610)가 기독교의 하나님을 한자 ‘상제’로 번역한 것을 두고 벌어진 논쟁을 박사 논문에서 다뤘다.

그는 조부와 부친 뒤를 이어 목사 안수도 받았다. “두 숙부도 목사이죠. 부산에서 목회를 한 조부는 보수적인 고신 교단 소속이었어요. 저는 교단을 바꿔 1997년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안수를 받았어요. 미국 목사이죠.” 그도 미국에 있을 때는 목회를 했지만, 지금은 교회에서 설교하지 않는단다. 대신 교회 바깥에서 인문학 강의를 한다. 아내인 최선미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와 공저한 <르네상스 창조경영>(2010) 출간이 전환점이었다. 이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 기업인들의 강연 요청이 줄을 이었다. 2010년 말에는 최창원 에스케이 디스커버리 부회장이 사재로 세운 인문학 지원재단 플라톤아카데미 책임연구교수를 맡아 5년 동안 재단의 기틀을 닦았다. 재작년엔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을 인터뷰해 정리한 책 <초격차>를 내기도 했다.

그가 ‘루첼라이 정원’ 강사로 나선 데는 세월호 참사가 영향을 미쳤단다. “선장이 탈출하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는 ‘루첼라이 정원’ 공부를 시민인문학이라고 불렀다. ‘스투디아 후마니타스’(후마니타스 연구)라고도 하는 서구 인문학의 출발도 학자가 상인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시작되었단다. “피렌체에서 인문학이 시작한 것은 외부적 요인 탓이 커요. 14세기 흑사병으로 학생들이 대학에 오지 않고 또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힘들어지면서 대학이 위기를 맞아요. 이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 같은 학자들이 흩어져 상인의 집으로 가 고전을 가르칩니다. 그러다 19세기에 설립한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문·사·철 개념이 나와요. 이때부터 전공이 세분화해 학자들은 자기 영역만 가르칩니다. 이러니 대학 공부가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없죠.”

김상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김상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고전이 사람에게 베푸는 선물로 “나 자신에게 진실한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선한 삶,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멋진 삶, 의미 있는 죽음”을 꼽았다. ‘루첼라이 정원’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물었다. “고전 공부는 경영자가 직원을 대하는 태도나 미래를 바라보는 통찰력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 대기업 회장이 독서모임 뒤 직원들을 가족처럼 대하는 그런 인간적인 경영자가 되고 싶다고 해요. 직원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요. 그런 순간이죠. 최근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품 <리처드 2세>를 읽을 때는 뒤에서 한 분이 눈물을 닦으시더군요. 리처드 2세가 왕권을 헨리 4세에 넘기는 과정에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분도 아마 비슷한 처지라 깊이 공감하는 것 같았어요. 그럴 때 보람이 크죠.”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전은 보에티우스가 쓴 <철학의 위안>이다. “로마 말기에 억울하게 죽은 보에티우스가 감옥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한 책이죠. 보에티우스에게 철학의 신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돈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전하는 내용이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가 ‘루첼라이 정원’ 회원들과 토론하는 책에는 그리스·로마 제국의 흥망을 다룬 역사서도 여럿이다. 미 제국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미국에서 12년을 살았어요. 미국은 한 나라가 아닙니다. 50개 주가 섞인 대륙이죠.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한쪽에서 유인 우주선을 쏘고 다른 쪽에선 인종차별을 당한 흑인들의 항의 시위가 일어나는 곳이죠. 혼란스럽지 않아요.” 이어 고대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가 쓴 책 <역사>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지 워싱턴, 벤저민 프랭클린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깊이 탐구한 책입니다. 폴리비오스는 집정관과 원로원, 시민이 권력을 나누는 시스템이 로마를 강국으로 이끌었다고 했죠. 여기서 미국의 3권분립 정신이 나왔어요.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뭐라고 해도 연방 의회나 대법원은 중심을 잡고 자기 방식대로 돌아가잖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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