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여행·여가

“겨울이면 생선 대구로 ‘김장’하니 인간문화재라네요”

등록 2020-11-05 18:51수정 2020-11-06 02:37

[짬] 약사 김외련씨
김외련 약사가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김외련 약사가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약사 김외련씨는 만 52살이던 1997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상태라 수술이 가능했으나 이듬해 암세포가 뼈 부위로 퍼졌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보통의 암 치료보다 5배나 많은 약을 들이붓는 ‘고용량 치료’를 했다. 6개월 치료 중 막판 한 달은 저항력이 너무 떨어져 무균실에서 보냈단다.

“너무 오래 살까 걱정이죠. 하하.”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만난 김씨에게 건강 상태를 묻자 나온 말이다. 그는 최근 요리책 <김외련, 평생 레시피 144>도 펴냈다. 암과 싸우면서 ‘음식이 보약’이라는 이치를 터득하고 직접 만든 음식 레시피를 모았다. “독한 치료로 몸이 만신창이가 됐을 때 제철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입맛도 나고 바로 기운이 생기는 걸 몸으로 느꼈어요.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이 바로 약이었죠. 신선한 식재료를 사러 자주 들른 새벽시장의 기운도 제 의욕을 고양했죠.”

&lt;김외련, 평생 레시피 144&gt; 표지.
<김외련, 평생 레시피 144> 표지.

그도 발병하고는 한동안 인삼이나 상황버섯 등 몸에 좋다는 식재를 찾았지만, 어느 순간 끊었단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약과 음식의 근원은 같다)의 이치를 깨달아서다. “보약 먹는 목적은 에너지를 올리는 거잖아요. 하지만 음식으로도 충분히 올릴 수 있어요. 한방을 보면 알 수 있죠. 식재료인 더덕과 도라지가 바로 한약재 사삼과 길경입니다. 한방에선 체질을 냉하고 열이 있는 사람으로 나눠 이에 맞게 약을 씁니다. 계피는 열을 내고 맥문동은 찬 성질이죠. 음식만 봐서 뭐가 차고 따듯한지 알 수 없으니 골고루 먹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소화가 잘되고 기운이 나죠.” 그는 자신의 건강 회복에는 음식과 산행, 명상 덕이 컸다고 믿는다.

그가 요리책까지 낸 데는 집안 영향도 있다. “증조부부터 우리 네 형제까지 4대 미식가 집안입니다. 둘째 딸도 뉴욕에서 오너 셰프로 일해요. 제 고향이 마산인데 증조모가 매일 아침 생선회가 있어야 조반을 드셨어요. 시조모 식성을 맞추려고 어머니가 아침 일찍 생선을 사러 시장에 가셨죠.” 암 투병으로 심신이 쇠잔했던 ‘타고난 미식가’의 입맛에 남이 해준 밥이 식성에 맞을 리 없다. 그는 지금도 격주로 한번은 남편(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이 모는 차로 30분 거리인 마장동 경동시장을 찾는다.

50대 발병 유방암 이겨내며

‘음식이 보약’ 이치 깨달아

직접 만든 ‘144 레시피’ 책으로

“새벽 시장 기운도 의욕 높여

요리하는 즐거움 알리고 싶어”

거제 외포항서 대구 사서 ‘김장’

‘제철 싱싱한 식재, 최소한의 양념, 최고로 간단한 조리법.’ 그가 책에 소개한 자신의 요리 철학이다. “내가 추구하는 생활과 균형을 맞추려면 요리에 시간을 많이 뺏겨선 안 됩니다. 신선로나 잡채는 손이 많이 가 현대인의 삶과는 맞지 않아요. 음식에 취미를 붙이고 즐기려면 조리법이 간단해야죠. 세계적인 셰프들도 신선한 식재료에 양념을 많이 넣으면 고유의 맛이 사라진다고 하잖아요. 요리의 미니멀리즘은 세계적인 추세이죠.”

책에 나오는 레시피 144개 중 30개가 대구 요리다. 그는 대구야말로 건강식이자,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라고 했다. “심해에서 자라는 대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기름도 별로 없어요. 맛도 담백하죠. 조리도 부담스럽지 않아 대구국 같은 레시피를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집 베란다에서 통대구 말리는 모습을 김외련씨가 직접 그렸다. 김외련 약사 제공
집 베란다에서 통대구 말리는 모습을 김외련씨가 직접 그렸다. 김외련 약사 제공

대구 요리는 마산에 살 때부터 그의 집안 대표 음식이다. 해마다 연말에 산자락 그의 집을 찾는 이들은 진귀한 구경을 한다. 경남 거제시 외포항에서 직송한 4~5kg짜리 대구 10마리가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걸려있는 모습이다. 이름도 생소한 ‘대구 김장’이다. 올해도 내달 24일 외포항을 찾아 대구 20마리를 살 계획이다. “10마리는 해체해 말리고 알젓과 장자젓(아가미+내장 재료)을 만들어요. 10마리는 설까지 시간을 두고 택배로 받아 대구국을 끓입니다. 알젓은 2주가 되면 발효돼 대구국과 함께 먹을 수 있어요. 알젓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열 몇 가지나 됩니다. 어릴 때 마산 우리 집이 잘살지 않았는데도 50마리 정도 대구 김장을 했어요. 요즘은 흔하지 않아, 주변에서 ‘인간문화재’라는 말도 들어요.”

김외련씨가 그린 꽃게 그림. 김외련씨 제공
김외련씨가 그린 꽃게 그림. 김외련씨 제공

스무 마리 중 부부가 먹는 대구는 불과 서너 마리란다. “이웃·친지들과 나누죠. 요리는 제가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맘에 드는 사람은 집에 초대해 밥을 먹입니다. 밖에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보다 스무배는 더 친해지죠.” 그는 2017년부터 집에서 요리 교실도 열고 있다. 그의 대학 후배 등 셋이 학생이다.

그에게 요리는 예술이다. 창의력이 없으면 어려워서다. “요리가 100% 즐거울 순 없어요. 책을 재밌게 읽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때는 싫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재밌어요. 호기심을 가지고 창의력을 발휘해 요리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 즐거워요.”

책에 실린 그림도 모두 그가 그렸다. 그림은 60대 중순에 배워 칠순 때는 전시회도 했단다. “노후에 어떻게 혼자 잘 놀 수 있을까 생각하다 10년 전에 유화를 배웠어요. 누드 크로키도 2년 넘게 배웠죠.”

그는 앞으로 요리 블로그도 열고 프랑스나 일본 음식 레시피를 모은 요리책도 내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심리학자) 빅토르 프랭클이 쓴 책을 보니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죽는 순간까지 인간은 뭔가 발휘할 게 있다고요. 그의 책에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면 어떤 역경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저도 죽을 때까지 의미를 추구하며 살려고요. 지금도 머리에서 아이디어가 샘솟아요. 요리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요. 사람들에게 요리하는 즐거움을 깨우쳐주고 싶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자세 낮춘 민희진 “뉴진스 위해 한수 접겠다…그만 싸우자” 1.

자세 낮춘 민희진 “뉴진스 위해 한수 접겠다…그만 싸우자”

영화인이 꼽은 최고의 한국영화 ‘1위’는… 2.

영화인이 꼽은 최고의 한국영화 ‘1위’는…

선재 변우석 “사랑하려 노력”…솔 김혜윤 “키 차이에 설레시더라” 3.

선재 변우석 “사랑하려 노력”…솔 김혜윤 “키 차이에 설레시더라”

4천년 전 ‘1인칭 사실주의’ 소설…고대 이집트인은 통째 외웠다 [책&생각] 4.

4천년 전 ‘1인칭 사실주의’ 소설…고대 이집트인은 통째 외웠다 [책&생각]

“20세기 후반 프랑스 대표 작가들 번역하려 출판사 차렸어요” [책&생각] 5.

“20세기 후반 프랑스 대표 작가들 번역하려 출판사 차렸어요” [책&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