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매각 일지
자금력 앞선 현대차에 밀리며 인수전 고전
동양종금 등서 1조 지원 물어와 ‘극적 반전’
막대한 인수자금 차질없는 조달 ‘최대과제’
동양종금 등서 1조 지원 물어와 ‘극적 반전’
막대한 인수자금 차질없는 조달 ‘최대과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뚝심’이 결국 이겼다. 16일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됨으로써, 현대그룹은 현 회장 ‘경영권 방어’와 옛 현대그룹의 적통성 승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됐다. 하지만 축배를 들기엔 아직 이르다. 현대건설 주가(16일 종가 기준 주당 6만2200원)의 갑절이 넘는 가격(주당 14만1000원)으로 모두 5조5000여억원을 써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선 ‘제2의 금호’ 또는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 스스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듯이,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상대로 한 인수 대결은 내내 힘겨웠다. 우선 현금성 유동성만 10조원이 넘는 현대차의 자금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막판엔 전략적 투자자로 유치하려던 독일 회사와의 컨소시엄이 무산되면서 벼랑 끝에 몰리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동양종금증권과 프랑스 2위 은행인 나틱시스은행을 재무적 투자자(FI)로 끌어들이면서 ‘반전’을 꾀했다. 두 회사는 현대그룹 컨소시엄에 1조원가량의 자금을 넣는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마무리하면 그룹 주력회사인 현대상선을 둘러싼 범현대가와의 지분 경쟁에서 일단 한시름 놓게 된다. 현정은 회장 일가와 계열사가 포함된 특수관계자 지분에다 우호 지분까지 합치면 현재 43.4%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8.3%)이 더해지면, 현대중공업(25.5%), 케이씨씨(5.1%) 등 범현대가를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
현 회장은 이날 “고 정주영, 정몽헌 두 선대 회장이 만들고 발전시킨 현대건설을 되찾았다”며 옛 현대그룹의 적통성을 이어받은 데 가장 큰 의미를 뒀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 인수로 자산 22조3000억원, 매출 21조4000억원(지난해 기준)이 되면서 재계 순위 21위에서 14위로 올라서게 된다. 현대그룹은 대북사업, 해양 엔지니어링사업 등에서 기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 현대건설을 ‘글로벌 톱 5’로 키운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현대그룹 앞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큰 고비는 역시 인수자금 마련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건설 인수를 위해 1조3000억원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동원할 수 있지만 전환사채(CB)와 기업어음 발행을 통해서도 1조원 이상을 조달해야 한다.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엠, 현대증권 등도 동원하는 인수자금의 상당 부분이 회사채나 기업어음 발행 등을 통한 외부자금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상선의 경우 부채비율이 상승하고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반면, 선박 투자는 위축돼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무적 투자자로 끌어들인 동양종금증권이나 프랑스 나틱시스은행한테 담보물이나 풋백옵션(주식매도청구권) 같은 계약조건을 제공해, 나중에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은 “구체적인 자금조달방안은 본계약 체결 전까지는 비밀유지조항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또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본계약 체결까지 자금조달 등 여러 변수가 많기 때문에, 현대그룹의 인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인수를 포기한 경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했다”며 “승자의 저주는 시장의 막연한 두려움에 지나지 않고,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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