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셰 ‘718 카이맨 GT4’(위)와 ‘911 GT3’의 날개
지난달 21일 오전 강원도 인제 자동차 경주장 진입로에서 날렵한 스포츠카 2종이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날 포르셰 시승 행사장에 나온 차량은 달리기에 특화한 지티(GT) 모델이다. 두 차 모두 뒤쪽에 커다란 ‘날개’(리어 윙)를 단 게 공통점이다.
고성능 신차나 도로를 달리는 일반 차량 중에도 이런 날개를 부착한 자동차를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늘을 날지 않는 자동차에 왜 날개를 다는 걸까.
“차가 코너를 돌 때 바닥에 쫙 붙어 달리는 효과를 내기 위한 거죠.”
행사장에서 만난 강병휘 카레이서 겸 자동차 전문 저널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원리는 이렇다. 자동차가 직선 도로를 빨리 달릴 땐 공기 저항이 적어야 유리하다. 키 큰 육상 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기 불리한 것과 같다.
곡선 구간을 주행할 때는 사정이 다르다. 고속으로 코너에 진입하면 자동차 바퀴의 타이어가 접지력의 한계를 넘어서 미끄러지기 쉽다. 접지력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의 무게를 늘리는 거다. 그러나 자동차를 일부러 무겁게 하면 직선을 달릴 때 불리하다. 해법은 차 무게는 그대로 두고 공기를 이용해 바퀴를 내리누르는 힘(다운 포스)을 만드는 것이다.
자동차에 날개를 달자는 생각은 비행기에서 착안한 것이다. 비행기 날개를 측면에서 보면 위가 볼록하게 올라와 있고 날개 뒤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꺾이며 얇아지는 게 특징이다.
이런 모양새를 갖추면 날개를 위쪽으로 밀어주는 효과가 생긴다. 공기가 날개 표면을 따라 아래로 흐르며 생기는 힘의 반작용으로 날개를 들어 올리는 힘이 발생해서다. 공기가 날개 윗면을 더 빠르게 지나며 날개 위쪽 압력이 아래쪽보다 낮아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빠르게 질주하면 공중에 뜨는 건 이 때문이다. 기체를 지구 중심으로 당기는 중력보다 위로 드는 양력(물체가 수직으로 받는 힘)이 커지는 셈이다.
이석재 포르셰코리아 팀장은 “자동차는 비행기와 달리 아래로 누르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행기 날개를 뒤집어 단 모양을 가진 게 특징”이라고 했다. 실제로 포르셰의 GT 차 뒤쪽에 붙은 날개는 모두 아래가 볼록한 형태다. 비행기 날개와 정반대다. ‘718 카이맨 GT4’ 차량은 이 날개를 통해 시속 200km로 달릴 때 자동차를 12kg의 무게로 누르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911 GT3’ 차량에 부착한 날개는 더 독특하다. 날개를 받치는 지지대(브라켓)가 ‘백조의 목’처럼 날개 상판을 위쪽에서 물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날개 아래쪽을 지나는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대회인 ‘포뮬러 1’에서 먼저 적용한 기술이다.
자동차 앞쪽의 구멍 뚫린 공기 흡입구(에어 인테이크)도 비슷한 기능을 한다. 이곳을 통해 들어간 공기가 엔진 열을 식히기 위해 위로 올라가면 그 반작용으로 차를 누르는 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포르셰 ‘911 GT3’(오른쪽)와 ‘718 카이맨 GT4’. 포르쉐코리아 제공
포르셰 ‘911 GT3’ 앞쪽에 있는 공기 흡입구(에어 인테이크)
하지만 전기차 중엔 이처럼 날개 단 차를 보기 어렵다. 그건 왜일까.
이는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충전 뒤 주행 가능 거리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해서다. 코너를 빠르게 달리려고 일부러 차를 무겁게 하기보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고 주행 거리를 늘리는 데 설계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포르셰 내연기관차 못지않은 가속 성능을 가진 테슬라 전기차나 포르셰의 전기차 ‘타이칸’ 등이 날개를 부착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이런 전기차는 타이어 안쪽의 휠 생김새도 내연기관차와 다르다. 바깥에 평평한 커버를 붙여 공기 저항을 줄이는 데 공을 들인다. 포르셰 전기차 타이칸은 자동차 뒤쪽 적재함 위에 차체와 표면이 붙은 작은 날개(스포일러)를 달았다. 그러나 이 장치는 타이어를 내리눌러 접지력을 높이려는 게 아니다. 차 뒷부분에 공기의 소용돌이(와류)가 생겨 차체를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발생하는 걸 방지하는 기능을 한다.
전기차 ‘타이칸’ 뒤쪽에는 날개(리어윙) 대신 스포일러가 부착돼 있다.
포르셰 내연기관차 ‘911 GT3’ 휠(왼쪽)과 전기차 ‘타이칸’ 휠
만약 일반 자동차에도 날개를 부착하면 포르셰 스포츠카처럼 코너를 쌩쌩 달릴 수 있을까? 결론을 말하면 그런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웬만큼 빠른 속도가 아니고서는 자동차 날개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병휘 선수는 “시속 120km 이상부터 날개가 타이어의 접지력을 높이는 효과가 차츰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고속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 경주장 아닌 일반 도로에선 거의 효과를 보기 어려운 셈이다. 또 날개 달린 포르셰 스포츠카라도 코너에서 적정 속도로 감속하지 않으면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건 불가피한 일이다. 날개가 만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