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풍암동 자동차 매매단지. 광주시 제공
현대자동차가 ‘5년 미만, 주행거리 10만㎞ 이내’ 차량 중 품질검사를 통과한 자사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중고차 판매에 나선다. 그외 중고 차량은 직접 판매하지 않고 기존 업체들에게 넘긴다. 중고차 업체들과의 상생을 위해 2024년까지는 시장점유율을 자체적으로 제한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가 “인기가 높고 멀쩡한 중고차 매물만 골라서 빼가려 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차는 7일 이런 내용의 중고차 사업방향을 공개했다. 별도 발표 행사 없이 보도자료만 배포했다. 그간 기존 중고차업체와의 협의 과정에서 사업 방향의 일부 내용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중고차 시장 진출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차는 ‘인증 중고차’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했다. 자동차 제조사로서 보유한 기술을 활용해 정밀 성능검사와 수리를 거친 제품만 판매하겠다는 의미다. 신차 출고 기준 5년 이내, 주행거리 10만㎞ 이내의 현대차·제네시스 차량만이 대상이다. 이 중에서도 200여개 항목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만 선별해 신차 수준의 상품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보상판매(트레이드 인)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기존 차량을 현대차에 판매한 고객에게 신차 구매 시 할인을 제공한다. 현대차 브랜드 차량을 중고로 판매했을 때만 할인을 제공하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현대차 관계자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그 때 확실하게 정해질 예정이다”며 답을 피했다.
현대차는 중고차 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가칭 중고차 연구소)’도 구축한다.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등 중고차시장 지표도 담는다.
현대차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의 콘셉트. 현대자동차 제공.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제공도 추진한다. 소비자들이 구매하려는 중고차의 사고 유무와 보험수리 이력, 침수차 여부, 결함 및 리콜내역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적정 가격을 투명하게 산정하는 ‘내차 시세 서비스’도 선보인다. 이들 서비스 역시 현대차·제네시스 차량에만 적용된다.
온라인 판매도 추진한다. 모바일 앱 기반의 가상전시장을 구축해 온라인 구매를 할 수 있게 할 계획인데, 상품 검색과 비교에서부터 견적과 계약, 출고, 배송에 이르기까지 중고차 구입 전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집 앞 등 원하는 장소로 배송도 해준다. 상품을 직접 보고 싶은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채널도 마련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기존 중고차 매매 업계와의 협력을 위한 ‘상생안’도 내놨다. 2024년까지 시장점유율을 자체적으로 제한한다. 2022년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타 브랜드 차량 등 판매대상 범위를 벗어난 차량이 접수되면, 경매 등의 방법으로 기존 매매업체들에게 공급한다. 다만, 이 상생안은 기존 업체들과 합의한 내용은 아니다.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마련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전체적인 중고차 품질과 성능 수준을 향상시켜 시장 신뢰를 높이고, 중고차 산업이 매매업 중심에서 벗어나 산업의 외연이 확장될 수 있도록 기존 중고차 업계와 다양한 협력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중고차 판매업은 2019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기한이 만료돼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사업을 개시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기존 중고차 업체들이 생계형 적합업종 추가 지정을 신청했으나 동반성장위 심의에서 부결됐고, 지금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중기부는 이르면 이달 중순 중소기업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한편, 이날 현대차의 중고차 사업방향이 발표되자 기존 중고차 업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5년·10만㎞ 이하 차량만 판매하겠다는 방침이 ‘소비자가 최우선’이라는 현대차의 표현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는 보도자료 제목에 ‘소비자 최우선의 중고차사업 방향’이라고 적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5년·10만㎞ 미만 차량은 시장에 정상적으로 유통이 되고 아무런 하자가 없다. 현대차가 진정 소비자를 위한다면 오히려 5년·10만㎞ 이상의 오래된 차들을 점검해서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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