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골프 조립라인 모습. 폴크스바겐 제공
현장에서 본 폴크스바겐 경쟁력
노조와 함께 사업장평의회 구성
인사·생산전략 등 머리 맞대
투자부문·생산차종 등 논의하는
감독이사회는 노동자쪽이 더 우세
“이윤율이나 주가에 긍정적 영향”
“노조가 인사·경영권 침해 안돼”
경영참여 금기시하는 한국과 달라
노조와 함께 사업장평의회 구성
인사·생산전략 등 머리 맞대
투자부문·생산차종 등 논의하는
감독이사회는 노동자쪽이 더 우세
“이윤율이나 주가에 긍정적 영향”
“노조가 인사·경영권 침해 안돼”
경영참여 금기시하는 한국과 달라
“7세대 골프의 생산량을 같이 논의하나?” “그렇다.” “엠큐비(MQB·가로배치 엔진전용 모듈) 플랫폼 전략도 그렇나?” “그렇다. (노사 절반씩 구성된) 감독이사회는 회사의 중요 사안을 감시할 뿐만 아니라 공동 결정한다.”
독일을 배우자는 얘기가 많다. 독일의 히든챔피언(강소기업), 자동차, 화학 산업 등. 유럽을 이끄는 독일 경제의 경쟁력은 한국의 벤치마킹(본보기) 대상이다. 이 경쟁력 가운데 국내 기업들이 무시하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가 있다.
지난달 초 유럽에서 가장 큰 자동차 공장이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금속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볼프스부르크는 자동차회사인 폴크스바겐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산별노조인 독일 금속노조 또한 폴크스바겐의 파트너로서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수십명의 노조 상근자 가운데 만난 요아힘 페어만씨는 26년 동안 운하 건너편에 위치한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일하다, 운하를 넘어와 2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페어만씨는 공동결정제도가 폴크스바겐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인 마르틴 빈터코른 회장도 4년 전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폴크스바겐에 만약 공동결정제도가 없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발견되어졌어야 할 것이었다’고.” 그는 회사 역시 공동결정제의 장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금속노조 국제협력 담당자인 플라비오 베니테스씨가 차트를 걸고 공동결정제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우디·포르셰 등 12개 브랜드를 가진 폴크스바겐 그룹답게 공동결정제 구조 또한 복잡했다. “독일 내 폴크스바겐 공장마다 노조와 함께 사업장평의회가 구성되며, 국내 6개 브랜드를 총괄하는 사업장평의회도 구성돼 있다. 벤틀리 등 국외 생산기지를 아우르는 국제위원회도 따로 있다.”
사업장평의회는 사업장부터 기업집단까지 구성돼 노사가 함께 인사·생산전략 등을 논의하는 기구다. 이 기구는 기업 경영을 통제하는 감독이사회에도 대표를 보내 노조가 경영 전반에 참여하는 데 역할을 한다. 감독이사회는 폴크스바겐 그룹이 자동차 개발·생산, 인사 계획·교육 등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페어만씨는 “독일은 법으로 2000명 이상의 사원이 있는 기업엔 공동결정권이 보장돼 있는데, 2차 대전 전 나치에 빼앗긴 노조의 돈으로 만든 폴크스바겐은 다른 기업에 견줘 공동결정제도가 확실히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폴크스바겐은 독일 법이 닿지 않는 미국 채터누가 등 국외 공장에도 사업장평의회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감독이사회 구성의 놀라운 점은 노조의 의견이 더 반영되도록 돼 있는 것이다. 베니테스씨는 “감독이사회는 회사 쪽 10명, 노동자 대표 쪽 10명으로 구성되는데, 회사 쪽 대표 가운데 2명은 니더작센주에서 파견된다. 이들은 노동자 권익에 반대하는 쪽으로 의견을 내지 않는다. 만약 반하게 되면 이는 정치적 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한 지역인 니더작센주는 폴크스바겐의 지분 20%를 가지고 있다. 20명 가운데 12명이 노동자 쪽 입장을 가지고 회사 경영에 참여하는 셈이다.
국내에선 이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폴크스바겐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노조가 인사나 생산전략 등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회사는 노조와 장기 비전은 공유하려 하지만, 노조가 인사·경영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 쪽은 노조가 공장에 필요한 적정 인원(맨아워)조차 협의를 거부하고 있어 ‘더 큰 그림’인 장기 전략 논의도 어렵다는 반응이다. 폴크스바겐의 ‘골프’는 개발 단계부터 노동자가 함께하지만, 현대차 ‘아반떼’는 노동자가 생산만 하는 셈이다.
폴크스바겐을 오랫동안 연구한 토마스 하이페터 교수(독일 에센대)는 “1990년대 (경영 위기 뒤) 폴크스바겐의 변화는 최고경영진의 기획에 의해서 추진된 것이 아니라, 기업 발전에 대한 독자적이고 전략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업장평의회 및 노동조합과의 협상 과정의 결과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경영을 노조가 가로막는다’고 회사가 윽박지르기보다 경영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1990년대 초반 국외 공장의 부진 등으로 구조조정의 위기에 몰렸지만, 노사가 고용 안정과 유연한 근무시간제 등을 교환해 위기를 탈출한 바 있다. 이것은 ‘동일 플랫폼 전략’, ‘주 4일 근무 같은 유연한 고용 전략’ 등 혁신으로 나타났다. 하이페터 교수는 “폴크스바겐은 사업장에서 경영자와 노동자가 함께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전략이 뭔지 구체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이런 것들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노사관계를 연구한 이상호 박사(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전 연구위원)는 ‘노동자의 경영 참가와 독일의 공동결정제도’ 글을 통해 “공동결정제도는 노사간 갈등 해결의 중요한 수단이 되며, 독일의 연구를 보면 기업 차원의 공동결정제도가 기업의 이윤율이나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변화를 이끌어낸 진취적인 경영자가 존재했다. 베니테스씨는 “폴크스바겐의 혁신을 추진했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이 현재는 감독이사회에서 지도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그는 사업장평의회와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폴크스바겐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역할이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댄 감독이사회에서 발휘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그러나 공동결정제도가 국내 기업의 ‘노사 화합’과 같이 공동의 목표를 향한 과정으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페어만씨는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빈터코른 회장의 계획에 대해 사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금속노조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이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지원한다는 입장이지만, 더 기본적인 건 1위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가, 1위가 옳은 목표인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페어만씨는 팔꿈치로 옆에 앉은 상대방을 밀치는 동작을 보이며 “부당하게 누군가를 짓밟는 경쟁을 통해 1위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다른 자동차 기업의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을 반대하고, 함께 발전하는 경쟁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볼프스부르크·뒤스부르크/이완 기자 wani@hani.co.kr
[관련기사] 중국시장·설계 혁신 ‘두 날개’로 난다
독일금속노조의 국제협력 담당 플라비오 베니테스씨가 독일 볼프스부르크 금속노조 사무실에서 폴크스바겐그룹의 공동결정권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베니테스씨는 “독일은 기업운영법에 의해 (노조가 참여한) 사업장평의회가 경영에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