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GM)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2조6천억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해 한국 시장 철수와 회생방안을 둘러싸고 모기업 제너럴모터스(GM)와 한국 정부 간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12일 한국지엠의 실적을 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외에서 52만여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전년보다 12.2% 줄어들었다. 한때 연간 판매량이 100만대에 육박했던 것에 견주면 거의 반토막 난 셈이다. 회사 쪽은 신차 부진과 제품 라인업 부족 등으로 부실원인을 설명하지만, 업계에선 모기업인 지엠과의 비정상적인 거래 관계 등 구조적인 문제를 꼽고 있다.
최근 3년(2014~2016년) 동안 2조원 누적 손실을 낸 한국지엠은 지난해에도 6천억원의 손실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적자 원인은 내수와 수출 부진이 가장 크고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 등 지엠의 글로벌 사업조정에 따른 영향, 과도한 차입 등이 2차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지엠 자체의 경쟁력 상실과 지엠의 본사 위주 정책도 부실을 키우는 직간접 배경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이전가격 논란과 높은 원가매출률 등 본사와의 거래 적절성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런데도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대한 주주감사를 제대로 벌이지 못했다. 한국지엠이 비상장 회사인 데다 산은의 경영자료 공개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한 탓이다. 앞으로 이 부분은 지엠과 정부의 협상 과정에서 불씨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지엠의 철수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지엠 본사 차원의 글로벌 사업재편이 본격화된 2014년부터였다. 이후 내내 적자를 기록하면서 철수설이 증폭됐다. 지난해 한국지엠의 자산처분 거부권을 보유했던 산은의 견제 장치가 소멸하면서 철수설은 더욱 커졌다. 지엠은 지금껏 한국시장 철수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지엠의 사업재편 흐름과 한국지엠의 경영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사업 철수 등을 감행했던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처럼 ‘벼랑끝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한국지엠은 철수설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할 뿐이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은 생산과 제품개발, 디자인 분야에서 지엠 글로벌 사업의 주요 거점 중 하나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 지엠은 사실상 한국시장 철수 카드를 내밀며 한국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정부가 일자리를 우선시하는 정책기조를 가진데다, 6월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을 십분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엠의 요구안이 무엇이든 한국지엠이 망가진 원인을 제대로 짚고 회생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순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실의 원인이 뭔지 파악하려면 재무제표 등을 요구해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한국지엠 문제가 산업 구조와 실업 등에 미칠 영향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비슷한 입장이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국회에서 배리 엥글 지엠 해외사업부문(GMI) 사장과 1월 면담에서 “지엠이 중장기적으로 ‘롱텀 커미트먼트(long term commitment·장기 투자)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전체적인 경영구조 개선을 어떤 형태로 할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앞서 엥글 사장은 지난주에도 한국을 찾아 산업부와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등 이해관계자들을 만났다. 산업부와 산은, 한국지엠 노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는 한국 정부와 노조 등에 한국지엠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 산은에는 한국지엠의 유상증자 등 자금지원 방안에 대한 참여를, 노조에는 수익성 제고를 위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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