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광주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주요 참석자들과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광주/청와대사진기자단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31일 완성차 합작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 협약을 맺으면서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향한 여정에 첫 단추가 끼워졌다. 광주 완성차공장은 지자체가 운영 주체가 되어 완성차업체의 물량을 위탁생산하는 독특한 생산방식이다. 광주시가 ‘노사 상생’과 ‘일자리’를 앞세워 지역 노동계를 설득하고 현대차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합작법인을 출범시키고 공장을 본격 가동할 때까지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다.
먼저 법인 설립에 들어갈 수천억원의 투자자금을 추가로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광주 완성차공장 합작법인 설립에 들어갈 총 투자 규모 7천억원 가운데 자기자본은 2800억원이다. 광주시가 지분의 21%(590억원)를, 현대차가 19%(530억원)를 분담하고 나머지 60%(1680억원)는 지역사회, 산업계, 공공기관,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해 충당한다는 게 광주시의 구상이다. 신설 법인의 자기자본금 2800억원은 광주시와 현대차가 1, 2대 주주로 참여해 해결할 것으로 보이지만 총 자본금 7천억원 중 자기자본금을 뺀 나머지 자본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아직 미정이다.
앞서 광주시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시킨다는 계획 아래 투자 참여와 정책자금 지원을 요청(<한겨레> 2018년 11월14일치 18면)한 바 있다. 산은의 자금 지원이 이뤄질 경우 광주 완성차공장은 지자체와 국책은행의 투자 비중이 60~70%에 이르는 준공기업 성격을 띠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세금이 투입되는 셈이라, 이를 둘러싼 시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도 관건이다.
생산 차종의 판로 확보를 비롯해 합작법인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국내 차 생산량은 2011년 466만대를 정점으로 내리막길로 접어든 상태다. 지난해 403만대까지 줄었고 올해는 그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자동차 과잉생산 논란과 산업 구조조정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설비를 늘리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르면 2021년 하반기부터 가동될 공장에서 생산될 차는 1000㏄ 미만의 경형급 스포츠실용차(SUV)로 정해졌다. 경차는 현재 현대차가 생산하지 않아 차종 간 충돌을 피할 수 있는데다 수요가 많은 스포츠실용차라 어느 정도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는 일단 국내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있다. 국내 경차 수요는 2012년 20만대 판매를 찍고 지난해 16만대로 하락 추세에 있지만, 새로운 차종인 경형 스포츠실용차로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현대차는 보고 있다.
향후 경영 책임 문제도 정리돼야 한다. 광주 완성차공장 합작법인 설립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온 현대차는 투자는 하지만 경영 참여는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공장 운영의 주체는 엄연히 광주시이고 현대차는 여러 투자자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비지배 지분으로 일정 지분만을 투자해 신규 차종을 위탁생산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광주시에 이은 신설법인의 2대 주주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 협약서를 보면, 현대차는 광주시 투자금(21%)과 나머지 지역기업 및 개미 투자자의 투자금(60%) 유치를 끝낸 뒤 자본금(19%)을 납입하는 걸로 돼 있다. 협상 과정에 밝은 한 인사는 “2대 주주가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다른 기업이나 시민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현대차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란 반응도 있다. 지역 노동계의 한 인사는 “울산 현대차 노조에서 신규 투자에 반대하는 터라 지분 납입을 후순위로 한다고 나름대로 ‘묘수’를 생각해낸 것 같다”고 했다. 신설 법인에서 생산될 현대차의 위탁물량을 연간 7만대로 보장한다는 문구도 투자 협약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대차는 “시장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위탁물량을 못박을 순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노조의 거센 반발도 변수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이날 대의원 이상 간부 600여명이 파업에 돌입한 뒤 협약식이 열린 광주시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 협약 체결은 문재인 정부의 정경유착 노동적폐 1호로 규정한다. 정부와 회사를 상대로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도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현대차그룹의 숙원사업인 삼성동 신사옥을 앞당겨 승인해주었고, 대통령이 울산을 방문해 수소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현대차 밀어주기 선심 사업을 진행했다”며 “광주형 일자리는 정권과 자본의 전형적인 주고받기 거래”라고 주장했다.
이날 투자 협약이 타결됨에 따라 광주시는 다음달부터는 지역 기업과 시민들을 상대로 투자자 모집에 나설 방침이다. 투자자 모집이 완료되면 현대차 등이 참여하는 본투자협약을 체결한다. 공장이 들어설 빛그린국가산단의 공장 터닦기 공정률은 76%로, 1단계 사업이 12월 말에 끝난다. 완성차 합작공장은 독일 라이프치히에 설립된 베엠베(BMW) 신공장 같은 혁신공장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의 핵심은 시장 상황에 맞게 가동시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시 안팎에서는 광주형 일자리 역시 ‘근로시간 계좌제’ 등을 통해 탄력근무제와 고용·임금의 안정성을 결합하는 방식을 찾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홍대선 정대하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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