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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자동차

디젤게이트 이어 코로나 덮친 독일차 ‘시계제로’

등록 2020-05-17 16:31수정 2020-05-18 02:04

[코로나 직격탄 맞은 독일 차]
유럽 각국 판매량 반토막 그쳐
지난달 영국서 5천대도 못 팔아
미국 주요 공장들서 해고 줄이어
“10만명 이상 실직할 것” 예측도

[전기차 변신 결정적 순간인데…]
디젤 집단손배소송 줄줄이 패소
트럼프는 ‘고율관세’ 카드 만지작
미래차 개발 전망도 불투명
“향후 자동차산업 판도 확 바뀔 것”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코로나19는 독일 자동차 산업에 찾아온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이며, 이 사태로 해당 산업 종사자 1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독일 경제학자 페르디난드 두덴회퍼 교수(스위스 장크트갈렌대학교)는 코로나19 사태가 독일 자동차 시장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최근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유럽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려면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에는 세계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누가 쥐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는 몰라보게 변할 것”이란 전망도 덧붙였다.

한때 세계 자동차 시장을 주도하던 독일 기업들이 최근 몇 년간 거듭된 악재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다. 독일 자동차 제조사들은 디젤게이트 이후 환경규제가 강화되자 전기자동차로의 전환을 최대한 앞당기는 데 ‘올인’해왔다. 폴크스바겐 등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난해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 기업으로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미래를 기약해야 하는 시점에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맞닥뜨린 셈이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10년간 독일 자동차 산업 종사자의 규모가 반 토막 날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 유럽 ‘큰손’들 5000대도 못 팔아

일단 독일 제조사들이 주로 수출하는 유럽 자동차 시장은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곳 중 하나다. 지난달 유럽 자동차 판매량은 미국 등 다른 주요 시장보다 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 3월에는 유럽 전체 판매량이 반 토막이 났고, 지난달에는 유럽 큰손들로 불리던 주요 자동차 판매국들이 각각 5000대에도 못 미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영국에서는 4321대가 판매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6% 줄어들었다. 이탈리아 판매량도 98% 감소한 4279대에 그쳤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97% 감소한 4163대가 판매됐다. 같은 기간 53% 감소한 미국 시장 등에 비해 감소 폭이 훨씬 더 컸다.

자연스레 판매량이 급감한 기업들은 1분기 실적에서 두 자릿수 감소 폭을 보였다. 폴크스바겐의 1분기 영업이익은 9억유로(약 1조2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1.4% 급감했다. 다임러의 영업이익도 68.9% 감소한 7억원에 그쳤다. 베엠베(BMW)는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막대한 규모의 벌금을 냈던 지난해 1분기에 비해서는 영업이익이 두 배 넘게 증가했지만, 판매량은 20.6% 줄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주요 생산 기지에서는 해고 움직임이 잇달아 포착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이미 미국 테네시 공장에서 1500명을 해고했고, 앞서 다임러도 1만5000명을 해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엠베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 등에서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부터 유럽의 주요 공장들도 가동을 재개했지만 시장은 쉽게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다임러그룹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2분기에는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독일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이미 수년 전부터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 만큼 코로나19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자동차 수출량은 지난해부터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 수요 감소, 유럽연합의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맥을 못 추고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독일 내 자동차 생산량은 22년 만에 최저치인 470만대를 기록했다. 2018년에 비해 9% 감소한 수치다. 수출량은 감소 폭(13%)이 더 컸다. 전 세계 자동차 생산 물량 중 독일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6%로 20년 전보다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감원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다임러는 2022년까지 1만명을, 폴크스바겐도 2023년까지 7000명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대규모 감원을 감수해서라도 전기차를 성공적으로 출시해야 한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디이스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는 “2020년은 폴크스바겐에 ‘진실의 해’가 될 것”이라며 “올해 출시할 예정인 아이디(ID)3의 성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 트럼프 관세 위협까지…앞길도 험난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미래 위험 요인은 산재해 있다. 일단 디젤게이트 이후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수십만명의 소비자들이 낸 디젤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2월 독일에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낸 소비자 26만명에게 최대 8억3000만유로(약 1조1000억원)를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소비자들의 소송 비용도 폴크스바겐이 부담하기로 했다. 영국 법원도 소비자 9만명이 낸 소송에서 지난달 소비자 쪽의 손을 들어줬다. 베엠베도 최근 영국 등에서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며 유럽연합 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에는 에어버스 항공기에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면서 자동차 관세에 대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산화탄소 규제 강화에 따른 벌금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유럽연합 내 완성차 업체는 올해부터 신규 차량에 한해 대당 연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5g/㎞를 넘지 않아야 한다. 올해는 제조사별로 배출량이 적은 순서대로 신차 중 95%까지만 적용하고, 2021년부터는 모든 신규 등록 차량에 적용하게 된다. 최근 피에이(PA) 컨설팅이 2018년 실적을 기준으로 각 자동차 제조사의 벌금 규모를 추정한 결과 폴크스바겐은 45억400만유로(영업이익의 32.4%)를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토요타(1800만유로, 0.1%) 등 일본 기업들의 벌금 규모는 훨씬 적었다.

이런 요인들이 더해지면서 독일 제조사들이 명운을 걸고 추진해왔던 전기차로의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전기차 전환을 선언해왔다. 그 첫 성과물인 전기차 아이디3는 올여름 유럽 시장에서 대량 출고될 예정이었다. 폴크스바겐은 예정대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얼마나 판매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말 폴크스바겐은 연간 전기차 100만대 판매 목표 달성 시점을 기존 2025년에서 2023년으로 2년 앞당겼지만 이 계획도 현실화하기 어려워졌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친환경차는 아직 판매한다고 해서 이익이 나는 것이 아니어서 기업들 주머니 사정이 중요하다”며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늦어질 것으로 보이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이번 사태를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 수 있다”고 했다.

기업들은 위기 극복 방안을 물색 중이다. 폴크스바겐는 경쟁사인 포드와 함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개발에서 기술 협력을 하면서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미래차 전환은 선택지가 아닌 만큼 투자를 줄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라 칼레니우스 다임러 최고경영자는 최근 “전자화와 디지털화 등 핵심 기술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며 “새로운 기술로의 전환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디젤차에서 전기차로 전환에 천문학적인 개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올해는 독일 자동차 기업들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며 “올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따라 앞으로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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