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농구 인기구단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유니폼에 ‘비비고’ 로고가 붙어 있다. 레이커스 페이스북 갈무리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 먹기 영상이 유행처럼 번지고, 미국 프로농구 스타들이 한식 브랜드 비비고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빈다.
케이(K)푸드의 영토 확장 속도가 무섭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라면과 과자, 냉동식품 등이 기념일 선물이나 파티 음식으로 주목 받고 있다. 국외매출이 국내매출을 넘어선 상품도 다수 있을 정도로 더이상 케이푸드는 한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다.
케이푸드의 국외매출은 매년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지난달 말 발표한 ‘우리나라의 에프앤비(F&B) 소비재 수출 동향’ 보고서를 보면 올해 한국 식음료 수출액은 지난 8월까지 전년동기 대비 16.3% 증가한 53억2449만달러(약 6조3388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70억달러를 돌파한 식음료 수출액은 올해에도 최대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 ‘가장 한국적인 맛’ 매운라면·김치의 선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라면이다. 농심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3분기까지 신라면의 국내외 매출은 6900억으로 이 중 국외매출이 3700억원이다. 신라면이 출시된 지 35년만에 국외매출이 국내를 처음 넘어선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농심은 신라면으로만 올해 국외매출 5000억원을 포함해 총 9300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 상품으로 연매출 1조원 달성도 머지 않았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삼양식품 매출 현황을 보면 붉닭볶음면 국외매출은 올해 3분기까지 총 2300억원으로 국내매출 720억원의 3배가 넘었다. 주요 수출국은 중국과 동남아, 미국 순이다. 유튜브에서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유행한 ‘불닭볶음면 챌린지’가 낳은 결과다. 지난해 삼양식품의 매출은 6485억원으로 붉닭볶음면의 성공에 힘입어 매해 1000억원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대표 음식 김치의 도약도 눈에 띈다. 포장김치 시대를 연 대상의 종가집 김치 수출액은 2016년 2900만달러에서 지난해 5900만달러(약 702억4000만원)로 100%가량 증가했다. 국내 총 김치 수출액 중 40%에 달하는 수치다. 전세계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발효식품인 김치의 면역력 강화 효과에 대한 관심이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이밖에도 러시아와 주변 국가들에서 오리온 초코파이는 국민 과자라는 칭호를 받고, 팔도 도시락의 경우 러시아 일부 지역에서 품귀 현상이 발생해 사회적 문제로 번지는 일도 발생했다.
케이푸드의 국외 성공 사례들은 한국의 맛 그대로 성과를 거뒀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 신라면의 경우 한국에서 생산되는 맛 그대로를 살려 국외에 진출했고, 붉닭볶음면 경우도 매운맛을 기본으로 까르보, 치즈맛을 섞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해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대상 관계자는 “미주와 유럽, 아시아 40여개 국가에서 포기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같은 가장 전통적인 한국의 맛을 함께 즐기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의 한 마트에서 현지인이 오리온 초코파이를 고르고 있다. 오리온 제공
■ 한류 타고 전세계 케이푸드 열풍
케이푸드 수출은 1970년 초반 국외 교포 시장을 겨냥해 시작됐다. 농심은 신라면 출시 다음해인 1987년 수출을 시도한 뒤 1996년부터 중국 상하이 등에 생산 공장을 세웠고, 10년 뒤인 2005년에 아시아를 넘어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생산기지를 설립했다. 러시아를 제패한 오리온 초코파이 수출은 1990년대 초반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상인들의 구매 붐이 불면서 시작됐다. 1996년 모스크바 사무소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수출에 나선 뒤 현재는 국내보다도 훨씬 많은 11종의 초코파이를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한해 약 9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궤도에 올랐다. 팔도 도시락의 성공도 1990년대 부산항에 정박한 러시아 선원들이 가방에 넣기 좋은 사각 용기 라면을 현지에 알리면서 본격적인 수출이 시작됐다.
2000년대 한류의 시작은 또다른 기회였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국드라마 열풍은 주인공이 먹은 음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영상 속 한국의 식문화를 동경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2010년 이후 케이팝(K-POP)의 열풍은 전세계 곳곳에서 케이푸드 인기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 멤버 지민이 온라인 영상에서 즐겨 먹는 떡볶이와 불닭볶음면은 남미와 유럽 팬들에까지 화제가 될 정도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덕분에 농심은 라면 수출액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시아 변방이던 한국의 음식은 이제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주류 식품 반열에 오르고 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미국에서만 지난해 매출 4200억원을 돌파하며 만두 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 최고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등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선수들이 ‘비비고’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뛸 정도로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뉴욕타임스에서 지난해 ‘세계 최고의 라면’으로 꼽은 신라면은 미국 전역 월마트 4500여개 점포에 모두 입점하면서 미국 구석구석까지 진출했고, 불닭볶음면도 미국 아마존의 인스턴트 라면 순위 톱10에 들었다. 농심 관계자는 “저출산과 식습관 변화로 국내 내수 시장의 위기가 커졌지만 국외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며 “케이푸드가 맛좋고 건강하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한국의 라면과 김치를 피자와 피클처럼 전세계인들이 즐길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