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고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어요. 신분증 검사요? 당연히 했죠. 그런데 가짜 신분증 들고 오는 것까지 어떻게 걸러내요? 청소년보호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데, 벌금형일까요?”
자영업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오는 글이다. 청소년이 들고 온 가짜 신분증에 속아 주류를 판매하는 바람에 곤경에 처하는 업주들이 심심치 않게 많다. 최근 ‘만 나이’ 제도를 앞두고 수법도 진화했다. 한 명이 정상 신분증을 들고 주점에 들어온 뒤 뒷문이나 쪽문으로 미성년 일행이 들어와 합석하는 식이다. 점주들은 억울하기만 하다.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이러한 억울한 점주들에 대한 행정제재나 형사처벌 수위를 낮춰줘야 한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와 법제처는 오는 6월 ‘만 나이’ 제도 도입을 앞두고 정책참여 플랫폼 ‘국민생각함’에서 4434명을 대상으로 ‘사업자 부담완화 방안’에 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583명(80.8%)이 ‘나이 확인과 관련해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업자의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고 1일 밝혔다. 국민권익위는 국민패널 2753명과 일반국민 1681명 등 모두 4434명의 의견을 종합해 설문 결과를 도출했다.
부담완화 방안으로는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업자에 대한 행정제재 처분을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47.9%로 가장 많았고, ‘사업자의 신분 확인 요구권과 구매자 준수 의무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16.4%, ‘형사처벌 수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16.2%였다.
현행 식품위생법은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한 업주는 6개월 이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청소년보호법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돼 있다. 식품위생법은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조해 업주가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면책을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청소년보호법은 이런 면책 조항이 없다.
업주들은 이런 청소년보호법을 악용한 미성년자들의 ‘탈선’에 속수무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관악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40대 정아무개씨는 “미성년자가 술과 담배를 사 간 뒤 찾아와 협박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에도 미성년자가 신분을 숨기고 유흥업소에서 술을 주문한 뒤 신고하겠다며 업주를 협박해 돈을 가로챈 10대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많은 응답자가 주류를 구매한 청소년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응답자들은 “해외 입법사례와 같이 구매자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법제처는 오는 6월28일 만 나이 원칙 명문화가 시행되는 만큼 당분간 사업주들이 청소년 나이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가짜 신분증에 속거나 폭행·협박 등으로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사업자가 처분을 감경·면제받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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