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신종 배달 사기 맞죠?”
서울 송파구에서 파스타 음식점을 운영하는 ㄱ씨는 지난 2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두 달 전쯤인 2월 15일께 음식을 주문했다가 다 쏟아져 배달되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는 한 손님이 이날 갑자기 전화해 환불을 요구한 것이다. ㄱ씨는 “두 달 전 일을 지금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손님은 ‘당시 정신이 없어 넘어갔는데, 카드 명세서를 정리하다 생각이 났다’고 주장하더라”며 “혹시 나중에라도 악성 리뷰를 남길까 걱정도 되고 2만4500원밖에 안 되는 금액이라 실랑이를 길게 하지 않고 현금으로 입금을 해줬다”고 말했다.
반전은 이후에 일어났다. 경기도 광주에서 다코야키 음식점을 하는 지인과 통화를 하던 도중 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다코야키 음식점 사장 ㄴ씨 역시 지난달 27일 “두 달 전쯤인 2월 27일 음식을 시켰다가 다 쏟아져 먹을 수 없었다는 손님으로부터 환불 요구를 받고 역시 2만1800원을 환불해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며칠 사이 겪은 사건이 너무 똑같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입금자의 이름과 계좌번호, 전화번호 등을 비교해 본 결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ㄱ씨가 식당의 카드 결제 내역과 배송지, 주문 통화 내역 등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해당 손님의 주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ㄱ씨는 이를 신종 배달 사기라고 판단했다. 그는 “두 달이 지난 카드결제는 취소되지 않으니 현금으로 환불해줄 수밖에 없다는 ‘맹점’과 환불 금액이 소액이다 보니 손님과 싸웠다가 피해를 볼까 두려워 환불을 해주는 점주가 많다는 ‘약점’을 이용한 수법으로 보인다”며 “서울 송파와 경기 광주라는 동떨어진 식당에서 우연히 한 사람이 동일한 일을 겪었을 리 만무하다.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ㄱ씨는 사기죄로 해당 손님을 경찰에 고소하기로 했다. 그는 “소액이라 귀찮은 마음도 들었지만, 손님에게 ‘을’일 수밖에 없는 점주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기꾼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언론에도 제보하게 됐다”고 했다.
배달을 하는 식당 점주들은 이런 사례와 유사한 ‘악성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음식에서 머리카락 등 이물질이 나왔다는 거짓말을 해 식당에 돈을 뜯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0만여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이런 일을 겪었다는 점주들의 글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업종 특성상 리뷰나 평점에 민감하다 보니 손님과 싸우기보단 환불을 해주는 게 속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점주들이 많은 탓이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이물질이나 배달 불만을 이유로 환불을 요구하는 손님에 대응하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경우, 맘카페에서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고 악성 리뷰나 별점 테러를 당할 수도 있어 정황이 의심스러워도 환불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호소했다.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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