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체들 이월상품 파격세일로 공략
온라인몰 ‘중고의류’ 매출은 330% 증가
온라인몰 ‘중고의류’ 매출은 330% 증가
‘값이 싸면서도 절대 유행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
자타가 인정하는 맵시꾼(패셔니스타)인 신아무개(27)씨의 쇼핑 원칙이다. 신씨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옷을 살 때는 주로 백화점을 이용했으나 지난해 말부터는 중고 의류매장을 자주 찾는다. 신씨는 얼마 전에도 홍익대 근처의 중고의류 가게를 샅샅이 뒤져 봄옷을 장만했고, 중고 구두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샀다. 신씨는 “모두 희소성이 있으면서 가격은 10만원을 밑도는 제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신씨와 같은 알뜰 멋쟁이들을 일컫는 ‘리세셔니스타’(Recessionista)들이 늘고 있다. ‘리세셔니스타’는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지난해 처음으로 사용한 신조어다. 경기침체를 뜻하는 ‘리세션’(recessionon)과 최신 스타일을 선호하는 소비자인 ‘패셔니스타’(fashionista)의 합성어다.
리세셔니스타가 선호하는 품목은 하나의 옷이나 구두로 여러가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정장과 캐주얼 차림에 상관없이 사철 활용할 수 있는 ‘조끼’나 ‘토-오픈(앞 트임이 있는) 구두’가 그 예다. 신세계백화점 마케팅 홍정표 팀장은 “경기위축에 따라 한 번 구입으로 다양한 연출을 할 수 있는 품목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올해에는 앞코가 뚫린 봄여름용 부츠나, 소매가 없어 봄과 가을·겨울에도 입을수 있는 조끼형 코트도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리세셔니스타의 성지’로 불리는 의류 아웃렛은 경기불황 속에서 매출 상승을 이뤄내고 있다. 서울 금천구의 ‘마리오아울렛’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2월까지 꾸준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특히 올해 1월에는 백화점 의류매출이 0.3% 줄어든 반면, 마리오아울렛의 의류 매출은 14.3%나 늘었다. 이 회사 성택암 마케팅팀 과장은 “2003~2004년 카드대란 경기침체 때의 상황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당시 백화점 매출이 12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마리오아울렛은 매달 30%씩 매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존 유통업체와 의류업체들의 리세셔니스타 공략도 치열하다. 우선 의류업체들은 브랜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선뜻 나서지 않았던 ‘파격 할인’에 적극적이다. 엘지(LG)패션은 지난달 27일 3년 이상된 이월 상품을 포함한 제품을 최고 80~90%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자사 브랜드 아웃렛을 경기도 화성시에 열었다. 유명 브랜드 업체들은 대개 3년 이상된 재고 물량은 100% 소각하거나 복지기관 등에 기부해온 데 비하면 이례적이다. 엘지패션 김인권 홍보팀장은 “경기불황으로 질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마련하려는 수요가 있다는 판단에 3년 이상 재고 물량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후아유를 비롯한 유명 의류 브랜드의 온라인 쇼핑몰 입점도 줄을 잇고 있다. 이월 의류를 싼값에 파는 아이스타일24에 입점한 브랜드 개수는 지난해 2월말 780여곳에서 2일 현재 1000여곳으로 28%나 늘었다. 이 온라인 쇼핑몰의 1~2월 누적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10%나 성장했다. 아이스타일24 이린희 마케팅팀장은 “3월 중 쇼핑몰 개편을 앞두고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베네통’이나 ‘시슬리’ 같은 유명 브랜드들이 입점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몰들도 리세셔니스타들을 겨냥한 서비스를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리세셔니스타는 중고 의류도 꺼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활용한 ‘빈티지룩’(오래된 옷으로 치장하는 스타일)으로 멋을 추구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언뜻 후줄근한 이미지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낡아보이는 청바지에 색바랜 구두도 유행하고 있는 복고풍의 멋을 살리는 데는 더할나위 없는 아이템이다. 지난 2월 온라인 오픈마켓 옥션의 중고장터에서 팔린 중고의류는 3500벌로 지난해 같은 기간(790벌)보다 330%나 늘었다.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도 중고 의류를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을 올해 새롭게 마련했다.
서울 강남의 손님 뜸한 청담동길과 북적대는 신사동 가로수길의 대조적 풍경은 이런 새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최근 청담동의 명품이나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은 매출 감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알뜰 리세셔니스타의 쇼핑 명소로 자리잡은 신사동 가로수길은 주말이면 매장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인 심문보씨는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는 무권리금 점포가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거래가 실종됐다”며 “그러나 신사동 가로수길은 유동인구가 줄지 않아 지난해에 형성된 1억원 안팎의 권리금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서울 강남의 손님 뜸한 청담동길과 북적대는 신사동 가로수길의 대조적 풍경은 이런 새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최근 청담동의 명품이나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 매장은 매출 감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반면, 알뜰 리세셔니스타의 쇼핑 명소로 자리잡은 신사동 가로수길은 주말이면 매장마다 손님들로 북적인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인 심문보씨는 “청담동과 압구정동 일대는 무권리금 점포가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거래가 실종됐다”며 “그러나 신사동 가로수길은 유동인구가 줄지 않아 지난해에 형성된 1억원 안팎의 권리금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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