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한창인 지난 8~9월 백화점에서는 때아닌 ‘다운 점퍼(오리털이나 거위털을 넣어 만든 점퍼) 대전’을 열어 선판매를 시작했다. 지난해 겨울 다운 점퍼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물량이 부족해 판매를 하지 못할 정도가 됐던 상황을 고려해 선판매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유통업 관계자는 “브랜드마다 다르긴 했지만 보통 80~90%가량의 소진율을 보였다”며 “일부 인기 품목은 진열을 하기도 전에 팔려나가기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무게 줄여 부피감 최소화
얇고 날씬한 디자인 옷맵시 살려줘
봉제선 없애 털빠짐 방지
소비자 입맛 맞춘 깐깐함에 매출도 ↑
올해 아웃도어와 스포츠의류 업계에서는 경량화 경쟁이 치열하다. 바로 다운 점퍼 이야기이다. 10년 전 다운 점퍼의 무게는 1㎏ 안팎이었다. 올해 엘에스(LS)네트워크의 몽벨에서 나온 초경량 다운 점퍼는 그 무게가 140g까지 떨어졌다. 작은 팩 우유의 무게보다도 가볍다. 점퍼 한벌이 실제로 500㎖짜리 페트병 정도 되는 전용 용기에 접혀 쏙 들어간다. 네파(NEPA)는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가는 다운 점퍼임을 강조한 내용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오리나 거위털 말고는 들어가는 소재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어떻게 그 정도까지 줄일 수 있나 싶다. 맵시도 많이 달라졌다. 오리털 점퍼를 입으면 오리가 걷듯 뒤뚱뒤뚱거리게 되던 때와는 천양지차이다. 얇으면서도 날씬한 디자인이 오히려 옷맵시를 더욱 살려준다. 도대체 200g안팎의 초경량 다운 점퍼에 담긴 비밀은 뭘까?
지난 20일 찾은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동우어패럴, 겨울을 앞둔 공장의 재봉틀은 바쁘게 돌아간다. 이곳에서는 코오롱에프엔씨(FnC)의 브랜드인 헤드와 코오롱스포츠를 비롯해 한 해 10만~15만장의 다운 점퍼를 생산한다. 보통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이 옷감 재단과 재봉을 거쳐 단숨에 만들어지지 못하는 게 다운 점퍼이다. 재단과 재봉을 제외하고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옷이다. 뿐만 아니라 초경량 경쟁이 붙기 시작한 뒤로는 소재와 각 공정에 특허 바람이 불기도 했다.
다운점퍼를 만드는 데는 사람의 손길이 다른 옷보다 많이 간다. 거위·오리털을 직접 넣고(①), 털이 새어나가지 않는 공법을 사용해 재봉(②)을 한 뒤, 일일이 옷을 방망이로 두드려가며 불량 검사(③)를 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초경량 다운 점퍼가 나오기까지는 두 가지가 선행되어야 했다. 우선, 기존에 원단 안에 따로 넣었던 다운백(거위·오리털을 넣어 만든 주머니)을 없애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나오고 있는 경량이나 초경량 다운 점퍼에는 따로 다운백이 쓰이지 않는다. 다운 점퍼 안감을 들춰 보면 원단 안으로 비치는 거위털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옷을 단면으로 잘랐을 때, 종전에는 4겹의 원단이 쓰였지만, 이제는 2겹으로 줄었다. 둘째로는 원단 자체의 무게를 줄여야 했다. 5년 전 1야드(91.44㎝)에 100g이었던 다운 점퍼 원단의 무게는 소재 개발을 거쳐 이제 20~30g까지 줄었다.
무게를 줄이기는 줄였으나 고비는 또하나 있었으니, 바로 국내 소비자들이 용납하지 못할 ‘털 빠짐’ 현상이다. 동우어패럴 서범수 과장은 “유럽이나 일본 소비자들은 안쪽의 털이 조금씩 빠져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국내 소비자에게는 제품 반환 사유 1순위”라고 말했다. 경량화 탓에 다운백을 없애니 봉제선 사이로 솜털이 빠져나오기 마련이다. 다운 점퍼 생산에서 털 빠짐이 심한 제품이 많이 나오는 것을 업계에서는 ‘사고’로 친다. 제품이 나와봤자 반품이 될 게 뻔한데다, 브랜드 이미지까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코오롱에프엔씨와 동우어패럴은 머리를 싸맸다. 결론은 ‘봉제선을 없앤다’는 것이었다. 옷에 봉제선이 없다. ‘천의무봉’이라지만, 천의가 아닌 다음에야 무봉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결책은 생각지 못한 데 있었다. 앞판과 뒤판의 옷감을 전용 접착제를 발라 압착기를 써서 붙이는 ‘웰딩’ 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실이 들어갈 이유도, 또 봉제선 사이로 털이 빠져나올 수도 없게 만든 것이다. 기존의 고어텍스 제품 생산에 쓰이던 공법을 응용했다.
200g 초경량의 비밀 다운 점퍼, 겨울을 날다
원단, 공법 말고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털’ 자체이다. 최근에는 ‘헝가리산 거위털’ 열풍이다. 다운 점퍼를 내놓는 업체마다 ‘헝가리산 거위털’을 내세워, 다른 원산지는 명함도 못 내미는 추세이다. 다운 점퍼에 쓰이는 거위털 가운데 고급으로 치는 것은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산 등이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날씨가 춥다’는 것이다. 추운 지역에 사는 거위는 따뜻한 지역에 사는 거위보다 그 털 구성이 촘촘하다고 코오롱에프엔씨 서창배 과장은 설명했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다 보니, 늘어만 가는 것은 특허이다. 올해 신제품에 들어간 특허는 웰딩 기법 특허를 비롯해 4개나 된다. 시범 제품의 수도 어마어마하다. 보통 10장 정도 시범 제품을 만들면 됐지만, 경량 다운 점퍼를 내놓았을 때는 400장, 웰딩 기법을 적용한 다운 점퍼를 만들 때는 100장의 시범 제품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공정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동우어패럴 쪽의 설명이다. 서 과장은 “직원들도 우리가 만든 제품이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가장 앞서 있다는 생각에 더욱 의욕적으로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초경량 다운 점퍼의 기세는 올해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동우어패럴의 서 과장은 “원래 3~4월에는 일감이 없기 마련인데, 이제는 그럴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코오롱에프엔씨는 올해 10월20일까지 다운 점퍼 판매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70%나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