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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색 뺐다 물들였다 ‘우연의 멋’에 깃든 독성

등록 2013-11-05 19:55수정 2013-11-05 20:59

[경제 쏙] ‘발암 청바지’ 왜?
청바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안전한 청바지를 입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청바지 제조 과정을 들여다봤다.

‘발암 청바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달 28일 시중에서 판매중인 국내외 12개 브랜드 청바지 15종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때문이다. 15개 제품 가운데 베이직하우스의 1개 제품에서 발암물질인 아릴아민(벤지딘)이 기준치를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치 이내이지만 6개 제품에서는 내분비계장애 유발물질인 노닐페놀에톡시레이트(nonyl phenol ethoxylates)도 검출됐다.

 청바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조사를 통과한 브랜드 청바지들은 문제가 없는 걸까. 청바지가 아닌 다른 옷들은 문제가 없는 걸까.

■ ‘우연이 만든 멋’의 독성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주로 사용되는 단계가 염색이다. 거의 대부분의 옷이 염색으로 다양한 색깔을 낸다. 옷은 염색 방법에 따라 ‘선염’과 ‘후염’으로 나뉜다. 선염은 이미 염색된 실, 즉 원사를 짜서 원단을 만들고, 그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 방식이다. 니트 의류가 선염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옷이다. 후염은 색을 입히지 않은 원사로 원단을 짠 뒤 염색을 하고, 염색된 원단으로 옷을 만드는 방식이다. 니트가 아닌 대부분의 옷이 후염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선염에 비해 후염의 탈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청바지는 선염과 후염이 혼합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먼저 진한 청색으로 염색한 실과 염색을 하지 않은 실을 섞어 일반 옷감보다 두껍고 질긴 원단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원단을 ‘데님’이라고 부른다. 데님 원단으로 바지를 만든 게 청바지다. 하지만 다른 의류와 청바지가 다른 점은 바지 모양을 갖춘 뒤에도 추가 염색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옷의 형태를 갖춘 청바지를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탈색하고 다시 염색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틴 공정’이라고 부른다. 이 과정을 통해 청바지는 똑같은 모델이라도 조금씩 색상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물이 빠진 느낌을 갖게 된다. 때론 여기에 ‘오일 공정’이 추가되기도 한다. 기름때가 밴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이후에 부분적으로 천을 찢거나 헤지게 하는 등의 공정이 더해지기도 한다. 모든 의류 가운데 옷의 모양이 만들어진 뒤 가장 많은 공정이 더해지는 옷이 바로 청바지다.

■ 안전검사의 사각지대 우리나라에서 의류에 대한 안전관리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을 따른다. 이 법은 3세 이하 영·유아용 섬유제품에 대해서는 제조·수입업자가 완제품을 지정된 시험·검사기관에 의뢰해 안전기준 적합성 검사를 통과하고, 안전인증기관에 검사결과를 신고한 뒤에야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밖에 의류는 제조·수입업자가 제품이 안전기준에 적합함을 스스로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원단 또는 완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거치고, 검사결과를 구비만 하고 있으면 된다.

청바지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한국소비자연맹이 조사한 15개 청바지 제품도 모두 자체 검사를 거쳤다. 그런데도 자체 검사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제조업체들이 원단에 대한 품질검사만 했기 때문이다. 이런 검사로는 원단 염색에 사용된 유해물질은 걸러낼 수 있지만, 틴 공정이나 오일 공정에서 사용되는 염료에 포함된 유해물질을 걸러낼 수 없다. 국내에서 완제품 상태의 청바지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 것은 한국소비자연맹의 이번 조사가 처음이었다. 베이직하우스 쪽은 “원단검사에서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틴 공정에서 사용이 금지된 염료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모든 청바지에 대해 완제품 단계에서 검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옷 형태 갖춘뒤 탈색·염색
‘틴 공정’서 금지 염료 사용된듯
제조업체선 원단만 자체 품질검사
그동안 유해물질 검출되지 않아

“앞으론 완제품 단계서 검사” 밝혀
중국·베트남 등서 OEM 생산
유해물질 통제 어려운 실정
노동자 건강·자연환경 훼손 심각
“기업이 유해물질 관리 철저히 해야”

이번 검사를 무사히 통과한 브랜드의 청바지들은 안전한 걸까. 이번 검사는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브랜드마다 1개 또는 2개 모델을 검사대상으로 선정해 이뤄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아릴아민이 검출된 베이직하우스 제품은 다른 브랜드 제품들에 비해 후공정이 많이 들어간 청바지였다. 게스 브랜드 제품에서 노닐페놀에톡시레이트가 상대적으로 많이 검출됐는데, 게스가 전반적으로 후공정이 많이 필요한 디자인이 많다. 다른 브랜드들도 후공정이 많이 필요한 디자인을 골라 검사를 한다면 유해물질이 추가로 검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청바지에 대해 완제품 검사를 한다고 해도 유해물질을 100% 걸러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청바지는 틴 공정과 오일 공정 후 ‘수세’를 거쳐 출시된다. 마지막으로 물세탁을 통해 남아있는 염료 등을 씻어내는 작업이다. 하지만 세탁을 해도 접합부위 등에 남은 물질은 씻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문에 청바지의 어느 부분을 떼어내 검사를 하느냐에 따라 유해물질이 검출될 수도 있고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베이직하우스가 한국소비자연맹의 검사 이후 자체적으로 실시한 정밀검사에서 같은 청바지인데도 부위에 따라 아릴아민 검출량이 10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베이직하우스 쪽은 “청바지를 구입한 후 몇 차례 세탁을 하면 어지간한 유해물질은 모두 제거될 수 있다. 하지만 피부가 정말 민감한 소비자라면 후공정이 많이 들어간 디자인은 피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베이직하우스는 앞으로 후공정이 과도한 디자인은 아예 만들지 않기로 했다.

■ ‘발암 청바지’의 진짜 피해자 아릴아민과 같은 유해성분이 포함된 염료는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돼있다. 하지만 이런 유해물질을 통제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대다수 글로벌 브랜드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제3국의 공장에서 주문제작(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사대상인 15개 청바지 제품 가운데 티비제이(TBJ), 에비수, 버커루, 게스 등 4개 제품만 국내에서 생산됐고, 나머지 11개 제품은 중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튀니지, 모리셔스 등에서 생산됐다. 이번에 아릴아민 성분이 검출된 뒤 베이직하우스는 자체조사를 벌였지만 중국 공장이 틴 공정에서 사용이 금지된 염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만 밝혔을 뿐, 정확히 어떤 염료가 사용됐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직하우스 관계자는 “이미 문제가 터진 상황에서 현지 공장이 벌써 문제의 염료를 치우지 않았겠냐. 수사를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유해물질이 사용된 청바지가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몇 차례 세탁으로 유해물질은 제거된다.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이 의류에 대한 안전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심각하게 위협받는 건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제3국의 노동자들과 주변 자연환경이다. 이병무 한국독성학회장(성균관대 교수)는 “아릴아민(벤지딘)은 방광암을 일으킬 수 있고, 노닐페놀은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이다. 유해작용이 근로자와 주변환경에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벤지딘에 노출된 중국 근로자들의 방광암 발병에 대한 연구 논문도 나와있다”고 말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지난 2011년 다국적 의류업체에 납품하는 중국 공장에서 나온 독성물질이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한 글로벌 의류 브랜드 관계자는 “브랜드를 보유한 기업, 제조공장, 판매처가 모두 다른 나라에 흩어져있는 상황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공장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다. 이미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국외 공장에 본사 기술자들을 상주시키면서 공정을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철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제품안전팀장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법적 규제보다는 민간 차원에서 유해물질에 대한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유해물질 관리를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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