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들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설 선물세트 사전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사진은 서울 롯데마트 강변점에서 지난달 23일 모델들이 설 선물세트 사전 예약 판매를 홍보하는 모습. 연합뉴스
‘1조원대 명절선물’ 고민 식품기업
설 선물세트 매출 비중
가공식품 명절 선물세트 시장 규모
가장 많이 주고받는 건 가공식품
CJ·대상 등 ‘선물 전담팀’ 운영
명절선물세트 매출잡기 안간힘 식품기업은 보통 3월이면 추석 선물세트 준비를 시작한다. 3~4월에 제품을 기획하고, 5월부터 포장재 발주가 시작된다. 6월부터 8월까지 석 달간 제품을 생산해 포장하고 9월에 본격적인 판매에 들어간다. 추석이 끝나면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설 선물 준비에 들어간다. 설이 지나면 수백 종의 선물세트가 어떤 유통경로를 통해 얼마나 판매됐는지 분석해 시사점을 찾아내고, 다시 추석을 준비한다. 올해 설 연휴 시작을 보름여 앞둔 지난 19일 찾아간 서울 중구 씨제이제일제당 본사 선물세트팀 사무실 선반에는 경쟁사의 선물세트들이 종류별로 들어차 있었다. 또 책상 위에는 스팸, 알래스카연어, 식용유 등 씨제이제일제당의 다양한 제품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처음 조직이 생길 때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장승훈 팀장은 “테이블 위에 틀을 올려놓고 그 안에 다양한 구성과 배열로 제품을 늘어놓으면서 아이디어를 낸다. 재미있는 구성이 나오면 사진을 찍어서 영업사원들, 유통사 구매담당자와 우선 얘기를 해본다. 이후 대형마트 등에서 시식과 판매를 맡는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새로운 선물세트가 나오고, 시장 반응이 좋으면 확대하고 아니면 접는 일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각 기업의 선물세트들은 저마다 수없이 진행한 실험의 결과물이다. 선물세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성공을 거둔 실험으로는 씨제이제일제당의 알래스카연어 통조림 세트를 꼽을 수 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2013년 설에 주력 상품인 스팸과 알래스카 연어를 묶은 선물세트를 선보였다. 아직 알래스카연어가 일반 상품으로 출시되기 전이었다. 선물세트를 신제품을 선보이는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소비자가 장을 볼 때 생소한 제품에 손이 가긴 쉽지 않지만, 잘 알려진 제품과 함께 선물세트에 들어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구매한다는 점을 겨냥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선물세트로 연어 통조림을 접한 소비자들이 재구매를 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연어 통조림 시장이 형성됐고, 경쟁사들도 뒤따라 연어 통조림을 출시했다. 유명상품과 신상품 묶어 팔기로
CJ 알래스카 연어 재구매 대박
‘민망한’ 전립선 기능제품은 ‘쓴맛’
포장 크면서도 벙벙해보이지 않게 물론 성공의 뒤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2014년 추석에 프리미엄 식초가 들어간 선물세트를, 2015년 추석에는 굴소스가 포함된 선물세트를 기획했다. 연어 통조림처럼 신제품을 알리려는 의도였다. 두 제품은 앞서 출시돼 반응이 괜찮은 편이었다. 특히 굴소스는 방송에서 인기를 얻은 이연복 셰프를 모델로 채택해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명절 선물세트로는 실패했다. 두 제품 모두 한 시즌 만에 선물세트에서 빠졌다. 장승훈 팀장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양을 고려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식초와 굴소스를 두 병씩 담았는데, 두 병이면 일반 가정에서 1년 넘게 쓸 양이다. 소비자는 그 정도는 필요 없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선물세트를 대충 고르는 게 아니라 정말 꼼꼼하게 따져보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파스타 소스와 면 등으로 구성된 선물세트도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전통 명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비자의 인식이 걸림돌이었다. 건강식품 가운데 전립선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제품으로 구성한 선물세트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주는 사람은 멋쩍고 받는 사람은 얼굴이 화끈거릴 법한 선물이었던 것이다. 장 팀장은 “타깃이 명확한 제품은 명절 선물세트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사실 스팸이나 동원참치 캔처럼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들은 명절 승부전에서 유리하다. 하지만 1등 제품이라고 선물 시장에서 꼭 성공하는 건 아니다. 씨제이제일제당의 ‘햇반’은 즉석밥 제품군에서 1등 브랜드이지만, 스팸과 햇반으로 구성한 명절 선물세트는 실패했다. 햇반은 1인 가구가 한 끼 때우는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선물로는 선호하지 않는 탓이다. 매출 규모 국내 3위 식품기업인 농심이 선물세트 시장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소비자들은 평소 농심의 수많은 라면을 즐겨 먹지만, 명절에 라면을 선물하지는 않는다. 사용자와 구매자가 다르다는 게 선물의 중요한 특징이다. 선물세트의 포장에도 많은 고민이 담겨 있다. 선물을 하는 쪽에서는 조금이라도 크고 풍성해 보이는 걸 고르기 마련이다. 과대포장이라는 지적이 늘 나오지만 포장재 크기가 작아지지 않는 이유다. 또 포장 크기를 키우면서도 상자를 열었을 때 너무 벙벙해 보이면 안 된다. 그래서 상자 속 포장재는 내용물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여백이 넓어 보이지 않도록 어두운 색을 많이 쓴다. 씨제이제일제당 선물세트팀 문지현 사원은 “몇 년 전에는 세로로 키가 큰 포장이 유행했지만, 요새는 가로로 폭이 넓은 포장이 대세”라고 전했다. 장기화하는 불황 탓에 전체 명절 선물 시장은 정체를 겪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실속’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이 짙어지면서 가공식품 선물세트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씨제이제일제당의 추정치를 보면, 가공식품 선물세트 시장은 2011년 설 당시 약 3500억원 규모에서 2015년 추석 때는 5100억원대로 커졌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정육이나 과일 등 고가의 선물을 구입하는 게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가공식품 선물세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장승훈 팀장은 “지난해 추석 가공식품 선물세트 시장이 8% 성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이번 설에도 5% 이상 신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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