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전주 남부시장. 대선을 앞두고 오전 시간인데도 시장 주변이 떠들썩했다. 이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남부시장을 방문했다. 유 후보는 상인들과 국밥을 먹으며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다른 대선 후보들도 앞다퉈 전통시장을 찾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성,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시장은 정치인들이 찾는 ‘0순위’ 장소다. 후보들이 상인이 건넨 것을 받아 먹는 ‘먹방’ 장면도 빠지지 않는다.
이날 만난 하현수 남부시장 상인회장은 대선 후보 방문에 분주했다. 350여개 점포가 장사하고 있는 남부시장은 새로운 변화를 통해 성공한 시장으로 손꼽힌다. 2011년 청년 상인들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청년몰’을 만들어, 한옥마을을 찾아온 젊은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청년몰과 2014년부터 시작한 주말 야시장까지 성공하면서 하루 평균 7천여명(주말 기준)의 방문객이 시장을 찾고 있다.
하현수 회장에게 대선 후보들의 전통시장 공약 평가를 부탁했다. 후보들의 공약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의 입점을 제한하거나 대형마트 의무휴일을 확대하는 내용이 주요하게 담겼다. 전통시장 화재방지·주차장 설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온누리 상품권 활성화 등도 들어있다. 하 회장은 “지금까지 나왔던 것을 ‘구색 맞추기’로 넣은 것 같다”며 “전통시장이 처한 상황은 훨씬 복잡하고 심각한데, 이에 걸맞는 구체적 고민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부시장만 해도 건물이 1960~1970년대 지어진 것인데, 당시 대지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현재 70% 이상이 무허가”라며 “시대 변화에 맞춰 상인들이 업종 변경을 하려고 해도 무허가여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75개 점포가 촘촘히 들어선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도 장사의 틀을 바꿔 성공한 곳이다. 통인시장 상인들은 2011년 11월 통인커뮤니티를 만들어 ‘도시락카페’를 운영 중이다. 도시락카페는 통인시장 화폐(엽전)로 여러 상점에서 음식을 조금씩 사먹을 수 있는 가게다. 평일에는 400여명, 주말에는 1000여명이 찾는다. 정흥우 통인시장 상인회장도 대선 공약이 ‘속빈 강정’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선 후보 가운데 전통시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며 “화재 방지·주차장 시설 지원 등 공약 내용들은 장사하려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사안이지,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시장 발전을 위해 새 사업을 하려고 해도 상인회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정부의 체계적인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시장이 처한 어려움은 제각각이다. 전국 1500여곳에서 33만여명의 상인들이 일한다. 지역경제의 실핏줄이자 문화와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전통시장은 대형마트 확산과 소비형태의 변화로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 자가·임차 점포 비율 등 소유구조도 복잡해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이를 결집하는 상인회도 미흡하다.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광고홍보·신사업 개발·고객관리 등도 부실하다. 선거때마다 활성화를 약속하는 후보는 많지만, 약속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사업에 참여했던 사회적기업 ‘이음’의 양소영씨는 “전통시장의 어려움이 시장마다 너무 다르다. 구체적 실태조사를 통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활성화하려면 정부 지원, 상인들의 변화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통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도 거의 없고,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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