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수 해에 매출이 뛰는 오리온 포카칩. 오리온 제공
‘비 오는 날엔 막걸리가 잘 팔린다.’
누구나 들어봤던 얘기다. 실제 대형마트들의 집계를 보면, 장마철에는 평소 대비 막걸리 매출이 50~100% 가량 는다. 비 오는 날엔 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전과 궁합이 잘 맞는 막걸리 판매량도 덩달아 뛰는 것이다. 이처럼 유통업계엔 호황을 예견하는 다양한 ‘시그널’들이 있다. 속설에 그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는 업계에서도 나름 ‘일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백화점들은 건물 2~3층에 포진해 있는 여성 부티크 의류의 매출을 눈여겨본다. 보통 디자이너의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하는 부티크 의류는 경기에 민감하다. 대중적인 브랜드보다 가격도 비쌀 뿐만 아니라, 단골 위주로 매장이 운영되기 때문이다. 여성 부티크 의류 매출 상승은 이른바 ‘큰손’들이 백화점을 찾는 시그널이 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부티크 의류 구매자들의 경우 자신의 옷만 사고 쇼핑을 끝내지 않는다. 남편이나 아이들의 옷을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백화점에서 밥도 먹고 장도 보면서 전반적인 매출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날씨는 업체들이 가장 주목하는 시그널이다. 지난해 한국을 휩쓸었던 롱패딩 대란은 가을부터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이라는 게 의류 업계 쪽 분석이다. 지난해엔 한강이 12월15일에 얼었다. 이는 71년 만에 가장 빠른 것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에프엔씨(FnC)부문에 따르면, 지난해 롱패딩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800% 이상 늘었다.
옷차림 변화는 또하나의 호황 시그널이 된다. 비만 전문 병원들은 겨우내 거리를 활보했던 검은 스타킹이 사라지면 호황이 시작됐다고 본다. 특히 연주황(살구색) 스타킹이 거리에서 보이면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365엠씨(mc)병원 양민희 홍보실장은 “거리에서 연주황 스타킹 신은 사람이 보이면 호황이라는 업계 소문이 있는데, 실제 매출 추이를 보면 신빙성이 있다”고 말했다.
상식을 벗어난 시그널도 있다. 날씨가 더우면 차가운 음료가 잘 팔린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한여름에 뜨거운 음료 매출이, 한겨울에 차가운 음료 매출이 느는 이상 현상이 나올 때가 있다. 업계는 에어컨과 히터 작동을 시그널로 보고 있다. 투썸플레이스 관계자는 “한여름에 뜨거운 커피가, 한겨울에 차가운 커피 매출이 급상할 때가 있다. 대부분 이 때 건물에서 냉·난방기 작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화장품 업계는 주요 제품보다 주변 제품 판매량에 민감하다. 기본적인 로션과 스킨이 아닌 입욕제나 에센스 같은 부가 화장품 매출이 늘어나면 호황이 시작됐다고 본다. 이러한 부가 제품은 최근 유행하는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이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가심비’(가격대비 만족 추구하는 소비)같은 소비 성향과 맞닿아 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4월까지 입욕제 매출이 25% 정도 성장했는데, 전반적인 화장품 매출도 늘고 있어 호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그널들이 근거없는 속설일 수도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건 실제 매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자 가운데 ‘감자칩’은 짝수 해에 매출이 크게 는다는 소문이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대형 스포츠 행사가 짝수 해에 열리기 때문이다. 실제 오리온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인천아시아게임이 열렸던 9~10월 사이에 포카칩 매출이 전년 대비 27.6% 상승했고,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이 진행된 시기엔 14% 뛰었다. 오리온 쪽은 “소비자들이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맥주 등을 마시는데 안주인 감자칩 매출도 덩달아 오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미 퇴출된 시그널도 있다. 미사일 발사 등 대북 위기가 고조되면 라면이나 참치캔 등 비상식품이 잘 팔린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북한이 미사일 발사 등을 해도 참치캔 매출엔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