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 ‘치타댄스’ 강좌 수강생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있다. 현소은 기자
지난 2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 강의실에 팝송이 흘러나왔다. 이경숙(73)씨가 힘찬 박수와 함께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까치발을 오른쪽으로 디디며 네박자, 한쪽 발만 앞뒤로 뻗는 갈지자 스텝도 깔끔히 소화했다.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땀 빼려면 한번 더 해야겠죠?” 강사 구지윤(75)씨 주문에 한숨 돌리던 이씨는 다시 영락없는 ‘춤꾼’이 됐다.
지난해 봄 개설된 이 강좌는 ‘치타(치매 타파) 댄스’다. 이 백화점에서 치매를 강좌명에 넣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노화 방지’ 등 문구는 피하고 ‘활력 찾기’ 등 우회적 표현으로 대신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건장하다고 자부하는 고령 소비자가 ‘질병’, ‘노화’ 등 문구를 기피하기 때문”(백화점 관계자)이다.
‘건강한 100세’를 준비하는 고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도 변하고 있다. 이씨는 “처음엔 ‘노화’란 말에 눈길을 돌렸지만, 노인병은 예방이 최선이라고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이 백화점 시니어 강좌는 점포 평균 13개로, 전년 8개 대비 늘었다. 현대백화점의 60살 이상 수강생 비중도 2015년 봄학기 14%에서 올봄 21%로 커졌다.
유통업계는 ‘시니어 시장’에서 동력을 찾고 있다. 저출산 등으로 유아·아동 인구는 감소하는 반면, 고령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통계청 발표 자료를 보면, 2017년 65살 이상 인구가 712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4.2%를 차지했다. 특히 의욕적으로 활동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나심비’(나의 만족을 위한 소비)를 중시하는 20·30대 못지않게 건강 관리와 취미 활동에 지갑을 연다고 보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를 보면, 고령친화산업 규모는 2012년 27조원에서 2020년 7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생활용품업계에서는 성인위생용품에 대한 인식 변화에 주목한다. 유한킴벌리에 따르면, 지난해 요실금 패드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늘었다. 편의점과 이커머스 등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채널로 판로를 다변화하고, 기존보다 10살가량 젊은 50대 배우 윤유선씨를 모델로 내세운 게 효과를 봤다는 평가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요실금 경험을 숨기기보다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는 것”이라고 했다.
식품업계에서는 케어푸드 상품군을 넓히고 있다. 현대그린푸드가 연화식(씹고 삼키기 편한 음식) 상품에 힘주는 데 이어 신세계푸드도 가세했다. 씨제이(CJ)제일제당은 노인 1인 가구 비중이 느는 점에 착안해 올해 가정간편식 키워드로 ‘시니어’를 꼽고, 여성 갱년기 건기식 브랜드도 강화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미세시장을 겨냥할수록 소비자 반응도 뚜렷한 편”이라고 했다.
다만 고령인구는 비교적 정보 수집력이 약한 만큼,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피해 사례도 늘어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60살 이상 소비자의 상담 건수는 2014년 3만4102건에서 2018년 7만7588건으로 급증했다. 배순영 소비자시장연구팀장은 “아직도 고령세대에선 상담이나 피해 구제 신청은 저조한 편”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맞춤형 케어 및 피해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은 무분별한 마케팅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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