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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10년 넘게 아줌마·여사님으로 불리다 과장 됐어요”

등록 2019-05-13 15:36수정 2019-05-13 20:34

과장 승진한 씨제이 ‘명장’ 판촉사원
박금례·윤의순·손다숙·전원희씨 인터뷰
“무인계산대 들어올 때마다 한숨이지만
눈맞춤·수다는 아직 기계가 못하는 것
몸이 기억하는 노하우로 승부 볼 터”
2018~19년 씨제이엠디원 과장으로 승진한 판촉사원. 왼쪽부터 윤의순씨, 전원희씨, 박금례씨, 손다숙씨. 현소은 기자
2018~19년 씨제이엠디원 과장으로 승진한 판촉사원. 왼쪽부터 윤의순씨, 전원희씨, 박금례씨, 손다숙씨. 현소은 기자
박금례(53)씨는 지난 2016년 6개월 동안 백화점 사무실로 ‘조기출근’했다. 백화점 직원도 아닌 그는 사무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찌푸린 얼굴과 핀잔을 마주해야 했다. 냄새가 난다거나 왜 김치에 목숨을 거냐는 것이었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고 하죠. 저는 40번쯤 찍었어요.” 박씨의 끈기로 백화점 진열대 한 편에 ‘김치’가 들어섰다. 2016년 씨제이(CJ)제일제당이 시장에 내놓은 김치였다. 이 제품은 이후 1년 만에 이 매장 김치 매출의 90%까지 차지하게 됐다.

지난 9일 서울 중구 씨제이제일제당 본사에서 씨제이엠디원(씨제이제일제당 100% 자회사) 소속 판촉사원 박씨와 윤의순(53)·손다숙(50)·전원희(47)씨를 만났다. 높은 판매 실적으로 2016~18년 사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베테랑들이다. 마트와 백화점 등이 활동무대인 이들은 입모아 ‘씨제이의 얼굴’이라고 자부했다. “얼마나 발주할지, 누가 ‘황금구역’(눈높이 위치 진열대로, 매출이 가장 높은 편)이나 중앙동선(주된 구매 동선)을 차지할지, 할인행사를 어디서 진행할지… 다 저희 손끝에 달렸죠.”(윤씨)

이들은 ‘승부사’로 통한다. 쇼핑카트에 경쟁사 제품을 담아둔 이들의 발길을 계산대 앞에서 돌려세우기거나, 진열대 한칸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마트 앞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고객 관리 노하우도 각양각색이다. 김장철 경기 수원의 한 마트에는 윤씨의 ‘전매특허’ 판촉노래가 울려 퍼진다. “날씬한 열무김치~ 옆으로 옆으로 가지 마세요~” 스마트폰 게임을 즐기는 전씨는 고객에게 ‘하트 아이템’을 보내며 친밀감을 쌓았다. 휴대전화에는 소비자 특성을 담은 메모가 300개쯤 있다. ‘강아지 있는 손님’, ‘커피 주신 고객님’… 한번 말문을 튼 손님은 잊지 않는 게 철칙이다. 고객에게 자연스레 다가가기 위해 장바구니를 면밀히 관찰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야채가 많으면 스팸을 넣어서 부대찌개를 만들기를 권하는 식이죠. 장바구니는 ‘컨닝페이퍼’예요.”(윤씨)

이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반응은 고스란히 제품 개발을 위한 자양분이 된다. 판촉사원 누리집을 통해 전한 ‘타사 용기 디자인이 고객 눈길을 끈다’, ‘포장에 성분이나 용량 표시가 크게 들어가야 한다’ 등 이들이 전한 현장의 소리가 제품 리뉴얼 때 반영됐다고 한다.

두달마다 성과급이 주어지긴 하지만, 낡은 ‘사원’ 명함만큼은 10여년간 그대로였다. 14년 장수사원으로 꼽히는 손씨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명장/과장’ 문구가 더해진 것은 지난 4월. “영업총괄 부장님이 전화로 ‘손다숙 과장님이세요?’ 하더군요. 처음에는 ‘보이스 피싱’인 줄 알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며 끊어버렸죠.” 이 회사는 판촉사원 성과 보상 차원에서 지난해 과장 직제를 처음 도입했고, 2년간 2130명 사원 가운데 13명(0.6%)을 승진시켰다. 판매실적 등에 따른 성과급 외에 직급에 따른 연봉 인상률이 적용된다. 손씨보다 한해 앞서 승진한 윤씨와 전씨는 영업 현장에서 시선이 달라졌다고 했다. “14년간 그저 ‘아줌마’, ‘여사님’으로 불리다가 처음 ‘과장님’ 소리 들었죠.”(윤씨)

직함의 무게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이젠 매출이 오르면 ‘과장이니까’, 떨어지면 ‘과장인데도’라는 말이 나오니까요. 부담 백배죠.” 손씨는 몇주 전에도 시원찮은 김치 매출 탓에 계단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과장’ 직함을 단 직후였다. 눈물을 훔친 손씨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고객들을 찾아 나섰고, 끝내 타사의 2배 가까운 매출을 냈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데 이어 과장 직책까지 거머쥐었지만, 이들의 꿈은 더 크다. 윤씨는 “‘명장 중 명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시장 점유율이 낮은 회사 제품 매출을 역전시키며 ‘땅따먹기의 명장’이라는 별명을 얻은 박씨도 아직 부진한 달걀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란다. 전씨는 ‘명장의 노하우’로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고객 발길을 되돌리겠다고 했다. “무인계산대 같은 게 들어올 때마다 한숨이죠. 하지만 눈맞춤이나 수다는 아직 기계가 못하는 거잖아요. 몸이 기억하는 노하우로 끝까지 일할 겁니다.” 전씨가 힘줘 말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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