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가슴에 못 박은 사기꾼 한둘이 아니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33화 탈모

“그동안 대머리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사기꾼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1996년) ‘기적의 발모제’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검찰 조사 결과 발모효과를 선전한 비디오테이프는 대머리가 아닌 사람의 머리카락을 몇 개만 남기고 잘라낸 뒤 남겨둔 머리카락이 마치 발모제를 발라서 난 것처럼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1997년 1월23일치 기사다. 현대를 사는 누군들 탈모에서 자유로우랴. <한겨레>와 <한겨레21>의 옛 기사를 뒤져 탈모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보았다. 해설 김태권

탈모 악화시킨 군생활 스트레스
법원도 인정해 국가유공자로
다행히 군 전역 후 발모 시작

끊이지 않던 탈모치료제 광고
중국산 탈모약이 주목받기도
아직 치료법은 오지 않았다

“탈모 관련 기사를 ‘명’ 받았다. 왜냐고? 편집장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았다. <한겨레21> 기자들 가운데 머리가 가장 많이 빠졌다는 억울한 이유를.” 2008년 12월 <한겨레21>에 실린 어느 기자의 기사다. 윤운식 기자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탈모는 사회문제다. 1990년대에는 직장인들이 ‘스트레스성 탈모’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났다. 그런데 외환위기 사태 이후로는 구직자와 학생까지 탈모에 시달린다는 기사가 자주 실린다. “구직자 절반 이상이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소화불량이나 탈모 등 ‘취업병’에 시달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03년 1월 기사다. 2009년 이후에는 여성 탈모 문제도 기사로 등장한다. 한국 사회에 사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하다.

그런데 스트레스가 탈모의 ‘의학적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형수가 자신의 처형 일자를 알고 난 뒤 머리가 모두 빠졌다는 사례가 보고된 적은 있지만, 수험생이 받는 정도의 스트레스가 탈모를 일으킨다는 것은 그 대조군과의 비교가 없는 상태에서는” 잘라 말하기 어렵다는 전문가 견해가 1994년 8월에 실렸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나의 탈모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가려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1991년 11월 <한겨레>에는 딱한 사연이 소개되었다. “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머리털이 한주먹씩 빠져 귀국한 최씨”는 “노동부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아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부 자문의사가 “탈모는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보상을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회사 쪽은 한술 더 떠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귀국했다는 이유로 항공료 150만원을 반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1991년 11월10일치 <한겨레>에는 “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에서 유리솜 작업을 하다 머리털이 마구 빠져버리는 ‘범발성 탈모증’ 진단을 받고 귀국한 최준씨”의 사연이 실렸다. “날마다 한움큼씩 빠지는 머리칼을 들어 보이는 모습”을 이정우 기자가 찍었다. 책임지지 않으려고 발뺌한 노동부와 회사는 지금 봐도 밉상이다.

2009년 7월 <한겨레>에는 탈모 산업이 호황이라는 기사가 났다. 기사 제목은 ‘불황 속에서 탈모산업은 ‘빛나리’’였다. “경기가 침체되면 스트레스가 늘고 탈모도 심해진다. 탈모 산업은 스트레스를 먹고 산다.” 홍종길 기자가 만든 민머리에 싹이 돋는 그래픽이 함께 실렸다.

이 문제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2003년 5월에 입대한 박아무개씨는 입대한 지 2년 만에 (탈모가 너무 심해져) 의병제대했다.” 4년이 지나 2007년 9월에 법원은 “군 생활의 스트레스가 탈모증의 원인은 아니지만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박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다. 군 생활이 탈모의 원인이라고 본 근거가 “군 전역 이후 발모가 시작돼 현재는 탈모증이 상당 부분 회복되었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제대 후에도 머리가 다시 나지 않는 사람은 곱절로 억울할 일 아닐까.

2009년 2월에는 ㄱ씨 사건의 판결이 났다. 전역 직전인 2004년 말에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으나 “훈련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심한 탈모를 겪었다. 그런데 ㄱ씨는 전역 후에도 머리가 나지 않았다. 앞서 박씨와 다른 점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재판부는 “전역 후 증상에 호전이 없다고 해서 탈모와 군 생활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1988년 9월17일치 <한겨레> 지면에는 전두환을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박용식의 사연이 실렸다. 2013년에 영화를 촬영하던 중 패혈증으로 세상을 떴다. <겨울왕국> 안나 공주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 박지윤이 그의 딸이다. 2014년 2월 <나들>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성실한 가장’이었다고 회고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탈모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도 많다. 탤런트 박용식의 사연을 기억하시는지? 머리숱 없는 생김새가 전두환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하나로,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후 한동안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못했다. 인터뷰 제목은 ‘7년간 모자쓰고 기름장사 했어요/ 전두환씨 닮아 수난받은 연기자 박용식씨’였다.

그의 경우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머리숱 없는 사람은 크고 작은 차별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대머리’라는 말을 써도 될까 역시 고민거리다. ‘대머리여, 이젠 안녕?’이라는 1997년 1월의 기사 제목을 보면, 저때는 ‘대머리’라는 말이 문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졌다. 2008년에 실린 ‘우리말 논술’ 칼럼은 “살색 대신 살구색, 장애자 대신 장애인”처럼 “소수자 집단의 인권을 고려하는 표현”에 대해 다루었다. 그래놓고는 글 끄트머리에 “‘대머리’를 ‘탈모인’으로 부르자는 주장”이 여기 해당하겠느냐 아니냐 질문을 슬며시 들이민다.

2011년 3월의 <한겨레21> 기사는 항암치료 환자의 사연을 다루며 ‘대머리’ 대신 ‘민머리’라는 조심하는 말을 썼다. 2013년 1월에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라디오스타>가 ‘민머리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전파를 탔다. 홍석천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민머리 사람들도 차별받거든요. (그런데 오늘 게스트로 나온 민머리) 네 사람 사이에 (머리숱 많은 사람 한 사람이) 오면 기분 이상할걸요?” “그럼 내가 소수가 되는 거야? 차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차별당하는 건 싫어할 것”이라고 김국진이 받았다. 민머리의 경우에 빗대 성소수자가 받는 차별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낸 것이다. 오해 마시길. 나는 ‘대머리’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늘 고민하는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온라인게임 채팅창에 상대방을 “대머리”라며 비난하면 명예훼손일까, 아닐까? “‘대머리’는 표준어다, 경멸이나 비하의 뜻이 없다”며 1심은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대머리’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며 유죄로 봤다. 2011년 7월 기사에 실린 김영훈 기자의 일러스트. 그런데 몇달 후 대법원은 다시 무죄로 판단했다.

2013년 1월 <라디오스타> ‘민머리 특집’에 나와 홍석천이 한 이야기가 <한겨레>에 다시 기사로 났다. “그는 커밍아웃 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탈모가 됐다고 했다. ‘죽어라’는 욕도 들었다 했다.” 2010년에 박미향 기자가 촬영했으나 지면에 실리지 않은 사진을 찾아 이번에 공개한다.

탈모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한겨레>에는 “기적의 발모제”와 “궁극의 치료법” 기사가 끊이지 않고 실렸다. 옛날에는 ‘중국산 탈모약’이 주목받기도 했다.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를 보러 온 한국 관광객들이 경기 참관은 뒤로 미룬 채 유명 약점을 휩쓸고 다니며” 한약품과 ‘대머리 치료제’를 사재기했다고 1990년 9월에 기사가 났다. 현재 과학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것은 프로페시아 계열의 약이 전부다.

가발도 전통적인 해결 방법이다. 한때 한국은 가발을 수출하던 나라였다. 1979년의 와이에이치(YH) 사건도 가발공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에는 가발과 소변이 상위에 올라 있었다.” 2013년 6월의 기사다. 요즘은 ‘머리카락 기부’에 관한 기사가 때때로 실린다. 소아암 환자의 가발을 만들어달라며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한 순경 장지영(2017년 10월), 프로야구 선수 김광현(2018년 3월)과 김원중(2020년 12월), 유치원생 최지우(2018년 6월), 목포항도여자중학교 선생님과 학생들(2019년 11월), 양주시 남면초등학교의 장씨 세 자매(2021년 1월)의 기사를 보면 뭉클하다. 각박해지는 한편 따뜻함도 남은 한국 사회다.

획기적인 발모제가 개발되었다는 1997년 1월의 기사.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책임도 못 질 일을 발표했겠느냐. 내부에서는 노벨상감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라고 관계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레>는 “대머리에게 이처럼 기쁜 소식이 있을까. 그럼에도 미심쩍다”며 반신반의했다. 수석연구원 서아무개 박사를 이혜정 기자가 찍었다.

소아암 환자의 가발을 만드는 일에 쓰라며 당시 에스케이(SK) 투수였던 김광현이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기증한 일이 2018년 3월에 기사로 실렸다. “팬 여러분도 소아암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면 좋겠다.” 2011년에 이종근 기자가 찍은 김광현의 사진이다. 2020년 12월에는 롯데 선수 김원중이 머리카락을 기증했다.

2001년 7월 <한겨레21>에 “탈모증을 ‘천형’으로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머리를 치료하는 일”뿐 아니라 탈모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다”며, ‘대머리’라는 단어를 계속 써야 하는지도 기사는 묻는다. 이러한 가발 가게도 20년 전에는 익숙하던 모습이다. 박승화 기자의 사진.

머리에 좋다는 다시마엑기스를 소개하는 광고가 1996년 8월 <한겨레21>에 실렸다. 내용을 읽어보니 가운데 숱 없는 캐리커처와 왼쪽 위 숱 많은 사진은 같은 인물이다. 나름 ‘비포’와 ‘애프터’인 셈인데, 여느 광고처럼 ‘애프터’를 강조하는 대신 ‘비포’를 “대머리!”라는 글자와 크게 배치한 도발적인 구성이 흥미롭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바르거나 먹는 발모제가 아닙니다. 인체에 이로운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특수 전자 빗입니다. 파워콤은 발모 기능뿐만 아니라 … 두뇌와 뇌세포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여 기억력 회복, 집중력 향상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1996년 7월에 <한겨레21>에 실린 광고다. 그때 “권장소비자가 45만원”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995년 1월 <한겨레21>에 실린 광고. “본격 탈모전문 헤어클리닉”으로 소개된 애드아트는 맞춤형 고급가발을 서비스하는 업체로, 이른바 ‘브랜드 가발’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고 하단에 나란히 실린 네장의 사진을, 조명과 표정을 비교하며 천천히 뜯어보면 흥미롭다.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윈 프로젝트’는 “각국에서 남성형 탈모증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 한쌍씩을 선발해 1년 동안 한쪽 쌍둥이에게만 치료를 시행”하는 외국 제약회사의 실험이라고 한다. 2000년 9월 <한겨레>에는 이 실험에 참가할 사람을 모은다는 기사가 났다. 일곱쌍의 형제가 모였다. “이재우, 이상우 형제가 뽑혔다”는 기사가 같은 해 10월에 실렸다.

▶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

▶ 팩트스토리는 전문직·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사진, 기사, 지면 이미지 등의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관련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 사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시즌3인 25~36화는 주로 기업·기업인 이야기로 꾸몄습니다. 주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