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전체 맥주시장 점유율의 3%.
국산 수제맥주의 현주소다. 미미한 숫자처럼 보이지만, ‘국산 맥주는 거기서 거기’라는 편견을 깨트린 ‘메기’ 역할은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6년 점유율 0.7%, 2018년에도 1.4%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2년 만에 전체 시장은 2배가량 커졌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지난 1년, 국산 수제맥주 시장은 희비가 엇갈렸다. 주세법 등 규제완화에다 ‘홈술’ 인기로 주로 편의점에서 파는 캔 수제맥주 시장은 커졌다. 반면 캔으로 만들지 않고 술집에 생맥주 형태로 납품하던 소규모 수제맥주 양조장은 외려 타격이 컸다.
국내 대표 수제맥주 기업으로 꼽히는 제주맥주는 오는 5월께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지난해 매출이 320억원으로, 2019년(135억원)보다 2배 넘게 성장했다. 500㎖ 캔으로 환산하면 전체 출고량은 약 2천만캔에 이른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막 확산되던 지난해 3월, 전 제품이 국내 5대 편의점(GS25·씨유·세븐일레븐·미니스톱·이마트24)에 입점한 영향이 컸다. 이후 이어진 ‘홈술’ 열풍에 코로나 수혜를 입은 기업 중 한 곳이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편의점에서 수제맥주 판매량은 지에스25 445%, 씨유 498.4%, 세븐일레븐 550.6%, 이마트24 210% 등 일제히 폭증했다. 특히 수제맥주 업체와 편의점이 손잡고 만든 ‘곰표 맥주’(씨유), ‘유동골뱅이 맥주’(세븐일레븐) 등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른바 제조사와 함께 만든 ‘굿즈(기념품) 맥주’들이 수제맥주에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를 수제맥주 시장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세븐일레븐은 국산맥주 매출 중 수제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2018년엔 2.5%에 불과했지만, 2019년 7.5%, 2020년 10.9%로 늘어나더니 올해(지난 1월~3월 9일)는 12.1%까지 올라선 것으로 집계했다.
진주햄이 2015년 인수한 수제맥주 브랜드 ‘카브루’도 지난해 매출이 101억원으로, 2019년(78억원)과 견줘 약 30% 증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인 홈술 트렌드에 맞춰 아시아 홈술 시장을 공략한 덕을 봤다. 카브루 쪽은 “올해 1~2월 수출 물량만 지난해 전체 수출액의 약 2배”라고 설명했다. 카브루는 편의점 지에스25와 협업한 맥주 ‘경복궁’과 ‘남산’ 등으로 유명하다. 자체 제품 ‘구미호 맥주’로 기존 수출 업체인 대만과 몽골 등을 비롯해 국외 판로를 지속적으로 개척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코로나는 수제맥주 업계에 그늘도 드리웠다. 주로 연매출 10억원 이하의, 캔입을 하지 않는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 중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서 국세청 면허를 받은 수제맥주(소규모 맥주 주류) 양조장은 160곳에 이른다. 경기 가평에 양조장을 두고 운영하는 ㅋ업체의 한 이사는 <한겨레>에 “2015년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했지만, 지난해 술집 영업이 어렵게 되면서 우리 같은 양조장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ㅋ업체는 이 양조장의 맥주를 원하는 수제맥주 펍 등에 ‘케그’(생맥주를 뽑을 수 있는 대용량 맥주통) 형태로 납품해왔다. 이 이사는 “납품하는 매장이 120곳가량 됐는데, 망한 집도 많고 미수금을 못받고 있다”며 “사실상 매출이 90% 줄어서 대출을 받아 버티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던 작은 펍도 6년 만에 문을 닫았다.
경기 양주에 양조장을 둔 ㅎ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4년에 맥주를 좋아하는 세 명이 뭉쳐 이끌어온 양조장인데, 세 사람 모두 7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중 한 대표는 “대표를 뺀 직원 4명의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를 위해 대표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가족 도움이나 대출 등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캔맥주 형태로 팔려면 관련 장치 투자금액이 최소 수천만원이 필요하다”며 “소규모 업체라 코로나19 이전까지 생산한 맥주를 100% 펍에 납품해왔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지난해 말부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동식 캔입장치를 사들여 일부 펍이나 수제맥주 전용 ‘보틀샵’에 판매 중이다. 하지만 과거 오프라인 영업장에 납품한 양이 절대적이라, “코로나 이후 매출이 70~80% 줄어든 뒤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이런 이유로 수제맥주 업계의 이익단체인 수제맥주협회는 지난달 “수제맥주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음식점이나 맥주전문점 등의 영업제한으로 판로를 잃은 업체들이 존폐 위기에 놓이자 정부에 이같은 대책을 요구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 등의 국가가 소규모 맥주 업체들에 한해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선례를 강조했다.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 등 대형 유통채널에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업체는 극히 일부”라며 “일정 매출 이하의 업체들이 제한적으로 온라인으로 팔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관련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에서는 세금과 청소년 음주 우려 등의 문제로 활발히 논의하지는 않고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