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맥주’로 폄하되던 ‘논(non)알코올 맥주’(무알코올 맥주)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글로벌 주류사까지 앞다퉈 진출하는 등 주류 업계의 각축전이 활발하다.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다. 글로벌 맥주 기업 하이네켄이 20일 ‘하이네켄 0.0’을 국내에 출시했다. 하이네켄 0.0은 전 세계 무알코올 맥주 점유율 1위(17%)에 오른 제품이다. 전 세계 추세대로 국내도 무알코올 맥주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하이네켄이 출사표를 던진 모양새다. 현재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1위는 하이트진로의 ‘하이트제로0.00’로, 약 60%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은 약 2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전체 맥주 시장 규모(약 3조원) 에 견주면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하이트진로가 국내 최초 무알코올 맥주를 출시했을 당시 2012년께 시장 규모는 13억원 수준이었으나 4년 뒤인 2016년엔 100억원 내외까지 불어났다. 다시 4년 여 만에 두배가량 시장 규모가 더 커진 셈이다.
업계에선 이런 성장 속도가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지난해 6월 칭따오가 수입 맥주 중 처음으로 ‘칭따오 논알콜릭’을 국내 출시하고, 뒤이어 지난 2월 오비맥주도 ‘카스 0.0’을 내놓은 것도 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무알코올 맥주’로 통칭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실제 ‘제로’인 경우는 드물다. 국내 주세법은 알코올 함량이 1% 미만이면 무알코올 음료로 분류한다. 알코올이 전혀 없는 ‘무알코올’과 1% 미만 알코올이 들어간 ‘비알코올’로 나뉜다. 하이트제로는 ‘무알코올’이지만, 칭따오 논알콜릭의 도수는 0.05%, 하이네켄제로는 0.03% 수준이다. 다만 도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성인용 음료로 분류돼 청소년은 구입할 수 없다.
무알코올 맥주의 인기 요인은 우선 달라진 ‘맛’이 꼽힌다. 과거엔 밍밍한 맥주 맛이었다면, 요즘 제품은 실제 맥주에 가까운 맛을 구현한다. 무알코올 맥주는 대체로 일반 맥주와 똑같이 만든 뒤, 발효 이후 발생하는 알코올을 마지막에 제거하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일반 라거 맥주보다 몰트를 두 배 이상 넣어 풍미를 높인 칭따오 논알콜릭처럼 일부 업체들은 추가 재료를 섞기도 한다. 맥주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필라이트 등 도수 낮은 발포주 맛에 익숙해지면서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장벽이 내려간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 중심으로 형성된 ‘저도주’ 선호가 ‘무도주’로도 이어지는 흐름도 무알코올 맥주 수요 증가의 또다른 배경이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 조사기업인 유로모니터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자 중 63%는 장기적으로 건강 위험을 피하거나 더 건강한 느낌을 받기 위해 술을 덜 마신다고 응답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술을 꼭 마셔야 한다면 낮은 도수의 술을, 무알코올 맥주가 있다면 그 제품을 선택할 공산이 높다고 볼 수 있는 조사 결과다.
무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보다 칼로리도 훨씬 낮아 ‘다이어터’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한 예로 하이네켄 오리지널은 100㎖당 42㎉이지만, 하이네켄 제로는 21㎉다.
온라인 주문 활성화도 무알코올 맥주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칭따오 논알콜릭의 올해 1분기 온라인 판매량은 직전 분기와 견줘 97% 증가했다. 칭따오 관계자는 “홈술족이 늘어나면서 무알코올 맥주 수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건강을 생각하는 소비가 보편화하면서 무알코올 주류 시장의 성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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