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는 그만, ‘있는 그대로’ 즐기련다
공주샵·시가렛카페 등 ‘삶의 청량제’ 공간으로
며칠째 이어지는 야근과 외근. 그 생활의 끝에 남은 건 낯설어 보일 정도로 지친 얼굴과 퉁퉁 부은 발, 굳어버린 머리다. 삶에 청량제가 필요한 당신,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바로 옆에 있었던 파랑새처럼, 일탈의 기회도 당신 가까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다. 때로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보이기 어려운 취향도 있다.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흡연이 그렇고, 분홍색과 프릴로 점철된 공주 취향도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공적으로 드러내기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따른다. 하지만 마음 놓고 취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폭넓은 대중적 취향에 영합하던 기존의 공간 대신, 소수이지만 나의 취향을 맘껏 즐길 수 있는 곳에서 작은 일탈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30분간 공주가 되어본다
이대역 3번 출구 부근에 위치한 '프린세스 다이어리'. 이곳은 심하게 ‘공주’스럽다. 분홍색 벽에 샹들리에, 콘솔 등 인테리어 아이템 하나하나에서 ‘공주 분위기’가 배어난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카페 한 켠에 마련된 의상실과 스튜디오. 걸려 있는 옷들의 80%가 웨딩드레스, 나머지는 중국, 베트남 등의 전통복장과 남성용 턱시도이다. 이 카페는 전체가 하나의 스튜디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웨딩숍을 운영하다가 2004년부터 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임시내 사장은 여기를 “행복을 입는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할머니에서 손녀까지 3대가 오셔서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어 보시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사정상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셨던 분들이나 한복을 입고 결혼식을 올리셨던 분들의 방문도 잦은 편이죠. 웨딩드레스 하나로 그분들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해져요.” 드레스뿐 아니라 왕관, 부케, 면사포 등 다양하고 독특한 액세서리까지 함께 제공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코디를 지원해준다. 이곳에 있는 웨딩드레스의 상당량이 임 사장 자신의 작품이다. 범상치 않았던 인테리어 역시 임 사장의 작품이란다.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해 사진 촬영을 즐기던 김인정(25) 씨는 비드가 많이 달린 풍성한 라인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재미있는 일이 필요할 때 방문하면 확실하게 기분전환할 수 있어 자주 와요. 여기서 찍은 사진을 나중에 봐도 그 기분이 다시 살아나구요.” 김지연(27) 씨는 “여기서 찍은 사진을 개인홈피에 올렸다가 결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경험도 있다”며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아 이따금씩 방문 한다”고 말했다. 프린세스 다이어리에서는 3천 원에서 2만 원 선의 대여료로 30분간 공주가 되어볼 수 있다. 맨발로 드러누워 즐기는 인도의 자유 홍대 앞 극동방송국 방면 세븐일레븐 골목에 위치한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은 이름만큼이나 독특하다. 우선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데다 흔하게 기대할 만한 소파가 없다. 차는 상 위에서, 바닥에는 카페트와 쿠션이 깔려 있다. 공간 전체에 흐르는 향 냄새도 독특하다. “나도 이곳이 카페인지, 바인지, 클럽인지 모르겠어요. 다만 편하게 즐기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곳을 운영하는 비눌 사장의 말처럼 여기선 누워 있든, 앉아 있든, 춤을 추든 자기 마음이다. 한쪽에서는 그리스, 아프리카의 토속악기를 두들기기도 하고 DJ들이 이국적이면서도 흥겨운 음악을 연신 틀어댄다. 음악도 인도음악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가끔은 심수봉 씨의 노래가 나올 때도 있다. 전적으로 DJ 마음이다. “인도의 석굴사원에서 모티브를 따왔어요. 처음엔 ‘인도’하면 으레 떠올리는 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지금의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에도 만족해요. 저 자신이 변한 것 같아요. 이런 흥겨운 분위기로.” 비눌 사장의 말이다.
웨딩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는 ‘프린센스 다이어리’. 박미향 기자
조수영기자 zsyou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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