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은행들이 소액 예금자들을 푸대접하면서 금융 거래에서조차 양극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코노미21] 디마케팅 확산 ‘공공성 실종’ 심화
수수료·금리혜택, 부자만의 몫
수수료·금리혜택, 부자만의 몫
최근 금융권 경영전략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너나없이 차별화·세분화 전략을 내세우며, 우량고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돈 되는 고객을 위해서라면 출혈도 마다하지 않는다. PB센터에서는 금리·수수료 혜택, 문화 이벤트 등 각종 우대 서비스가 연일 계속된다.
그러나 은행 영업의 중추를 담당해 왔던 서민들에 대한 문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민들은 지점마다 들어찬 PB, VIP룸에 밀려 구석에 마련된 창구에서 길게 줄을 늘어서야 하는 입장이다. 수수료 부담은 돈 없는 사람들의 몫이 된 지 오래고, 금리 혜택도 불평등하기만 하다. 서민금융의 산실이라던 은행권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소액예금자 금리 혜택 ‘전무’
국내 금융사들이 질적 성장을 위해 최근 수 년 간 집중한 경영 트렌드는 ‘고객 세분화, 타깃 마케팅’이다. 고객들을 이익기여도에 따라 10여개 이상 등급으로 분류하고 차별화된 영업에 나서기 위해서다. 고객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금융사 역시 효율적으로 수익원들을 관리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게 은행 측의 설명.
그러나 문제는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고객이 극소수라는 점이다. 은행 고객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액 자산가들은 특화 서비스는커녕 화려하게 치장된 VIP, PB룸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일쑤다.
실제로 대다수 시중은행들은 금융자산 규모 1억 원 이상이면 우량고객으로 분류하고, 별도 관리에 들어간다. 5억, 10억, 50억 등 고객들의 자산액이 늘어날수록 누릴 수 있는 혜택도 많아진다. 자산관리는 기본이고 부동산, 상속 등 세금에 대한 자문 서비스도 제공된다.
반면 소액 자산가들은 대출 한번 받으려면 각종 서류를 들고 몇 번이나 창구를 방문해야 한다. 서민층이 주로 이용하는 MMDA(수시입출금식 예금)의 금리는 오를 생각도 하지 않는다. 5% 이상의 고금리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대부분 가입최소 금액이 500~1천만 원 이상이다. 주가지수 연동예금(ELD)과 정기예금을 묶어 파는 복합상품도 초기가입 비용이 만만찮은 수준이어서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실제로 시중은행에서 3천만 원 이하의 수시입출금 예금에 가입한 고객들은 금리 인상의 혜택을 대부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수 차례 콜금리가 인상됐지만, 고액 예금자가 아닌 경우, 금리 인상분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시중은행에서는 소액 예금자의 금리를 도리어 내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 은행은 콜금리가 3.25%의 최저점을 찍고 처음으로 인상된 지난해 10월, 개인고객 MMDA상품에 대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러나 실상은 5천만 원 이상 고객들만 대상이 됐을 뿐 3천만 원 미만은0.1%P~0.3%P 인하했다.
소액 예금자들의 경우 이자액이 워낙 적어 금리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이 은행 3천만 원 이하 예금의 금리는 아직도 0.1~0.9%에 불과하다.
“요구불 예금의 경우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어 금리 민감도가 강하지 않고 고객 1인당 미치는 영향도 미미한 수준이다” “금리 현실화 차원에서 조정했을 뿐” 이라는 게 은행 담당자의 해명이다. 그러나 은행권 전체가 금리 인상에 나선 상황에서 슬그머니 끼워넣기 식으로 소액 예금자에 대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일종의 고객 기만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혜택이 아무리 소액이라도 엄연한 소비자의 권리”라며 “휴면예금까지 찾아주는 상황에서 이 같은 행위는 고객 돈을 횡령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디마케팅(de-marketing, 무수익 고객에 대한 정리)은 경영전략으로 구체화되기까지 한다. 국내 최대 금융사이자 서민은행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은행의 경우를 보자. 국민은행은 고객 수만 2천500만 명에 이르는, 말 그대로 ‘국민의 은행’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서민금융과 멀어진 것은 이미 오래됐다. 국민은행은 강정원 행장 취임 후 첫 경영전략 회의에서 디마케팅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민은행은 전체 고객 중 약 670만 명의 고객을 수익이 되지 않는 비우량 고객으로 분류하고 ‘솎아내기’를 통해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30%대에 육박하는 이들의 비중을 내년까지 20%(500만 명)로 낮춘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익기여도가 높은 우량고객들에 대한 보상은 대폭 확대하고 있다. 고객의 이익기여도는 금융자산 규모와 비례한다. 일단 월평균 가구소득 500만 원 이상, 5억 원 이상 주택 소유자 등은 핵심고객(High Value)으로 분류한다. 이중 최근 3개월간 모든 거래실적을 종합해 KB스타클럽 고객으로 선정한다. 이들에게는 수수료 감면과 우대 금리 적용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된다. 은행권의 대출 태도 역시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 은행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기업에 대한 자금 중개기능은 이미 관심 밖의 일이 됐다. 올해 들어 기업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다지만, 이마저도 자산 증대를 위한 자구책일 뿐이다. 여전히 은행권 기업여신은 대기업이나 우량 중소기업 대출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영세하지만 잠재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들은 자금난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주 수익원 중 하나인 예대마진에 대한 시각도 고울 리 없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은행의 대출금리와 수신금리 차이는 5년 사이 1.5배 이상 증가했다. 은행들이 수익을 위해 예대마진 확대에 주력한 결과다. 대출에는 인색한 은행이 이에 따른 이자수익에는 더없이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대출 의무화 실현되나 한편 열린우리당은 최근 은행권의 디마케팅 전략에 제동을 걸며, 공공성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고 있다. 김근태 의장 취임 후 서민 경제 활성화를 주창하며, 민심공략에 나선 것. 그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서민 대출 의무화 방안이다. 은행들이 서민들에게 일정비율의 금융지원을 하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은행의 공공성을 살리자는 취지에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사자인 은행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관치금융 논쟁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동안 진행해온 자체적인 신용평가 방법을 무시하고 대출 비율을 강제할 경우 부실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이유다. 결국 은행 수익 구조의 붕괴로 이어져 이 또한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엄포성 분석도 내놓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공익적 역할은 인정하지만 엄연히 영리기관인 만큼 언제까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다”면서 “영업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여신금융에 대해 강제한다는 것은 명백한 관치금융”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요구불 예금의 경우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어 금리 민감도가 강하지 않고 고객 1인당 미치는 영향도 미미한 수준이다” “금리 현실화 차원에서 조정했을 뿐” 이라는 게 은행 담당자의 해명이다. 그러나 은행권 전체가 금리 인상에 나선 상황에서 슬그머니 끼워넣기 식으로 소액 예금자에 대한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은 일종의 고객 기만행위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 혜택이 아무리 소액이라도 엄연한 소비자의 권리”라며 “휴면예금까지 찾아주는 상황에서 이 같은 행위는 고객 돈을 횡령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디마케팅(de-marketing, 무수익 고객에 대한 정리)은 경영전략으로 구체화되기까지 한다. 국내 최대 금융사이자 서민은행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국민은행의 경우를 보자. 국민은행은 고객 수만 2천500만 명에 이르는, 말 그대로 ‘국민의 은행’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서민금융과 멀어진 것은 이미 오래됐다. 국민은행은 강정원 행장 취임 후 첫 경영전략 회의에서 디마케팅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국민은행은 전체 고객 중 약 670만 명의 고객을 수익이 되지 않는 비우량 고객으로 분류하고 ‘솎아내기’를 통해 비용 감축에 나서고 있다. 국민은행은 30%대에 육박하는 이들의 비중을 내년까지 20%(500만 명)로 낮춘다는 복안이다. 반면 이익기여도가 높은 우량고객들에 대한 보상은 대폭 확대하고 있다. 고객의 이익기여도는 금융자산 규모와 비례한다. 일단 월평균 가구소득 500만 원 이상, 5억 원 이상 주택 소유자 등은 핵심고객(High Value)으로 분류한다. 이중 최근 3개월간 모든 거래실적을 종합해 KB스타클럽 고객으로 선정한다. 이들에게는 수수료 감면과 우대 금리 적용 등 각종 혜택이 제공된다. 은행권의 대출 태도 역시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 은행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기업에 대한 자금 중개기능은 이미 관심 밖의 일이 됐다. 올해 들어 기업대출이 증가 추세에 있다지만, 이마저도 자산 증대를 위한 자구책일 뿐이다. 여전히 은행권 기업여신은 대기업이나 우량 중소기업 대출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영세하지만 잠재력과 성장성을 갖춘 기업들은 자금난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의 주 수익원 중 하나인 예대마진에 대한 시각도 고울 리 없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은행의 대출금리와 수신금리 차이는 5년 사이 1.5배 이상 증가했다. 은행들이 수익을 위해 예대마진 확대에 주력한 결과다. 대출에는 인색한 은행이 이에 따른 이자수익에는 더없이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대출 의무화 실현되나 한편 열린우리당은 최근 은행권의 디마케팅 전략에 제동을 걸며, 공공성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이고 있다. 김근태 의장 취임 후 서민 경제 활성화를 주창하며, 민심공략에 나선 것. 그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서민 대출 의무화 방안이다. 은행들이 서민들에게 일정비율의 금융지원을 하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은행의 공공성을 살리자는 취지에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당사자인 은행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관치금융 논쟁도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동안 진행해온 자체적인 신용평가 방법을 무시하고 대출 비율을 강제할 경우 부실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이유다. 결국 은행 수익 구조의 붕괴로 이어져 이 또한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라는 엄포성 분석도 내놓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공익적 역할은 인정하지만 엄연히 영리기관인 만큼 언제까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다”면서 “영업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여신금융에 대해 강제한다는 것은 명백한 관치금융”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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