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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노 대통령, 한국판 ‘해밀턴 프로젝트’ 꿈꾸나

등록 2006-06-30 14:54

200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섰던 존 케리 상원의원 ⓒEPA
2004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섰던 존 케리 상원의원 ⓒEPA
‘동반성장’과 정책적 유사성에 주목
‘분배와 성장의 균형’ 논리 제공
노무현 대통령은 ‘달’을 가리켰는데 정작 비판자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의 ‘손가락’뿐이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를 둘러싼 최근 논란이 꼭 그런 꼴이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동반성장 전략과 해밀턴 프로젝트의 ‘놀라운’ 정책적 유사성에 주목했지만, 쏟아진 것은 “또다시 양극화 세일즈에 나선다”는 가시 돋친 질책뿐이다. “네덜란드식 모델, 스웨덴식 모델, 프랑스식 모델로 부족해 이번에는 미국식 모델이냐”는 비아냥까지 감수해야 했다. 진지하게 내 뻗은 손가락이 무색할 지경이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지난 4월5일 민간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내놓은 24쪽 분량의 정책구상이다. 먼저 이 프로젝트의 성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민주당 계열로 분류되기 때문에 야당인 민주당의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용 정책구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는 의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이다. 브루킹스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계 경제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당에서 이를 실제로 정책화하려는 시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한 해밀턴 프로젝트는 기본적인 원칙과 정책과제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정책 대안은 미완성으로 남겨두고 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밀턴 프로젝트는 비교적 종합적이고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지만, 민주당 차원에서 정책으로 강력하게 밀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실험적인 정책 구상의 하나로 공개적인 검토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민주당의 공식 정책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것이다.

물론 참여정부의 동반성장 전략과 해밀턴 프로젝트가 상당히 닮은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당면한 미국경제의 난국을 해결하는 기본 원칙으로 ‘폭넓은 계층에 기반한 경제성장이 더 강하고 지속가능하다’ ‘사회안전망과 경제성장은 상호 상승작용을 통해 강화될 수 있다’ ‘할일은 하는 효과적인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등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개념들과 쉽게 구별이 안될 만큼 흡사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있다. 해밀턴 프로젝트의 번역과 해설작업을 총괄하고 있는 문형표 KDI 부장은 “작은 정부, 성장 우선을 내세우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맞서 민주당 계열의 전문가들이 경제비전을 정리해 내놓은 것으로 내용 자체가 분명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폭넓은 성장’은 ‘동반성장’과 통하는 등 많은 개념이 서로 일치한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논쟁거리인 사회안전망과 경제성장의 상호 상승작용에 대해 상당히 치밀한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적절한 사회안정망은 사람들이 일정수준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지적한다.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거나, 자기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들은 바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들이다. 만약 위험 감수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실패에 대한 적절한 보호장치가 없다면, 사람들은 굳이 새로운 모험에 뛰어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위험 감수와 혁신의 감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금융지원, 교육훈련의 기회, 기본적인 의료보장의 혜택을 받는 가정은 그렇지 못한 가정보다 역동적인 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부터 덜 고통을 받게 된다.

적절한 사회안전망은 일시적인 어려움에 빠진 이들 가정들이 더 나은 미래로 재도약할 수 있는 스프링보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사회안전망과 경제성장을 연결하는 세 번째 연결고리다. 적절한 사회안전망은 보호무역주의나 성장을 해칠 수 있는 다른 정책들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완화 시킨다. 신기술과 경쟁의 혜택은 경제 전반에 폭넓게 확산되지만, 특정 산업이나 특정 직군에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개인들은 자연발생적으로 변화에 저항하게 된다.


바로 이때 사회안전망이 전환을 용이하게 하고, 경제전반의 성장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정치적 반발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이쯤 되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반복되어온 분배냐 성장이냐는 소모적인 논쟁도 말끔히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해밀턴 프로젝트는 부시 대통령의 경제정책 기조인 ‘오너십 사회’ 전략을 정면으로 공격한다. 오너십 사회는 자기책임을 강조하며, 개인들이 자신의 힘으로 소유를 늘려 '오너'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부의 간섭이나 지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 환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후를 위해 알아서 저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밀턴 프로젝트는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고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정책이라고 맹공을 퍼붓는다. 해밀턴 프로젝트가 이에 맞서 제시하는 것은 ‘할일은 하는 효과적인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프로젝트의 명칭으로 따온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해밀턴은 “우리는 자유경제를 확신하지만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말을 남긴 인물이다.

전통적 민주당 정책으로의 복귀?

그러면 참여정부와 해밀턴 프 로젝트는 같은 ‘코드’일까? 참여정부의 동반성장 전략은 '한국판' 해밀턴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해밀턴 프로젝트의 바탕에 깔린 기본 노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준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장은 “해밀턴 프로젝트가 던지는 근본적인 메시지는 결국 경제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라며 “분배를 강조할 때도 항상 '성장을 위한 분배'를 이야기한다는 점에 주목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장과 기업 중심으로만 흘러온 공화당 경제정책의 폐해를 공격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 경우에도 분배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팀장은 “해밀턴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는 클린턴 정부 때의 경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은 1990년대 8년 집권 기간 동안 전통적인 민주당의 노선과는 다른 성장지향적인 정책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클린턴 대통령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민주당을 공화당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클린턴 정부의 경제정책을 설계한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해밀턴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반면, 양준석 교수는 해밀턴 프로젝트를 집권 초반 클린턴 정부 때 문제의식로의 복귀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초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후 클린턴의 경제정책은 큰 변화를 겪게 되고, 복지정책도 상당부분 약화된다. 양 교수는 “해밀턴 프로젝트는 민주당이 다시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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