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명품으로 판명난 ‘빈센트 시계’. 명품으로 보기에는 너무 허술해 수사관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 임영무 기자
‘빈센트 앤 코’ 특별전 마련, 사기 도운 셈
포털사이트 ‘지식검색’ 범죄 악용
포털사이트 ‘지식검색’ 범죄 악용
‘가짜 명품 손목시계’ 파문으로 시끄럽다. 중국산(産) 시계가 스위스산 명품 수제시계로 둔갑된 채 판매된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희대의 사기극’에 발끈한 스위스 본사에선 철저한 ‘진상파악’에 나섰다. 국제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위조범 득실 … 백화점 속수무책
사기극의 장본인은 해외교포 이모씨. 그는 중국산 시계를 불과 33만원에 수입해 ‘빈센트’(Vincent)라는 스위스 명품 시계로 속여 최고 3천500만원에 팔았다. 100배 이상의 부당이득을 챙긴 셈이다.
이씨는 ‘치밀’했다. 그가 만든 각본은 ‘완벽’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빈센트 앤 코’(Vincent & Co.)라는 법인을 스위스와 우리나라에 동시 등록했다. 스위스의 ‘빈센트 앤 코’는 유령회사다. 이후 부유층이 거주하고 유명 연예인의 왕래가 잦은 ‘청담동’을 본거지로 삼고 적극 홍보에 나섰다. ‘명품족(族)’의 눈길을 끌 요량으로 ‘로드 숍’(Road shop)’을 연 것은 기본. 누리꾼들이 끊임없이 오고가는 ‘포털 사이트’도 ‘홍보의 장(場)’으로 활용했다. 이씨는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에 “빈센트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남기고 스스로 빈센트의 개관·로드숍의 위치를 알려주는 방법으로 ‘명품족’을 유인했다.
‘럭셔리 잡지’는 그의 ‘홍보도구’로 철저하게 이용됐다. 모 럭셔리 잡지에 실린 기사의 한 토막을 보자.
“…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유명 왕가에 납품하던 시계로 그 희소성과 뛰어난 소장성을 인정받아온 최고의 럭셔리 워치 브랜드인 ‘빈센트 앤 코’ … 작년 국내 런칭 이후 소비자들의 은밀한 사랑을 받아온 ‘빈센트 앤 코’에서 좀 더 대중적인 콘셉트의 어반 토네이도의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인다 …”
인터뷰 내용 대부분은 검증되지 않았거나 가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형백화점까지 홍보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지난 7월14일~21일까지 일주일 간 현대백화점에서 ‘빈센트 특별전’이 개최됐던 것. 그렇다면 가짜 시계의 특별전이 어떻게 대형백화점에서 열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형 백화점에 입점하거나 특별전을 열기 위해선 최소 5~6개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일단 사업계획서와 수입면장을 제출해야 한다. 브랜드 히스토리 · 런칭(Launching) 능력 및 에이전트의 재정상태 · 다른 백화점에 입점 여부 및 특별전 개최 여부 등도 검증받아야 한다. 제법 까다로운 절차다.
‘빈센트 앤 코’는 모든 절차를 ‘무사통과’했다. ‘빈센트 시계’의 진위를 전혀 의심받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현대백화점 조차 ‘빈센트’ 시계가 가짜인 줄 까맣게 몰랐다는 얘기다. 현대백화점 측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김준영 현대백화점 과장은 “수입면장 등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고 특별전 개최를 허가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씨의 준비서면엔 ‘빈틈’이 없었다. 품질보증서·수입면장 모두 가짜임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특히 이씨는 수입면장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제품을 스위스로 가져간 뒤 현지에서 조립해 오는 방법을 썼다. ‘빈센트’ 일부 시계에 ‘수입면장’이 있었던 까닭이다.
현대백화점 김 과장은 “수입면장도 복사본이 아니고 원본을 달라고 했고 상품 리스트도 받아보고 입고된 상품까지 미리 체크를 했음에도 ‘가짜’를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우리도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야 눈치 챘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도 ‘지능범’ 이씨의 치밀한 사기극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의 검증 과정이 미비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고객을 위해 보다 꼼꼼하게 확인했다면 얼마든지 가짜임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빈센트 사기사건’의 경찰 수사기록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린다.
본지가 입수한 경찰진술서에 따르면 ‘빈센트 앤 코’는 홈페이지는 고사하고 제대로 된 사이트조차 없다. ‘빈센트 시계’를 명품으로 볼 수 없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시계를 흔들면 분침과 시침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싸구려 시계’라는 반증이다. 시계의 테두리는 가벼운 충격으로도 쉽게 떨어진다. 시계 줄에 적힌 로고 역시 일정하지 않다.
현대백화점 특별전에 참여했던 ‘빈센트 앤 코’의 내부관계자는 경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현대백화점 행사 시에도 시계버클·시계줄 등이 모두 따로 분리돼 있었다. 분리돼 있는 시계 줄은 ‘싸구려’로 보이는 비닐 안에 있었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 물건들 중에는 아예 로고가 안 찍힌 것들도 있었다. …”
현대백화점이 입점 된 빈센트 시계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는 진술이다.
현대백화점 후속대책 미흡 ‘나몰라라’
그럼에도 현대백화점 측의 대답은 똑같다. 시종일관 ‘어쩔 수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지능범’들이 맘먹고 위조품을 입점하려 하면 ‘속수무책’이라는 볼멘소리만 늘어놓을 뿐이다.
그렇다고 ‘짝퉁’을 구별하는 절차를 강화한 것도 아니다. 모든 절차는 그대로다. 더욱이 ‘빈센트 앤 코’의 특별전을 허가한 현대백화점 ‘명품팀’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짝퉁이 판을 치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투다. 이만하면 ‘나 몰라라’에 가깝다.
‘명품 위조범’들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진다. 능숙한 위조수법으로 ‘명품’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백화점까지 농락한다. 반면 백화점에겐 ‘가짜 명품’을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대안도 없다. ‘빈센트 가짜 시계’에 보기 좋게 속아 넘어간 현대백화점의 사례는 대표적이다. 백화점도 이제 ‘가짜 명품’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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