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 간부들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분 96쪽짜리 논문이 있다. 미국 신임 연방거래위원장인 리나 칸이 2017년 미 예일대 로스쿨 재학 시절 쓴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다. 논문에는 금산분리 같은 규제를 플랫폼 기업에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번에 미국 하원에서 발의한 법안과 일맥상통하는 만큼 더욱 화제가 되는 모양새다.
5일 리나 칸의 논문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를 보면, 그는 아마존을 예로 들며 플랫폼의 성장 전략 2가지가 규제 사각지대에 있다고 봤다.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묶어두면서 경쟁자를 따돌리는 한편, 인접한 사업 영역에 계속해서 진출해 지배력을 전이시킨 것이다. 또 각 사업 영역에서 아마존이 이미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었던 만큼, 이는 아마존이 심판과 선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행위는 지금도 경쟁법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소비자 가격 인상 여부에만 초점을 둔 시카고 학파 접근법의 한계 때문에 경쟁제한성이 과소평가돼 제재를 받지 않는다는 게 논문 앞부분의 요지다. 한 예로 약탈적 가격의 경우 경쟁자 축출 후에 다시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제재를 받는데, 아마존은 소비자 데이터와 쿠폰 제도를 이용해 가격 차별을 하기 때문에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리나 칸은 “마치 제프 베이조스가 미리 반독점법의 지도를 그린 다음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루트를 짠 것 같다”고 표현했다.
논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그가 제시한 해결책이다. 그는 대안 중 하나로 시장지배력이 있는 플랫폼의 사업 영역을 제한하는 안을 내놨다. 해당 플랫폼을 통해 거래되는 재화·서비스를 플랫폼이 직접 제공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국내로 치면 쿠팡이 직접 상품을 팔거나, 야놀자가 호텔을 운영하지 못하는 식이다. 최근 프라밀라 자야팔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플랫폼 독점 종결법’을 이미 4년 전에 고안한 셈이다.
그 근거로는 금산분리를 들었다. 금산분리의 취지로 거론되는 3가지 모두 플랫폼에도 해당된다고 리나 칸은 봤다. 해당 시장의 안정성과 기업 간 공정경쟁을 보장하면서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공정경쟁에 초점을 뒀다. 특정 기업이 소유한 은행은 다른 기업들을 차별할 유인이 생기듯, 플랫폼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리나 칸은 “이해충돌을 감시하는 것보다 이해충돌을 만드는 산업구조를 방지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대안으로는 아예 플랫폼의 자연독점을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정하고 규제하는 안을 제시했다. 플랫폼 특성상 태생적으로 자연독과점 경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리나 칸은 철도나 전력처럼 플랫폼이 디지털 경제에서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는 점을 고려해 공공요금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공공요금 규제에는 3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가격·서비스 차별 금지 규제가 적합하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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