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물류 일감 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상생협약이 마련됐다. 그동안 물류가 급식 등과 함께 ‘일감 몰아주기’의 주무대로 꼽혀온 만큼, 실제 개방으로 이어질지 그 추이가 주목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국토교통부, 5개 대기업집단과 함께 물류시장 거래 환경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조성욱 공정위원장과 노형욱 국토부 장관, 삼성·현대자동차·LG·롯데·CJ 그룹의 대표 화주기업과 물류기업 경영진이 참석했다.
이번 상생협약은 대기업집단이 물류 일감 몰아주기를 자율적으로 근절하는 데 초점이 있다. 물류와 급식, 시스템통합(SI), 소모성 자재(MRO) 등은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내부 일감을 몰아주기가 쉬워 사익편취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정상가격 산정 등의 어려움 때문에 제재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공정위는 각각 현대글로비스(물류)와 삼성웰스토리(급식) 부당지원 사건에서 정상가격을 산정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채찍 대신 당근을 꺼내들게 된 까닭이다. 이날 각 기업은 각각 공정위와 국토부가 마련한 물류 일감 개방 자율준수기준과 물류서비스 표준계약서를 지키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강제성 없이 자율적인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4월에도 대기업집단 8곳과 단체 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연 바 있다. 최근에는 시스템통합 일감의 자율 개방을 추진 중이다.
물류 일감 개방 자율준수기준은 경쟁입찰과 제3자 물류 확대 등을 원칙으로 한다. 가급적 수의계약보다는 경쟁입찰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고 명시했다. 거래의 적정성을 심의할 수 있는 조직도 갖추도록 했다. 자율준수기준은 기본적으로 같은 대기업집단 내 물류 거래를 대상으로 하지만, 총수일가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회사와 거래하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친족독립경영을 신청할 전망인 LX그룹에 물류기업 판토스가 속해 있는 점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정위가 제안했던 내용보다 완화된 부분도 있다. 지난 2월 간담회에서 발표한 지율준수기준안은 대규모 기업집단들이 서로 교차해 상대방 기업집단 소속회사와 거래하는 경우에도 해당 기준이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확정된 자율준수기준에는 그런 문구가 빠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교차 거래하는 경우도 일감 개방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공정위 내부 의견이 있어 수정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일감 개방 추진이 바람직하다”는 표현도 “일감 개방 추진을 적극 고려한다”로 바뀌는 등 일부 문구가 완화됐다.
내부거래 의존도가 압도적인 기업이 많은 만큼 자율 개방이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내 매출액만 놓고 보면,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삼성전자로지텍 94.19%, 현대글로비스 52.38%, LX판토스 74.55%, 롯데글로벌로지스 40.40%, CJ대한통운 11.86%다.
공정위는 일감 개방에 적극적인 기업에 공정거래 협약 이행평가 가점을 주기로 했다. 일종의 인센티브다. 이행평가에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되면 2년, 우수 기업으로 선정되면 1년간 직권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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