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플랫폼 산업의 확대로 거리의 속도 경쟁은 한층 더 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서울 시내를 주행 중인 배달 오토바이들. 연합뉴스
교차로에서 툭 튀어나온 오토바이가 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한다. 비좁은 인도와 행인들로 붐비는 횡단보도를 비집고 아슬아슬 파고드는 오토바이도 부지기수다. 하마터면 앞서 걷는 사람을 칠 뻔했는데도 이륜차 운전자는 “급하다”며 되레 신경질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고약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 플랫폼 노동에 기댄 배달 문화의 확산으로 거리의 속도 경쟁은 한층 더 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보행권은 시민 안전을 가늠할 척도다. 우리는 과연 걷기 좋은 도시에 살고 있을까?
지난달 16일 서울시가 발표한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교통사고 건수는 3만5227건으로 2018년(3만8795건)보다 9.2% 줄었으나, 이 기간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사고는 3931건에서 4702건으로 20%나 늘어났다. 특히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같은 기간 39명에서 50명으로 2년 새 28.2% 증가했고, 부상자는 4918명에서 6017명으로 급증했다.
횡단보도는 물론 인도까지 올라온 거리의 무법자들로 인해 사람들은 맘 놓고 걸을 수 있는 보행권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3살, 5살 자녀를 둔 김은미(35·서울 용산구)씨는 “굉음을 내며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 때문에 아이들과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보도를 침범한 오토바이에 부딪친 적이 있는 이아무개(45)씨는 “오토바이는 빠르고 편리한 운송수단이긴 하지만 인도에 올라오는 순간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일 뿐”이라며 “시간에 쫓긴 사업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반 시민이 희생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보도와 횡단보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만 경찰청 집계로 한해 평균 500명에 이른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신호위반은 기본이고 보도와 차도를 넘나드는 이들의 곡예운전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일상에서 수시로 목격하는 것까지 합치면 보행권 위협 사례는 하루에만 수천수만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현행 도로교통법 2조에는 차도에 차가, 보도에 사람이 다니도록 규정해 놓았다. 오토바이도 예외는 아니다. 이륜차가 보도와 횡단보도에 올라올 경우 4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는 단속 대상이다. 보도를 침범해 사고를 내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 처벌을 받게 돼 있다. 보도와 차도의 통행 구분이 이렇게 분명한데 현실에선 이런 법규가 통하지 않는다. 경찰도 현장 단속을 수시로 하지만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번호판을 부착하지 않거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번호판 식별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는 뒤에만 번호판이 달려 속도위반 등 단속이 어렵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3천건 이상(3160건)이 오토바이와 보행자의 사고였는데 이로 인해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에도 현장 단속을 수시로 했던 점을 고려하면 단속만으로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플랫폼에 기반한 앱 주문 배송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시민들이 체감하는 오토바이 난폭운전의 정도는 더 심해졌다. 지난해 말 한국노동연구원이 집계한 바로는 국내 플랫폼 노동자는 22만명, 이 중 절반 남짓인 52%가 배달·운송 노동자로 일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플랫폼은 배민라이더스나 쿠팡이츠, 요기요 익스프레스 같은 전형적인 배달 앱을 중심으로 짐카 등 각종 화물운송 앱도 적지 않다.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 시장에 뛰어들 때만 해도 사람들은 ‘혁신의 아이콘’인 양 여겼지만 무한경쟁이 벌어지면서 이젠 시민 안전도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총알배송’을 요구받고 시간이 돈이라는 사고가 지배하는 플랫폼 배달노동 시장에서 보행자 사고는 다반사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배송 시장의 70%를 장악한 플랫폼 기업들이 무한경쟁 체제로 접어들면서 배달노동자의 안전도, 시민 안위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이 지난 6월29일 오전 서울 중구 사무금융노조에서 사쪽에 현실에 맞는 배달시간 기준 제정과 정부에 안전배달료 도입 등을 포함한 요구사항을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올해 초 배달일을 시작했다는 김재욱(가명·21)씨는 지난 5개월 동안 두차례 사고가 났다고 했다. 김씨는 “배달이 늦어 주문이 취소되면 라이더가 음식값을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신호 다 지켜가면서 배달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쯤 되면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하는 배달 라이더에게 배송일은 목숨을 건 노동이다. 고용노동부의 ‘배달종사자 산재보험금 신청현황’을 보면, 지난해 산재 신청 건수는 2275건으로 2018년 618건의 3.7배에 달했다. 2년 만에 배달 라이더의 산업재해보험 신청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크고 작은 사고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에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해 1분기 석달 동안 1121건이 신청돼, 이미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육박했다. 사업주가 불이익을 우려해 배달종사자들에게 산재 적용 제외를 요구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산재 적용 대상 규모가 통계보다 더욱 클 것으로 본다. 배달노조 관계자는 “대형 업체를 제외한 중소 배달 앱 플랫폼에선 아직도 산재 적용 제외 신청 등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근절해야 일하다 다친 배달종사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잦은 사고로 배달종사자들은 보험사의 기피 대상이다. 이래저래 배달 라이더들은 안전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라이더유니온 같은 배달플랫폼 노동조합들은 “신호를 지키면서 일할 수 있도록 안전배달료를 도입해달라”고 주장한다. 배달시간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배달대행사들은 번호판도 없이 일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이들은 토로한다.
이륜차 배달 사고가 사회문제로 부상하자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는 처우 개선과 안전망 강화에 초점을 둔 ‘오토바이 배달종사자 보호대책’을 내놨다. 산재보험 가입 범위를 확대하고, 전국민 고용보험으로 실직 위험을 덜어주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륜차 배달종사자가 주로 일하는 퀵서비스 직종은 플랫폼 사업주의 고용보험 관련 의무조항 시행 시기에 맞춰 내년 1월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빨리, 더 빨리’ 배송을 재촉하는 시장구조와 이 틈에서 이익 극대화를 꾀하는 플랫폼 업체들이 속도 경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을 이끌고 있는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진입장벽 없는 플랫폼 산업이 커지고 업체 간 무한경쟁이 배달노동시장의 위험을 부추기고 있다”며 “안전교육을 의무화하는 동시에 플랫폼 산업 발전과 배달노동 종사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을 만드는 등 사회적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