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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하버드 총장 서머스와 ‘선진국 한국’ 최저임금 9160원

등록 2021-08-02 08:59수정 2021-08-02 09:12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2021년 7월13일 제9차 전원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2년도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2021년 7월13일 제9차 전원회의 뒤 열린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2년도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결정됐다. 연합뉴스

미국 하버드대학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 로런스 서머스는 1991년, 개발도상국에 자금·기술을 지원하는 세계은행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있을 때 다음 같은 메모를 동료들에게 회람시켰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세계은행은 산업폐기물을 개도국으로 더 많이 수출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건강에 해로운 공해 비용은, 공해로 인한 질병률·사망률 증가에서 발생하는 소득 손실에 근거해 측정된다. 공해의 일정량은 비용이 가장 낮은 국가에서 발생해야 할 것이고, 그런 국가는 바로 임금이 가장 낮은 국가다. 폐기물을 최저임금 국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는 흠잡을 데 없는 논리다. 그런데 공해의 많은 부분이 비교역재(운송, 전력) 산업에서 발생하고 폐기물의 단위 운송비용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이 때문에 세계의 후생을 증진하는 공해와 산업폐기물의 교역이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야 반박하기 어렵지만, 누구나 “지독한 주장”이라고 비판할 것이 빤한 고약한 논리다. ‘쓰레기를 제3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부국과 빈국 모두의 경제적 후생을 높이는 길’이라는 서머스의 이 말에 제3세계, 각국 정치인, 경제논평가 그리고 사회운동가들이 즉각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2021년 7월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195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앞으로 제3세계·개도국에 대한 경제 지원과 협력을 더 늘려야 하는 책무도 부여됐다. 그런가 하면 7월13일에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우리나라의 2022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440원(5.1%) 오른 시간당 9160원으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당시 내세운 ‘임기 안에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전체 임금노동자 2천만 명과 최저임금 수준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 400만 명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소식이다. 개도국 지위와 최저임금 소식을 접하며 서머스의 메모가 문득 떠오른 까닭이다.

하나의 사회경제적 ‘제도’로서 최저임금은 시장의 힘(수요-공급)에 따른 가격결정이라는 표준적 시장기구 작동 원리를 거스르는 극히 예외적인 영역이다. 자유로운 시장 교환·계약 원리를 따르지 않고 시장경제에 사회가 법률적 강제로 개입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보니 노동자집단, 사용자·자본가집단 그리고 국가기구 등 각 세력이 보유한 자원과 권력을 동원해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려고 해마다 막판까지 다투기 마련이다.

경제학계에서도 최저임금이 실업과 인플레이션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이론적 학설끼리 다투고, 경험적인 사례연구조차 결론을 정반대로 내놓으며 서로 반박하는 일이 빈번하다. 최저임금의 영향과 효과에 복잡하고 수많은 경제변수가 상호작용한다는 점도 있지만, 최저임금은 본질적으로 시장이 아니라 사회가 결정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최저임금이라는 제도적 수단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예컨대 소득주도성장론)를 둘러싸고 숱한 논란과 싸움이 벌어진 사정이 여기에 있다.

몇백원 더 인상할 것인지를 놓고 해마다 노동과 자본이 대립해온 최저임금은 인간이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는 소득의 문턱이다. 수많은 사람이 넉넉한 돈을 소유한 사회에서 어떻게 여전히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도 한두 푼에 비참함을 느껴야 하는가? 서머스는 당시 그 메모에 대해 “내 주장이 아니라 세계은행 내부 회의에서 다른 누군가가 제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계완 한겨레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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