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용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부산항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26위 대 4위’였던 것이 ‘23위 대 34위’로 뒤집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8.15 광복절을 앞두고 1990년대 초 이후 약 3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경제·경쟁력 격차의 변화를 비교해 12일 내놓은 자료에서 가장 종합적이고 상징적인 지표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이다. 일본이 1995년 4위에서 2020년 34위로 떨어지는 동안, 한국은 26위에서 23위로 올라 일본을 뛰어넘었다.
국가경쟁력 순위만큼이나 극적인 변화는 에스앤피(S&P),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에서 매긴 국가신용등급에서 일어났다. 에스앤피 기준 국가신용등급을 보면, 1990년 한국(‘A+’)은 일본(‘AAA’)보다 4단계 낮았던 반면, 2021년에는 ‘AA’로 일본(‘A+’)보다 두 단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각국의 물가와 환율 수준을 반영해 국민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경상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2018년 한국(4만3001달러)이 일본(4만2725달러)을 추월한 뒤 이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산업인 제조업 경쟁력에서도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경쟁력을 분석해 국가마다 순위를 부여한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경쟁력지수(CIP)를 보면, 1990년 한국과 일본은 각각 17위, 2위에서 2018년 3위, 5위로 뒤집혔다.
총량적인 거시경제 지표에서 격차가 대폭 좁혀진 대목도 눈에 띈다.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 한국의 경제력은 1990년 2830억달러에서 2020년 1조6310억달러로 성장해 일본에 견준 비중이 8.9%에서 32.3%로 높아졌다. 1990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 수준은 세계 17위, 일본은 2위에서 2020년에는 10위, 3위로 좁혀졌다. 한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은 1990년(6610달러) 일본의 25.5%에서 2020년(3만1497달러) 78.5%로 근접했다.
대외 부문 지표에서도 한국의 성과는 뚜렷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수출과 수입은 5130억달러, 4680억달러로 일본에 견줘 각각 80%, 74% 수준에 이른다. 1990년 각각 24%, 31% 수준이었던 것에 견줘 격차가 대폭 줄었다.
두 나라 간 격차의 전반적인 축소 흐름 속에서도 기초기술 분야에서 일본의 우위는 뚜렷한 것으로 평가된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한국의 대일 적자 규모는 1994년 83억달러에서 2020년 154억달러로 2배 가까이 늘었고 대일 전체 무역수지 대비 비율(1994년 70%, 2020년 73%)도 높아진 게 한 예로 꼽혔다. 기초과학 및 원천기술 경쟁력을 나타내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일본에서 2020년까지 24명이나 배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대다수 주요 경제지표에서 한·일 격차는 감소하거나 일부 분야는 역전됐지만, 기초과학기술 분야 투자 및 경쟁력에서는 격차가 여전하다”며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한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연구·개발(R&D)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