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을 무기 삼아 ‘갑질’을 한 혐의로 미국 오디오 기업이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정당한 사유 없이 셋톱박스 제조사 가온미디어의 기술 사용 승인을 거절한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돌비 래버러토리즈(Dolby Laboratories, Inc.) 등에 과징금 2억7000만원과 시정명령을 부과한다고 12일 밝혔다. 돌비는 디지털 오디오 코딩 기술 표준인 AC-3 등에 대한 특허권을 갖고 있다. 국내 지상파 방송은 AC-3를 표준으로 택하고 있어 셋톱박스 같은 방송 관련 제품에는 모두 돌비 특허가 사용된다.
돌비는 가온미디어를 상대로 2018년 2건에 대한 기술 승인을 중단한 것으로 조사됐다. 돌비는 셋톱박스 제조사와 포괄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뒤 건마다 개별 승인을 내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셋톱박스 제조사가 납품받는 칩셋이 돌비의 라이선스를 받은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당시 가온미디어는 돌비의 승인을 받아 KT스카이라이프에 셋톱박스 제품을 공급하고 있었으나, 돌비는 2018년 8월 수량부터 승인을 중단했다.
돌비는 가온미디어와 진행 중이던 로열티 협상을 문제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돌비는 가온미디어가 과거에 미지급한 로열티는 없는지 감사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가온미디어가 추가 지급해야 할 금액에 대한 두 기업의 견해 차가 컸다고 한다. 돌비는 원하는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 기술 사용 승인을 볼모로 삼은 셈이다. 돌비가 가온미디어에 보낸 이메일에서는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더 이상의 기술 승인은 없을 것”이라는 문구가 발견됐다. 돌비코리아는 돌비 본사에 “(가온미디어의) 인내심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공정위는 돌비의 이런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거래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가온미디어에 불이익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가온미디어는 결국 돌비 쪽 요구안에 합의하고 미지급 로열티를 냈다. 또 기술 사용 승인이 중단된 동안 셋톱박스를 판매하지 못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표준필수특허권자의 특허권 남용을 제재했다는 의미도 있다. 표준필수특허란 국제 공식 표준으로 정해진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특허를 가리킨다. 해당 특허 없이는 관련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2016년 공정위는 미국 퀄컴이 표준필수특허권을 무기로 부당한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했다고 보고 과징금 1조311억원을 부과한 바 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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