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빅테크를 향한 경고장을 재차 날렸다. 조성욱 위원장이 빅테크 규제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한 지 하루 만이다. 이번에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아온 IT 기업에서도 기존 재벌과 흡사한 ‘편법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중심으로 한 IT 업계는 공정위의 공세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기준 공시대상기업집단 71곳의 주식 소유 현황을 분석해 1일 공개했다. 올해 새로 지정된 쿠팡과 반도 등 8개 기업집단도 포함됐다. 이번에 분석한 기업집단에 소속된 회사는 모두 2612곳이다.
IT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집단 내 변화가 두드러졌다. 공정위는 특히 총수가 자녀에게 회사 지분을 물려준 사례가 새로 등장한 점에 주목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올해 초 두 자녀에게 카카오 주식 총 12만주를 증여했다. 상빈(28)씨와 예빈(26)씨가 지분 0.06%씩 들고 있는 구조다. 최근 주가 기준으로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총 800억여원에 이른다. 두 명 모두 김 의장의 개인회사(지분 100%)이자 카카오의 주요 주주인 케이큐브홀딩스에서 근무 중이다.
넥슨도 총수 2세가 지분을 들고 있는 대표적 사례다. 김정주 창업주의 자녀 정민(19)씨와 정윤(17)양은 넥슨 그룹의 지주회사인 NXC 지분을 0.68%씩 갖고 있다. 그룹 계열사 와이즈키즈는 두 자녀가 합쳐 지분 100%를 들고 있다. 김정주 창업주는 2018년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한 바 있다.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에 출자한 사례도 증가했다. 카카오는 1개사에서 3개사로, 네이버는 8개사에서 10개사로 증가했다. 해외 계열사는 현행법상으로 공시 의무가 없어 기업들이 ‘꼼수’를 부릴 수 있는 대표적 통로로 꼽힌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해외 계열사를 공정위가 눈여겨본 이유다. 네이버는 지난해 핵심 사업인 웹툰을 미국 법인 중심으로 재편했다. 국내 계열사 네이버웹툰을 미국 법인 웹툰 엔터테인먼트(Webtoon Entertainment, Inc.)가 100% 지배하는 식이다. 웹툰 엔터테인먼트는 네이버(66.6%)와 라인(33.4%)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올해 말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 해외 계열사도 공시 의무를 지게 된다. 성경제 기업집단정책과장은 “(개정 법 시행 이후에는) 공시를 통해서 저희가 앞으로 시장 감시를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처음으로 IT 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을 별도로 분석했다. 보도자료에서는 “총수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대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신규 지정 집단과 IT 주력 집단에 대한 감시 필요성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IT 주력 집단도 총수 2세의 지분 보유, 해외 계열사의 국내 계열사 출자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발표가 IT 업계를 향한 경고로 풀이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성경제 과장은 “최근에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IT 기업집단들의 외형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 승계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집단을 관심 있게 보겠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IT 기업집단을) 따로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보다 근본적인 배경에는 빅테크 독과점 문제가 있다.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소수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반독점 규제가 도입되고 있는 이유다. 조성욱 위원장도 지난 8월31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강연에서 해외 입법 현황을 소개하며 빅테크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조 위원장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갑’이 등장했다”며 “여기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와 소비자 피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빅테크 규제가 시급한 산업 분야의 정책 방향을 올해 연말까지 제시할 계획이다. 미디어콘텐츠와 유통, 금융, 자동차, 플랫폼 모빌리티 등 5개 분야로, 국내에서는 카카오나 네이버, 쿠팡 같은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는 영역이다. 조 위원장은 “플랫폼 생태계의 동향과 산업 융복합화 추이, 빅테크 기업의 복합 지배력 구축 및 남용 우려에 대해서 심도 있는 다각적인 분석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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