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미국의 플랫폼 반독점 법안을 벤치마킹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발 빅테크 규제 바람이 국내에 본격 상륙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지난해 마련된 플랫폼 관련 법안이 부처 간 영역 다툼으로 모두 계류된 만큼, 유의미한 성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정무위원회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이달 중 ‘온라인 플랫폼 시장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지난 6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한 플랫폼 반독점 법안 패키지를 본뜬 내용으로, 현재 국회 법제실에서 검토를 받는 중이다. 같은 상임위인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 발의를 검토하기 위해 최근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배 의원의 법안은 발의되면 플랫폼의 독과점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첫 발의안이 될 전망이다. 기본 뼈대는 미국의
플랫폼 독점 종식법 등과 같다.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배적 플랫폼’으로 지정하고, 이런 플랫폼은 이해충돌을 일으키는 사업을 소유·지배하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지배적 플랫폼의 기준은 월간 이용자 수, 시가총액 등 3가지다. 미국 법안과 달리 3가지 중 하나만 충족하면 지배적 플랫폼이 된다. 구체적으로 국내에서 월간 실제 이용자가 1000만명 이상이거나 이용 사업자가 2만명 이상이면 지배적 플랫폼에 해당한다.
자사 우대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플랫폼 기업이 직접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입점업체의 미공개 데이터를 유용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이다. 이런 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공정위 내부에 플랫폼시장감독국도 설치한다. 배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은 초안 단계여서 국내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좀 더 다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병덕 의원도 플랫폼 반독점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다. 최근엔 미국의 플랫폼 반독점 법안 패키지를 검토하고 국내 시장에서 비슷한 규제가 필요한지 살펴보는 내용의 연구용역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에 발주했다. 민 의원실 관계자는 “연구용역이 완성되면 공청회 등을 열고 논의해볼 방침”이라고 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실제 입법으로 시기적절하게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기초적인 규제로 평가받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정부발의안은 부처 간 밥그릇 다툼에 휘말려 1년간 표류한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플랫폼 독과점 문제에 대한 제재 권한을 요구하고 나선 탓이다. 국회에서도 이런 다툼에 가세하는 법안이 여럿 발의되면서 입법 공백이 장기화됐다.
국내 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법안의 부재도 아쉬운 지점이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법안을 그대로 본떴다는 한계가 있다. 이들 법안은 현지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 끝에 나온 결과다. 지난해 미국 하원은 GAFA의 경쟁제한적 행태에 대해 1년여간 조사한 끝에 450쪽 분량의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영국 경쟁시장국(CMA)도 지난해 구글·페이스북의 광고 사업에 대한
시장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반면 카카오와 네이버 등 국내 테크 기업들에 대한 심도 있는 실태조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공정위는 지난 5월에야 디지털 광고 시장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플랫폼 기업의 인수합병 문제에 대한 연구용역은 내년 초에 착수 예정이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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