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개발국가와 복지국가를 넘어 역량증진형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이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서울대 석좌교수)은 ‘전환과 새로운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한국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 ‘역량증진형 국가’를 제시했다.
이 부의장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생산의 저비용·효율화를 중시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소수 국가 간 합종연횡에 의한 동맹형 글로벌밸류체인(GVC)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며 “이는 자유무역 통상질서 속에서 성장해온 한국에 큰 도전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의장은 “한국 경제와 산업이 재도약하려면 탄소중립과 디지털이라는 ‘이중전환’에 추가해서 글로벌밸류체인 재편이라는 ‘삼중전환’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한국은 종래의 개발국가나 복지국가(모델)를 넘어서는 역량증진형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정희식 개발국가와 2000년대 이후 복지국가 모델에 이어 역량증진형 국가를 새로운 국가 발전 방향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부의장은 “역량증진국가는 수요 보충적인 케인지언 국가와 공급 지향적인 슘페터형 국가를 결합한 것”이라며 “산업이 시장경쟁에 의해 몰락해서 재정의 부담으로 귀결되기 이전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개입해서 산업 역량과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고 기업 구조조정과 복지 등에 들어가는 사후적 비용을 줄이면 복지-성장-고용이 선순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복지국가가 고기를 주는 것이라면 역량증진형 국가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역량증진형 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과제와 관련해 “개인자원의 역량 증진을 위해 종래의 대량생산 기술 대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춰 개별화한 대량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기업과 산업자원의 역량 증진에 관해 “미국의 구글이 일주일에 하나씩 다른 기업을 인수해 성장한 것처럼 기업의 내부냐 외부냐의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 기업 간 역량 공유, 네트워킹, 연합이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의 형태도 종래의 가족지배 아래에서 문어발식 사업 다각화를 넘어서 디지털 기술에 기반해 기존 경제의 경계를 넘어서는 다양한 합종연횡형 ‘빅 블러’나 플랫폼 기업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부의장은 역량증진형 국가에 필요한 복지체제에 관해서는 “현금보다는 출산·육아·교육 등 각종 현물형 사회서비스 제공을 통해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며 “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을 살려서 복지 지원을 노인층뿐만 아니라 역량 발휘에 핵심 역할을 하는 근로연령층에도 적절하게 배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노동시스템 혁신에 대해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높이고, 연공서열 대신 직무급 중심의 보상체제를 도입하며, 고소득형 자발적 비정규직과 정규직형 시간제 고용 확대로 여성·청년의 고용률을 높여야 한다”며 “이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유노조-무노조 노동자 간 격차라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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