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조선업 불황으로 경남 거제의 조선 노동자는 5년 전보다 4만명 넘게 줄었다. 올해 들어 업황이 개선되고 있으나 고용 여건은 여전히 어렵다. 대우조선해양의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모습. 거제/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20대 후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김영석(가명·32)씨의 상경 이유는 ‘일자리’다. 김씨는 “주거비 부담이 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내려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거기엔 사회적 인프라나 돈벌이 수단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한겨레>가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과 함께 20~30대 남녀 2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에서 “치솟은 집값 때문에 지방으로 가고 싶어도 일자리 때문에 포기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의 부동산 민심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지역 일자리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새삼 일깨운다. 지역별 일자리 양극화는 교육·의료·문화 등 정주 여건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확대로 점점 더 심화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30년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일자리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1990년 수도권 취업자 수는 776만명, 비수도권 취업자 수는 1032만명이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2014년 이래 수도권 취업자 수는 비수도권을 앞질렀다. 지난해 기준 수도권 취업자 수는 1352만명, 비수도권 취업자 수는 1338만명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청년층 고용률 격차는 1990년대의 10%포인트 수준에서 좁혀졌지만 여전히 5~6%포인트 격차가 지속되고 있다.
지역별로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의 조성중 정책개발부 팀장은 “산업구조적으로는 수도권 중심의 탈제조업화와 비수도권 제조업 분야의 불황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일자리 격차를 심화시켰고, 노동시장 측면에서 고학력·고숙련 노동력의 수도권 집중이 격차를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이래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와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혁신도시 등을 통해 변화를 꾀해왔지만, 수도권 집중화·과밀화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 수도권 인구는 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쏠림 현상은 과거와 달리 2030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년층 유출과 인구 감소로 적지 않은 지역이 ‘소멸위험’에 직면한 상황은 수도권이 비대해질수록 비수도권이 쇠퇴하는 악순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5월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험지역은 106개(46.5%)에 이른다. 2017년 85개, 2019년 93개, 2020년 105개로 매년 증가세다. 차미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역의 인구가 서울로 사회적 이동(유출)을 하면서 결국 지역은 서울에 사람을 대는 ‘인구 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인적자원이 수도권에 모이면서 지역의 출산율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청년층 유출로 인해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지는 게 본질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소멸의 중심에는 청년 유출 문제가 자리잡고 있고, 또 청년 유출은 일자리 문제와 연결돼 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문가들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중심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 이후 자립적 지방화를 위해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회계)를 신설해 확대해왔지만, 아직 지방정부의 권한은 사업기획과 정부부처 사업에 대한 예산 매칭 정도에 한정돼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시장 환경과 일자리 수요 변화에 적극 대응하려면 중앙과 지역의 역할을 구분하고, 지역 주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역 노동시장의 변화를 추적해온 이상호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지역 일자리 불평등과 지방소멸, 현황과 과제’ 연구를 통해 대안적 일자리 전략을 제시한다. 이 위원은 “기존 일자리 모델이 제조업, 고생산성-고임금, 중앙집중형, 대량생산과 소비, 수직적·위계적 공간 분업, 국가-시장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향후 지역 일자리 대안 모델로는 서비스업, 괜찮은 일자리-양질의 다양한 서비스, 분권형, 중소도시·농어촌 등 지역공동체, 국가-시장-시민사회 섹터의 조화로운 역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크게 두 축의 구성을 제안했다. 첫째, 대규모 인프라 위주의 국토-공간 정책을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지역 일자리 정책을 지역 분권화하는 방식으로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지역마다 인구구성과 산업구조가 다르므로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지방정부가 각 지역의 인구, 산업, 특성에 맞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직업훈련·창업지원·고용서비스 등)을 수행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며 “지역 일자리 정책에 관한 지방정부의 재량권을 확대하고, 분권화에 상응하는 책임성도 동시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지역이 주도하고 중앙이 지원하는 일자리 사업으로는 ‘상생형 지역일자리’와 ‘산업단지 대개조’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이 사업은 부처 간 정책연계를 통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지역 경제주체들이 근로여건, 투자계획, 복리후생, 생산성 향상 등에 대한 합의를 기반으로 적정 근로조건, 원·하청 개선, 인프라·복지 협력을 도모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현재 광주, 밀양, 횡성, 군산, 부산, 구미, 신안, 대구 등 8개 지역이 협약을 맺었고, 전북과 충북 등 10개 지역에서 추가 신청을 준비 중이다. 향후 1만2천명의 직접고용과 51조원 규모의 신규투자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중인 조선 노동자. 대우조선해양 제공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은 중장기 프로젝트다. 1969년 울산공업지구 지정 이후 전국에 산재한 산업단지는 1200개가 넘는다. 산단은 국내 제조업 생산과 수출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의 근간이자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산업여건 변화와 도시화 등에 대한 대응 부족으로 활력이 떨어지고 주변부와 산업생태계와의 부조화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쟁력을 잃어왔다. 산단 대개조는 노후 산업단지를 제조혁신, 근로·정주여건,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지역 일자리 창출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이다. 산단 대개조 총괄기획팀을 이끌었던 심대현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본부장은 “산단 대개조 사업은 광역지자체가 지역경제에 파급력이 큰 거점 산업단지의 혁신계획을 제안하면 중앙정부 평가를 통해 선정된 지역에 관계부처 예산을 투입하는 중앙-지방 협력형 사업”이라며 “지역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단지의 역할과 활성화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5곳(경북, 광주, 대구, 인천, 전남)에 이어 올해 3월 5곳(경기, 경남, 부산, 울산, 전북)이 추가 선정됐고, 내년에 5곳이 더 선정될 예정이다. 지난해 선정된 5개 지역에선 1만5천명의 신규고용과 19%의 매출 신장을 기대하고 있다. 김용기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2015년 조선업 등 제조업 위기에 이어 최근 코로나19 충격으로 어려움에 빠진 지역 일자리 문제 극복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 간 긴밀한 협력, 산업·고용·복지와 연계된 적극적이고 전환적인 일자리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년 유출과 지역소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생활 인프라 개선과 함께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사진은 경북 의성군 안계면 시안리 일대에 조성된 스마트팜 온실에서 작업 중인 청년들. 의성군 제공
한 덩어리로 연결된 청년 유출, 지역소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좀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자리 수 늘리기에 급급해 기업유치 등에 매달리기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민간 싱크탱크 ‘랩2050’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공동기획한 ‘참성장포럼’ 세번째 세션 ‘지역소멸을 넘어서는 일과 삶의 재구성’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양적 접근이 아닌 삶의 질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 구축과 함께 정책의 유기적 결합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지방의 정주 여건과 경쟁력을 높이고자 혁신도시, 도시재생, 스마트도시 등의 정책을 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임 소장은 “지역의 제조산업이 그동안 일자리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지역 중심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원주의 의료기기산업 클러스터와 완주 로컬푸드 모델을 사례로 제시했다. 의료업체와 연구기관, 대학 등이 네트워크를 이룬 원주 의료기기 클러스터는 지역 자원과 관련 산업을 잘 활용한 사례로 꼽힌다. 중간 유통단계를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 직거래를 도모한 완주군의 로컬푸드 사례는 지역 먹거리 산업의 혁신 모델로 전국 확산의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12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있으며, 2012~2020년 누적 매출 4천억원에 참여농가 1270가구, 소비자 회원 8만여명으로, 매출 대부분이 지역농민에게 재환원된다.
지역 특성에 맞춘 고용 활성화 전략뿐만 아니라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보육 여건을 개선하고 교육과 의료 인프라 등을 확충하는 것도 지역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필요조건으로 꼽힌다. 차미숙 선임연구위원은 “사람들이 지역에서의 삶을 행복하다고 느껴야만 (수도권으로의) 사회적 이동이 줄어들고 청년층 유출 문제, 나아가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지역 일자리 감소, 청년유출, 지방소멸은 한 덩어리라 근본적인 원인 치료가 아니면 어렵다”며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매력을 느끼며 살 수 있도록 지역을 특화하고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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