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동안 하이트진로그룹 일본 현지법인(JINRO Inc)은 문제되는 지분의 ‘보관소’ 역할을 해왔다. 2012년 국내 계열사 진로소주가 보유하던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전부를 넘겨받은 데 이어, 2년 전에는 공익법인 하이트문화재단이 보유하던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중 5% 초과분을 사들였다. 통상 제3자에게 넘겼어야 할 지분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닿는 곳에 보관해둔 꼴이다.
이런 수법이 가능한 것은 일본 현지법인이 국외에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국외에 있는 손자회사는 지주회사 지분을 보유해도 위법이 아니다. 때문에 일본 계열사는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손자회사이면서 동시에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지분 3.75%(보통주 기준)를 갖고도 법망을 피해갈 수 있었다. 국외 법인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는 배경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의 소유·출자 현황과 수익구조를 분석한 결과를 21일 공개했다. 분석 대상은 지난 9월 말 기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대기업집단(전환집단)이다. 올해 전환집단은 지난해보다 5곳 늘어난 27곳이다. 두산·디엘(DL)·태영이 추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반도홀딩스·아이에스지주는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새로 지정됐다.
공정위가 지주회사 국외 계열사 현황을 들여다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국외 계열사 공시 강화를 앞두고 점검에 나선 것이다. 지금은 국내 계열사에 출자한 국외 계열사 현황만 파악할 수 있다. 분석 결과 전환집단 소속 35개 국외 계열사가 국내 계열사에 출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가 16개로 가장 많았고, 에스케이(SK)와 엘지(LG)가 각각 4개로 뒤를 이었다. 특히 하이트진로그룹은 일본 법인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 2개를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신용희 공정위 지주회사과장은 “법 위반은 아니지만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정을 (국외 법인을 이용해) 우회한 것”이라며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향후 새롭게 형성되는 측면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내부거래 비중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환집단의 지난해 내부거래 비중은 13.68%로 전년(15.25%)보다 다소 줄었다. 다만, 지주회사 체제가 아니면서 총수가 있는 기업집단 32곳의 평균치 10.38%보다는 높았다. 또 전환집단에서 지주회사 체제 밖에 있는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은 11.44%로 전년(8.65%)보다 오히려 늘었다.
총수 2세 지분이 많을수록 내부거래 비중도 컸다. 한국타이어그룹 계열 신양관광개발은 조양래 회장의 자녀 4명이 지분 전부를 보유한 곳인데, 내부거래 비중이 100%였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식품유통 계열사 서영이앤티도 매출 1047억원 중 21.59%를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서영이앤티는 총수 일가의 가족 회사로, 특히 박문덕 회장의 아들 2명이 전체 지분의 80.06%를 갖고 있다.
공정위는 “내부거래를 이용한 경영권 승계 등 각종 편법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수익구조 개선도 숙제다.
전환집단 지주회사의 매출액 중 배당외수익 비중은 47.9%로 전년(51.9%)보다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배당수익(44.6%)보다 많았다. 배당외수익은 지주회사가 계열사에서 받아간 브랜드 수수료나 경영관리·자문 수수료 등으로 구성된다. 지주회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평균 지분율이 50.1%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수수료를 통상적인 수준보다 비싸게 책정할 경우 사익편취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주회사별 배당외수익 비중은 하이트진로홀딩스(85%), 현대중공업지주(83%) 순이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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