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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시골로 간 도시청년들…지역재생의 중심에 서다

등록 2022-01-17 09:22수정 2022-01-17 09:54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지금의 인구 감소 추이로 볼 때, 앞으로 30년 이내 전국 읍·면·동 10곳 중 4곳은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청년층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는 농촌만큼 소멸 징후를 체감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한편에선 귀농·귀촌 인구의 증가, ‘워라밸’과 ‘5도2촌’의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사회적 트렌드의 변화로 농산어촌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들이 있다. 지역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함께 최근 농산어촌으로 들어간 청년들과 베이비부머들을 통해 농산어촌이 처한 현재와 미래, 농정 방향, 과제 등을 짚어보는 공동기획을 마련했다.

경북 의성군 다인면에서 딸기 농사를 하고 있는 청년농부 안혜원(왼쪽)씨가 5일 자신의 농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오빠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의성/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경북 의성군 다인면에서 딸기 농사를 하고 있는 청년농부 안혜원(왼쪽)씨가 5일 자신의 농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오빠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의성/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딸기농장 ‘워니팜’ 안혜원 대표

대학서 원예 전공, 정책지원 힘입어 창농

“일손 부족하고 아직 자금 문제 등 남아

새해 강추위가 이어지던 지난 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다인면 들녘에 자리잡은 딸기농장에서 출하 작업이 한창이다. 갓 따낸 딸기를 크기별로 분류하고 상자에 넣는 선별 작업으로 바쁜 손을 놀리던 안혜원(28)씨는 “주문 물량을 맞추려면 오늘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딸기농장 ‘워니팜’ 대표인 안씨는 영농 3년차에 접어든 ‘청년 농부’다. 안씨는 2019년 9월 의성군민이 됐다. 도시에 살던 그가 시골로 온 것은 의성군 청년농업 지원사업의 하나인 ‘스마트팜 교육’에 참여하면서다. 안 대표는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딸기 재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교육을 받고 창농하는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안씨 농장은 2천㎡ 규모다. 첫해 작황은 변변치 못했다. 공교롭게 올겨울 딸기값은 크게 치솟았다. 이상기온과 병충해로 인해 딸기 모종이 좋지 않아 수확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수확한 딸기는 대구 공판장(경매)으로 대부분 보내는데 최근에는 택배 주문이 늘었다”고 말했다. 안씨가 창농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경북도와 의성군의 정책자금 지원이 뒷받침이 됐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사는 시골 마을에 도회지 처녀가 정착하는 데는 마을 이장을 비롯한 이웃 어르신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고 힘든 점투성이다. 안씨는 “일손이 부족할 때 가장 힘들고, 아직 판매와 자금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안씨가 정착한 의성군의 인구는 5만명을 약간 넘는다. 저출생·고령화율이 높아 인근 군위군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의성군 인구는 2000년(7만6327명)에 견주면 34%나 줄었다. 지난해 말 주민등록 기준으로 의성군 출생자는 171명, 사망자는 921명으로,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의 5배를 넘었다. 최근 5년간 초·중·고 5개 학교가 폐교됐고 65살 이상 고령 인구는 전체 군민의 43.1%로 전국 최고치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직면한 곳이지만, 의성군이 2019년부터 시작한 ‘지역재생’ 전략에 힘입어 도시에 살던 20~30대 청년층 유입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수제맥주 공방 차린 김예지 대표

대구서 태어나 서울 직장 다니다 귀촌

“일과 쉼의 균형에 주목한 청년창업 많아”

2020년 6월 의성 안계면에 수제맥주 공방 ‘호피 홀리데이’를 차린 김예지(31)씨는 귀촌 3년차다. 이 공방은 맥줏집을 겸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젊은 감성의 힙한 공간이다. 낮에는 양조 체험 위주로 운영되고, 저녁에는 주민들의 쉼터 구실을 하는 셈이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의성에 정착했다. 도시에 살던 그가 귀촌을 결정한 것은 맥주의 원료인 홉 농사를 짓는 농장 부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저처럼 창업을 위해 귀촌한 또래들이 많아 놀랐어요. 농촌이기에 가능한 일과 쉼의 균형에 주목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씨는 양조의 꿈을 키우기 위해 누리집(홈페이지)도 만들었다. 요즘은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강의 요청이 많아 일상이 바빠졌다고 한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귀촌한 김예지씨가 경북 의성군 안계면 수제맥주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 김예지씨 제공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귀촌한 김예지씨가 경북 의성군 안계면 수제맥주 공방에서 일하는 모습. 김예지씨 제공

귀농과 귀촌 하면 으레 영농을 떠올리지만, 농촌에는 농사일 말고도 다양한 선택지가 열려 있다. 실제로 도시에 살다 시골로 농사일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 의성만 해도 농업 이외 다른 일에 종사하는 청년들이 많다. 협업농장 운영을 비롯해 완구·가구 제작, 수제돈가스 레스토랑, 디저트 전문점, 도농 청년 간 교류사업까지 다양하다. 최근에는 요가 교습을 하는 곳과 애견 수제간식을 판매하는 곳도 등장했다. 출신 지역도 서울과 부산, 대구, 울산 등 각양각색이다.

농촌체험 프로그램인 ‘청춘구 행복동’(의성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기획·진행 중인 장명석(30)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자신도 2년 전 이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의성군민이 됐다. ‘청춘구 행복동’은 도시 청년들이 시골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지역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청년공동체마을이다. 그는 “감성에 휩쓸려 시골로 내려온 게 아니다. 지역의 전통 자원과 지원 프로그램을 활용해 잘 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 청년들이 시골로 주소를 옮기고 정착을 시도하는 것을 정책지원 효과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자리잡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현지에선 못마땅한 시선들도 존재한다. ‘시골로 와서 얼마나 버티겠냐’, ‘스마트팜 한다고 땅값만 올려놓은 거 아니냐’는 눈길도 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청년들이 시골로 온 것은 농촌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며 “지원을 통해 들어오기는 했지만 공동체를 만들어 뿌리를 내리고 싶다”고 했다.

경북 의성군 안계면 청년공동체마을 1, 2기 입주동민들. ‘행복구 청춘동’ 제공
경북 의성군 안계면 청년공동체마을 1, 2기 입주동민들. ‘행복구 청춘동’ 제공

‘인구소멸’ 의성, 귀농·귀촌 활기

일자리·주거·복지·문화 등 기반

3년 사이 도시 청년 140여명 정착

기초 단위의 여느 지방자치단체처럼 의성군도 한때 저출생·고령화 심화→지역경제 침체→일자리 감소→청년 유출이라는 이른바 ‘소멸의 악순환’에 빠져 있었다. 유정규 의성군 이웃사촌지원센터장은 “악순환을 끊어내고 지속가능한 의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멸 사이클’을 ‘재생 사이클’로 전환하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의성군은 먼저 기존의 ‘지역개발’ 정책에서 벗어나 ‘지역재생’ 전략으로 정책의 틀을 바꿨다. 경북도와 함께 2019년부터 의성 서부권의 거점지역인 안계면 일대에 일자리와 주거, 복지, 주민공동체가 두루 갖춰진 ‘이웃사촌 청년시범마을’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농촌체험 프로그램인 ‘의성 살아보기’를 통해선 지역 탐색에 나선 청년들을 불러들였다. 처음 15명을 모집했더니 도시 청년 75명이 신청했고 두번째 모집에는 115명이 몰렸다. 2019년 초부터 지난해까지 140명이 넘는 도시 청년들이 안계면을 비롯한 서부의성에 주소를 옮기고 정착했다.

의성군은 의료와 교육 문제를 비롯한 생활 여건이 개선되면 지금보다 외부 유입이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안계면 중심지에 있는 시장터에 레저, 쇼핑, 문화, 청년창업공간, 공공서비스가 가능한 복합 커뮤니티 시설이 들어선다. 유 센터장은 “많은 지자체들이 청년유입 정책을 펼치고도 효과를 못 보는 것은 분절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일자리와 주거·문화·의료·복지·교육 등 지역 정착에 필요한 기반을 통합적으로 구축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의성/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센터장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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