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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당신의 죽음 이후

등록 2022-02-02 08:59수정 2022-02-10 18:36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정현채 서울의대 명예교수가 헝겊으로 만든 나비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벌레 형태에서 단추를 풀고 펼치면 나비 모양이 된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종을 앞둔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인형을 본뜬 것이다. 이정용 기자
정현채 서울의대 명예교수가 헝겊으로 만든 나비 인형을 보여주고 있다. 벌레 형태에서 단추를 풀고 펼치면 나비 모양이 된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임종을 앞둔 어린이들에게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인형을 본뜬 것이다. 이정용 기자

“분명히 어머님의 목소리였어요.” 2021년 12월 갑작스러운 장모의 죽음을 맞은 중견기업 P부장이 장례식 얼마 뒤 처남에게 들은 말이다. 처남은 장의차를 타고 화장장으로 가던 도중 얼핏 잠이 들었는데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나는 편안하게 잘 있다’, ‘아버지와 손자손녀(이름을 부르며) 잘 부탁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경험은 보통 환청으로 치부된다. 환각처럼 몸과 마음이 긴장한 특수 상황에서 어떤 소리를 들은 듯이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단순히 환청이 아니라 고인이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사후통신’(ADC, After Death Communication)이라는 것이다.

사후통신

사후통신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미국의 빌 구겐하임 박사는 7년에 걸쳐 미국과 캐나다에서 약 2천 명을 면담해 1995년 <천국에서 온 소식(Hello from Heaven)>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3300개의 사례를 모아 지각·청각·촉각·후각 통신 등 12개 범주로 분류했다. 고인의 영혼이 곁에 있는 느낌, 고인이 자신을 가볍게 치거나 어루만지는 느낌, 고인의 목소리나 냄새 등이다. 꿈을 통한 사후통신도 있다. 구겐하임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20%가 이런 경험을 했다.

황당하게 보일 수 있는 사후통신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사후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고인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머무는 곳 말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 이야기지만, 죽음을 오래 연구한 이들에게 사후세계의 존재는 상식이다. 이들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안다’고 말한다.

죽음과 사후세계를 깊이 연구한 사람은 대부분 의사다. 죽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스위스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대표적이다.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사람인 그는 많은 환자, 특히 어린이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과학과 의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공통된 현상을 줄곧 목격했다. 근사 또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이다.

근사체험

근사체험은 죽음에 이른 사람의 영혼이 육체를 이탈해 겪는 경험을 말한다. 숨이 끊기고 심장이 멎는 등 사실상 사망한 뒤 되살아난 사람들의 경험담은 너무 생생하고 자세해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선 영혼의 실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멎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심폐소생술이 발달하면서 그런 경험자가 크게 늘었다. 미국 정신과 의사 레이먼드 무디 주니어가 쓴 책 <다시 산다는 것>은 다양한 근사체험의 사례를 담았다.

2001년 의학지 <랜싯>에 실린 네덜란드 연구에서는 조사 대상 344명 가운데 62명(18%)이 근사체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사체험의 공통 현상은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 △체외 이탈 △터널 통과 △밝은 빛과의 교신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와의 만남 등 열 가지다.

물론 근사체험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근사체험은 뇌가 헷갈려 생기는 환각 또는 착각이라는 주장이다. 뇌가 전기자극을 받을 때, 저산소증일 때, 마취제나 환각제 투여 때 빛 같은 것을 보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학 연구자들은 근사체험자들의 이야기가 그것과 분명히 다르다고 말한다. 뇌파가 사라진 뒤에도 마치 옆에서 지켜본 듯이 수술진의 대화, 수술실 음악, 수술 기구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뇌동맥류 환자나 공중에 떠서 심폐소생술 시행 광경을 지켜봤다는 외과의사 등 다양한 사례들은 근사체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죽음이 임박했거나 죽은 직후 겪는 삶의 종말 체험도 사후세계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 전장에서 사망한 그 시각 미국 고향 집 가족들 앞에 나타났다거나, 외국에 단기연수를 간 한국 의사가 심부전증으로 오래 진료한 환자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받았는데 그때 그 환자는 한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등의 체험담이 있다. 이런 현상이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혼의 이동으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전생을 알고 있는 아이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사후세계

누구나 죽음 이후를 궁금해한다. 나이가 들고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더 그렇다. 죽으면 모든 것이 소멸하는지, 사후세계가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극락)이나 지옥과 같은지, 사후에 영혼이 육신을 떠나 어디로 가는지.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뭐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음 이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가 많이 달라진다.

잠깐 죽음을 맛본 근사 체험자들은 대체로 다른 이에 대한 공감과 인생의 목적에 대한 이해가 나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근사체험이 막연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과거를 성찰하고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과학적인 죽음 연구를 바탕으로 2018년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을 펴낸 정현채 서울의대 명예교수는 죽음을 공부하며 “죽음을 내포한 생명의 본질과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주어진 삶을 더욱 충만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썼다.

죽음학 강의를 가장 활발하게 하는 그는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라고 강조한다. 퀴블러 로스 박사의 말처럼 “죽음은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인 육신을 벗어나는” 것일 뿐이다. 체외이탈 경험자들은 육신을 벗어났을 때의 느낌을 “무거운 잠수복을 입고 바다 밑을 걷다가 물 밖에 나와 벗을 때의 홀가분함” 등으로 설명한다.

영혼과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을지는 개인에게 달렸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적외선, 자외선이나 20~2만㎐ 주파수는 3차원 공간에 사는 인간이 느낄 수 없을 뿐 실재한다. 다른 세계의 존재를 받아들이면 죽음의 공포와 이승에 대한 집착이 한결 줄어든다. 사후세계보다 존재 근거가 훨씬 빈약한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노후 불안을 덜어주듯이.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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