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원자재 가격 인상에 연동하는 제도를 본격 추진한다. 중소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하는 데 따른 것이다. 일각에선 제도의 부작용으로 기업들의 혁신 노력이 줄고 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열린 제54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올해 상반기 중에 표준계약서 등을 통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토대로 시범 운영한 뒤, 추가 연구용역 등을 거쳐 제도를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주요 원자재 값이 오르면 원청업체가 의무적으로 납품단가를 올려준다는 개념이다. 중소기업 제품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놨으며, 지난해 말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도입을 약속했다. 최근 들어 알루미늄 등 일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아직 제도의 구체적인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어떤 원자재를 연동 대상으로 선정할지, 기준 가격을 어떻게 정할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의 얼마만큼을 납품단가에 반영할지 결정된 바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는 구리나 알루미늄처럼 활용 비중이 높고 공인된 국제 시세가 있는 원자재를 중심으로 운영하겠다고만 밝혔다. 먼저 단기 연구용역을 통해 시범 운영에 적용할 기준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문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기준을 찾기가 만만찮다는 점이다. 한 예로 연동 대상으로 선정된 원자재 가격은 올랐으나 다른 원자재 가격이 떨어져 생산비용이 그대로여도 납품단가를 올려야 할 수 있다. 납품업체 입장에서 원가 절감 유인이 줄어들어 혁신이 저해된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를 해소할 방안을 찾지 못하면, 소비자 가격만 더 많이 올라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셈이다.
제도의 실효성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부작용에 대한 각종 안전 장치를 마련하다 보면, 반대로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관건이다. 정부는 궁극적으로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반영된 표준계약서를 도입한 기업에 일종의 혜택을 주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정기환 중소벤처기업부 상생협력정책관은 “계약을 했는데도 기업이 지키지 않을 때는 정부가 조사를 하고 (시정을) 권고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제도의 윤곽은 시범 운영이 이뤄진 뒤 드러날 전망이다. 이승한 기재부 산업경제과장은 “소비자 이익 침해와 수출 경쟁력 약화 등 여러 부작용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다만 최근 공급망 문제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단기적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와 논의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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