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그룹 계열사가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빼앗아 특허를 낸 것으로 드러나 제재를 받았다.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한 대기업의 ‘특허 도둑질’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위해서는 하도급업체가 따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만큼 미완의 성과로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혐의(하도급법 위반)로 LS엠트론 등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3억8600만원을 부과했다고 3일 밝혔다. LS엠트론은 LS그룹의 기계·부품 사업을 하는 계열사다. 이번에 문제된 자동차용 호스부품 사업은 2018년 LS엠트론에서 물적 분할됐으며, 현재 지분 80.1%를 미국 쿠퍼스탠다드의 국내 자회사에서 들고 있다. 공정위는 이런 점을 감안해 LS엠트론에는 시정명령만 내리고, 과징금은 모두 신설법인인 쿠퍼스탠다드오토모티브앤인더스트리얼에 부과했다.
LS엠트론은 2012년 하도급업체의 설계도면을 이용해 단독 명의의 특허를 출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된 부품은 자동차 엔진에 쓰이는 고무 호스다. LS엠트론은 호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금형의 제조 방법과 설계도면을 하도급업체에 요구해 받은 뒤, 이를 특허 출원·등록에 몰래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업체는 특허가 등록된 사실을 2018년에야 인지했다고 한다.
LS엠트론은 다른 기업에서 이전받은 기술로 특허를 낸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단 이를 입증할 만한 물증이 확인되지 않았다. 특허를 낸 것과 동일한 방식의 금형이나 설계도면을 LS엠트론 쪽에서 갖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었다. 설계도면을 요구한 시점도 문제가 됐다. LS엠트론은 품질 검증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특허 출원에 대한 내부 지시가 이뤄진 당일 하도급업체에 설계도면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사건에서는 제도적 맹점도 드러났다. 쿠퍼스탠다드 쪽이 보유한 특허의 효력은 공정위의 조치와 상관없이 유지된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LS엠트론이 향후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뿐이다. 특허 업무는 공정위가 아닌 특허청의 소관인 탓이다. 특허를 무효화하기 위해서는 하도급업체가 직접 특허청 소속기관인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공정위에서 특허청 쪽에 공문이나 관련 자료를 보내주는 절차도 지금으로서는 없다. 하도급업체 입장에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셈이다.
빼앗긴 기술에 대한 손해배상도 관건이다. 하도급법은 기술을 유용한 기업이 손해액의 최대 3배에 이르는 금액을 피해 기업에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실제 손해배상 소송에 적용된 사례가 아직 없다는 점이다. 안남신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장은 “하도급업체에서도 특허무효심판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경제적인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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